‘동시대’와 ‘레트로’의 불편한 공존에 관해
비디오 게임은 기술 기반의 매체다. 이 사실은 그 어떤 관점으로도 부정할 수 없다. 전기와 디지털 신호가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이 놀이는 고도화된 컴퓨팅, CGI, 물리적 입력 장치, 디스플레이 등의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사를 같은 선線 위에 위치시킨다. 확실히 매년 반복되는 ‘신작 게임’ 발표의 현장은 기술의 각축전처럼도 보인다. 특히 AAA로 위시되는, 고도의 예산이 투여된 게임들은 지난해의 기술적 성취를 상회하며 더 강력한 시각적 완성도를 자랑하며 우리는 그에 열광한다. 그런데 우리의 동시대에는 그와 완전히 상반되는 현상, 즉 ‘레트로 스타일’이 존재한다. 포토 리얼리즘의 극단을 완성해 나가는 이 시기에 고전적인 픽셀 아트와 칩튠 사운드, 단조로운 게임 플레이로 구성된 게임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게임들은 우리의 보편 인식, 즉 기술 중심의 비디오 게임史에 입각해 보자면 이레귤러들로 봐야 할까? 그런데 그렇게 단정 짓기엔 ‘동시대 레트로 게임contemporary retro game’은 너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Steam의 각 게임에 적용할 수 있는 태그의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2024년 발매된 복고풍(Retro) 태그를 가진 게임의 수는 2,266편이며 픽셀 그래픽(Pixel Graphics) 태그를 가진 게임의 수는 4,250편으로 집계된다. 2024년에 Steam에 발매된 게임의 수는 29,063편이며 각 태그의 비율은 약 7.8%와 14.6% 정도로 확인된다. 그보다 5년 전인 2019년에는 각각 678편(5%)과 777편(5.7%)이었다. 즉 5년 사이에 발매 수는 각각 약 4배와 6배 정도로 증가했으며 전체 발매 수 대비의 비율은 1.4배와 3배 정도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절대수뿐만 아니라 발매작 내에서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특성’이 하나의 계열을 형성하고 있으며, 점차 그 범주를 늘려가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말하자면 동시대 레트로 게임은 명백한 경향이자 현상이다.
따라서 이 현상은 우리의 기초적인 인식을 위배한다. 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움직이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가 이러한 반동적인 현상을 만드는가? 왜 게이머들은 점차 ‘레트로 스타일’의 게임에 관심을 늘려가는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은 게이머들이 점차 향수에 의존해 간다는 관점이다. 이는 게이머의 전체 연령층 상승이 가져온 경향으로도 볼 수 있다. 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ESA)에서 2021년 작성한 비디오 게임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게이머의 인구 비중은 18세 미만이 20%, 18~34세가 38%, 35세 이상은 통합 42%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 통계에 의하면 20대 이하의 게이머들이 전체 수치에서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중년 이상의 비디오 게이머’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동기관의 2015년에 보고서에서는 18세 미만이 26%, 18~35세가 30%, 36세 이상은 통합 44%로 집계되는데 전체적으로 18세 미만에서 18세 이상으로 분포가 옮겨가는 형태로 보인다. 절대수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게이머의 전체 수치는 2015년은 1억 5천만이며 2021년에는 2억 2천만으로 약 1.5배의 상승을 보인다. 따라서 2015년에는 36세 이상의 게이머가 약 680만 명으로 추산, 2021년에는 약 950만으로 추산되기에 중년 이상의 게이머 절대수가 증가하는 추세인 것은 확실하다. 만약 여기서 소위 말하는 ‘가벼운 게이머’, 즉 게임의 소비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의 증가를 의심해볼 수도 있다. 그러한 관점을 위해 ‘게임에 대한 적극적 소비자’에 대한 하나의 모델로 Steam 사용자의 분포 분석으로 옮겨갈 수 있다. 2024년 statista.com이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41%를 차지하는 가장 다수의 그룹은 20~29세로 집계되며, 그 뒤로 가장 큰 비중은 29%를 차지하는 30~39세 그룹이 차지하고 있다. 20세 미만의 플레이어 그룹은 5% 정도를 차지하며 40대의 15%, 50대의 7% 보다도 낮게 집계된다.
결국 이러한 도식은 과거의 게임 경험을 가진 채 성장하는 ‘자기 역사를 가진 게이머’가 증가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30대 이후에 처음 비디오 게임을 접하는 인구보다는, 10대와 20대를 걸쳐 30대 이후에도 비디오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는 게이머를 상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레트로 스타일 게임’에 대한 소구는 이러한 게이머들의 향수적 요청이라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와 시러큐스 대학교 공공 커뮤니케이션 스쿨은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의 게임 세션 기록을 통해 레트로 게임을 플레이한 플레이어가 대부분 자신이 10세 때 유행했던 게임을 자주 플레이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게임의 선택에 이러한 개인적 향수personal nostalgia가 개입되는 것이다.
많은 레트로게이밍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현상을 향수의 효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야코 수오미넨Jaako Suominen은 “레트로게이밍과 관련하여, 우리는 또 하나의 외래어를 사용할 수 있다. 노스탤지어이다.”라고 서술했으며, 데이비드 하이네만David Heineman은 “비디오 게임에서의 향수가 흥미로운 이유는, 재출시된 게임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플레이어가 정확히 같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이다.”라고 쓴다. 물론 이들의 연구 방향은 어디까지나 동시대 레트로 게임을 소비하는 경향보다는 과거의 게임을 그대로 즐기는 레트로게이밍retrogaming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모든 면을 통틀어서 중년의 게이머들에게 있어 ‘향수’가 가져다주는 힘에 대해 공유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향수가 작동하는 방식은 당연히 일정량 과거에 대한 낭만성을 기반으로 한다. 예를 들어 기술적 제약이 존재하던 과거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혁신의 가능성을 가졌다는 전제다. 카밀 비친스키Kamil Wyczynski는 그의 연구 보고서《Meanings of Retrogaming Consumption for “Millennial” and “Generation X” Men》에서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뒤, 그들이 레트로게이밍을 즐기는 이유를 9가지로 ㅡ 조악하게 설계된 제품 경험, 미완성 상태로 출시, 소비자 노동, 온라인을 전제로 한 설계, 온라인 멀티플레이 중심, 창의성의 결여, (하드웨어의) 계획된 노후화, 불공정한 경쟁 환경, 이윤을 위한 설계 ㅡ 로 정리한다. 대체로 소비자 관점의 서술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확실히 ‘창의성의 결여’라는 대답은 존재감을 가진다. 연구 참여자 중 한 명은 이 문제에 대해 “80년대만 해도 게임들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였어요, 새롭고, 혁신적이고, 그러니까… 혁신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냥 똑같고 똑같은 게임들만 계속 나오는 것 같아요.”라고 답하고 있다. 또한 다른 참여자는 그럼에도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는 좋은 환경’이라는 답을 한다. 비친스키는 여기에 이렇게 첨언한다. “참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소규모 회사들은 대형 게임 기업들보다 게임 제품을 설계할 때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디 개발자들은 오늘날의 레트로 게임들을 낳았던 초기 게임 산업의 환경을 모방하고 있다.” 즉, 동시대 레트로 게임은 게임이 더 창의적이던 ‘과거’를 충실히 모방하기 때문에 동시대의 다른 게임에 비해 더 창의적이라는 (향수 기반의) 평가를 받는다. 프랭크 보스맨Frank Bosman은 이러한 경향을 ‘비디오게임 낭만주의Videogame Romanticism’라고 정리하는데, 그의 정리에 의하면 이것은 ‘이는 과거를 기술적으로는 열등했을지 모르나, 문화적·사회적·정신적으로는 우리 시대보다 우월했던 시기로 이상화하는 방식’이다.
향수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스베틀라나 보임Svetlana Boym이 규정한 두 가지 향수의 개념을 차용한다. 보임은 《The Future of Nostalgia》에서 향수를 두 가지 개념, 복원적 향수Restorative Nostalgia와 성찰적 향수Reflective Nostalgia로 구분한다. 이 둘은 Nostalgia라는 단어의 어원인 Nostos(귀향)와 Algia(그리움)로 그 근원이 분리된다. 즉 Nostos에 더 많은 기원을 두고 있는 복원적 향수는 과거의 것을 ‘마땅히 돌아가야 할 시간적 고향’으로 이상화/낭만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반면 Algia에 그 근원을 두는 성찰적 향수는 과거라는 시간과의 물리적 단절을 받아들이는 성향이다. 이 향수는 대상의 직접 재현을 요청하기보다는 현재라는 시간과의 거리감을 통해 과거를 인지하는 경향이다. 앞서 비친스키 연구의 참여자들이 보인 태도는 정확한 의미에서 복원적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태도를 동시대 레트로 게임 전체에 적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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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의 전문은 게임 제너레이션 홈페이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