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ludic games의 「타이니 북샵」의 첫인상은 이동식 책방을 운영하는 가벼운 코지게임처럼 보인다. 물론 이후의 플레이는 당연하다는 듯 이런 인상을 배신하는데, 샵 매니지먼트 게임이 흔히 보이는 운영의 복잡도 증가와는 맥락이 다르다. 의외로 운영의 메커니즘은 시작부터 끝까지 크게 차이가 없어 변화하는 것은 하루에 판매하는 책의 양과 그에 비례하는 손님의 수다. 게임은 손님에 대한 '대응'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이 대응을 상대적으로 좀 열심히 해야 한다. 보기보단 손이 바쁜 게임인 셈이다.
이 게임에 대한 흥미로운 리뷰는 ‘이렇게 책이 잘 팔리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라 이상하다’는 것인데,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나 「유로트럭 시뮬레이터」같은 공고한 시뮬레이션을 강조하는 게임이 아님에도 이런 감각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이 게임은 어딘가 현실이 아닌 공간이라는 환상적 양상을 가져다준다. 대표적으로 게임의 시간 구성은 1년 4개월, 1개월이 하나의 계절이라는 설정이다. 이런 시간 관계를 감안하자면 한 사람이 하루에 20권의 책을 구매하는 게 그다지 비현실적… 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가 3일이라면, 하루에도 평균 6.5권 정도를 구매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환상’이라는 기재에 수학적 안배를 부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매한가지다. 1년에 4개월인 세계라면, 한 사람이 하루에 20권의 책을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단 이 게임이 현실을 소환하는 매개는 메커닉이 아니라 (율의 단어를 쓰자면) ‘게임 월드’의 내부에 있다. 게임이 판매하는 책은 모두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책들이다. 대표적으로 대부분의 ‘희곡’ 책들은 다 셰익스피어의 책이다. 그 외에도 고전 명작들, 근래 유행한 영 어덜트 소설들, 《란마 ½》같은 유서깊은 일본 만화에 심지어는 한국 웹툰의 단행본도 몇권 존재한다. 이 ‘설정적 차원’은 이 책들의 내용이 게임 메커닉에서 사용된다는 지점에서 흥미로워진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 게임이 일종의 ‘서비스 제공형의 매지니먼트’ 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커피 토크」나 「스트레인지 호티컬처」, 「네오 캡」같은 NPC 손님들에게 ‘반응하며’ 상황에 대응해나가는 행위의 장르다.
기존에 존재하던 해당 장르의 게임들은 서빙의 규칙을 게임 내부에 두는 게 일반적이다. 이를테면 「스트레인지 호티컬처」의 가상의 식물들을 떠올려보면 된다. 실제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의 의향에 맞추기 위해서는 가상적 식물들을 분류하고 판단하는 가상의 식물학을 따라야 한다. 혹은 「커피 토크」처럼 현실의 대상을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그 규칙은 게임에 귀속된다. 이 게임에서의 ‘카푸치노’는 직접적 계량이라는 현실의 방식이 아니라 ‘커피-커피-우유’라는 지정된 버튼의 ‘순서’를 통해 만들어진다. 「네오 캡」에서 제공하는 것은 대화의 양상이지만 결국 그 역시도 율의 ‘게임 세계’ 차원에 귀속되는 측면이 있다. 플레이어가 관리해야하는 것은 주인공 리나의 감정이지 플레이어의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분리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사례가 바로 「좋은 피자, 위대한 피자」다. 이 게임의 얼토당토 않는 주문들을 보고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시도하게 되는 이유는 ‘피자 만들기’라는 행위가 게임 규칙의 내부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줘야 하는 「타이니 북샵」의 ‘대응’은 전적으로 플레이어 자신의 지식 동원을 필요로 한다. 손님이 ‘디스토피아 배경의 철학적인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게임은 이에 대해 썩 쓸만한 규칙이나 라이브러리를 제시하지 못한다. 각 책에는 약 3~4줄 정도의 설명이 붙어있긴 하지만 해당 책에 대한 플레이어의 선행된 정보 이상으로 기능하기는 어렵다. 책의 지식에 대한 자신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즉시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집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뭐 그렇다고 게임에 등장하는 책의 리스트가 지나치게 독서광들의 시점에 맞춰져 있지도 않다. 난이도 조절 따위로 등장하는 책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덕분에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는 게임 세계가 일정량 현실 세계와의 연결점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감각을 체감한다. 게임을 하는 내내 약간 궁금증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세계는 우리와 같은 세계일까, 아닐까?
기왕 율을 꺼냈으니 더 밀고 나가자면, 「타이니 북샵」은 율의 하프 리얼에 대한 어슷한 감각의 대답처럼 보인다. 율이 제창한 ‘절반의 현실’이란 게임의 실제적 요소로서의 마법의 원(=게임 규칙을 통달하고 그와 상호작용하는 플레이어의 세계)과 디제이시스적 구성물로서의 허구 세계(=주인공과 게임 캐릭터가 생활하는 공간)가 중첩되어있다는 의미다. 율의 논의에서 이 양자는 구분된다. 그리고 게임 규칙이 기거하는 ‘마법의 원’이 사실상 감각적 차원에서 더 실제적 층위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게임 세계의 현실은 일종의 지시적 의미로서의 게임 규칙에 대한 우회적 설명에 가까운 셈이다. 물론 율의 이 해묵은 논의를 이제와서 「타이니 북샵」을 통해 재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안렐레인 마스헤레인Anneleen Masschelein이 이미 율의 논의에 대해 ‘규칙 중심적 편향이 드러난다. (...) 게임학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려는 대담한 시도였고, 가능한 한 다각도로 접근했지만 그 결과는 약간의 불균형을 보인다.’며 율의 관점을 지적했다. 이후에도 율은 자신이 말한 고전적 게임 모델이 가진 본질주의에 대한 역사적 위험성을 인정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타이니 북샵」을 통해 반추되는 양 세계간의 중첩은 사실 좀 더 역설적인 결과를 보인다. 게임을 하다보면 가끔은 나의 현실적 지식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를테면 ‘고전 소설이고 잔인한gory 내용이 나오는 책을 원한다’고 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윌리엄 골딩의《파리대왕》을 꺼내줬지만 손님은 화를 냈다. 어라, 이 소설의 돼지를 해체하는 묘사는 충분히 gory하지 않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 ‘무엇과’ 충돌하고 있는지에 대한 섬세한 고민이 시작된다. 게임 제작자와 나 사이에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일까? 제작자의 문화권에서는 그정도 묘사는 gory하지 않게 여기는 걸까? 아니면 제작자가 의외로 《파리대왕》를 읽어보지 못한 채로 게임에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의 더미에서 나와의 인식 차이를 여기는 ‘대상’이 손님이 아니라 개발자가 된다는 사실에 그 흥미가 도시라고 있는 셈이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나는 즉시 나와 손님 사이의 취향적 불일치성이 그 문제의 원인이라고 확정지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을 하면서 손님과의 의견 마찰이 발생할 때엔 손님이라는 객체성은 순식간에 삭제되어 버린다. 손님을 매개로 나와 제작자 사이의 대립이 형성되어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찌되든 개별의 단일한 손님에게 ‘의견 차이’를 부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작위적으로 생성되는 캐릭터이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마구잡이로 개념을 잡아버리면 게임적 엄밀성이 제거되니까. 즉 NPC인 손님은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다.
현실의 지식을 게임적 특성으로 끌어들이려는 「타이니 북샵」의 흥미로운 시도는 오히려 현실 세계와 허구 세계 사이에는 최종적으로 넘나들 수 없는 엄밀한 벽이 있음을 증명한다. 게임적 데이터가 가져야 하는 태그화된 데이터 베이스는 취향, 관점, 해석 등이 끼어들 여지 없는 냉엄한 기준이 된다. 이 안에서 무언가의 차이를 발생시키게 되는 것은 허구의 ‘내적’ 여지가 아니라 허구 밖, 현실에 안치된 ‘마법의 원’을 그려낸 제작자의 의식 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율의 단어인 ‘하프 리얼’은 흐릿한 단어로 남아버린다는 것이다. 오히려 비디오 게임의 현실은 두 현실이 교묘히 섞여 버린 것이 아니라, 서로 섞일 수 없는 세계가 다층적으로 교직하는 직물성의 ‘하프-앤-하프 리얼’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니 북샵」의 《파리대왕》에 대해 다시 떠올린다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음, 그러니까 「타이니 북샵」의 세계는 결국 우리 세계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 세계가 될 수도 없다.) 따라서 그 세계에 우연히 존재한 동명인인 ‘윌리엄 골딩’ 씨가 우연하게도 동일한 제목의 소설 《파리대왕》을 집필한 모양이다. 그리고 거기엔 gory한 표현이 전혀 나오지 않는 거다. 자, 이러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이해되지 않는가? 그러니 한 손님이 20권의 책을 사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다고 여기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