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닐」: 안전한 절멸의 행성으로부터

by 이선인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문명적 통치를 다룬다. 그 시조인 맥시스의 「심시티」를 시작으로 유비 소프트「ANNO」시리즈, 프론티어 디벨롭먼트의 「플래닛 주」나 「플래닛 코스터」를 시작할 때 플레이어를 반겨주는 것은 너른 자연의 공간이다. 플레이어에게는 이러한 ‘자연적 풍경’을 깎아내고 변형시키고 자원화할 수 있는 어떠한 특권이 주어진다. 이 관계를 역산해보자. 이 게임들에서 ‘자연의 풍경’이란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공간, 생동하지 않는 세계로 규정된다. 「심시티」를 켜고 비어있는 세계를 가만히 둔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한히 시간을 보내보자. 화면에 수놓아진 자연적 풍경에는 아무런 변화조차 없을 것이다. 이 공간들은 생동하지 않는 세계로 해석되는 게 아니다. 애초에부터 생동하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오직 플레이어에 의해 문명적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제공된 공간일 뿐이다. 도나 해러웨이는 자신의 저서 『Modest_Witness@Second_Millennium』에서 맥시스의 ‘심 시리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기 있는 맥시스사의 게임 「심앤트」, 「심어스」, 「심시티」, 「심시티 2000」 그리고 「심라이프」는 모두 컴퓨터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지도 제작 게임이다. 이 게임들에서는, 생명 그 자체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도 제작이 곧 세계 제작이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화의 데카르트적 격자 관습 안에서, 이 게임들은 사용자들이 탐험, 창조, 발견, 상상, 개입의 서사 속에서 자신을 과학자로 여기도록 부추긴다. 데이터 기록 실천, 실험 프로토콜, 세계 설계를 배우는 것은 이 테크노사이언스 영역에서 정상적 주체가 되는 과정의 매끄러운 일부다. 지도 제작 실천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형성하는 투영법projections을 배우는 것이다. 각 투영법은 특정한 종류의 관점perspective을 생산하고 함축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 라이브스의 「테라 닐」은 독특한 위상을 지닌다. ‘역 건설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이 게임은 ‘발전하기 위한 건설’이라는 목표를 지향하지 않는다. 「테라 닐」의 목적은 자연의 재생에 있다.

「테라 닐」 역시 시작시에는 건설을 위해 마련된 빈 공간을 보인다. 하지만 그 공간은 자연의 존재감 조차도 희박하다. 이 모든 공간은 ‘오염된 불모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플레이어는 이 장소를 자원화해 부강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 자체를 자연의 공간으로 되돌릴 책임을 부여받는다. 즉 이 빈 공간에 올려놓는 모든 ‘건물’들은 그 자체가 자본적 축적을 위함이 아닌, 이 빈공간에 자연의 가능성을 심어놓기 위한 도구로 기능한다. 플레이어는 각 스테이지가 요청하는 정도의 ‘자연 회복’을 달성해야만 한다.


여기에 ‘역 건설게임’을 완성시키는 또 다른 메커니즘이 있다. 플레이어는 모든 스테이지에서 자연을 완전히 되살린 뒤, 자신의 모든 건설물을 파괴하고 이 공간을 떠나야 한다. 이를 통해 완전히 인간으로부터 유리되어있는, 스스로 생동하는 자연을 만들어내어야 한다. 플레이어는 마지막의 철수 공정을 마친 뒤 원한다면 얼마든지 재생된 세계를 관람할 수도 있다.


「테라 닐」에 최초로 제공되는 빈 땅은 「심시티」 또는 본 장르의 다른 게임들에서 보이는 빈 땅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에 가깝다. 「심시티」의 그곳은 자연인 척 모사되었을 뿐 진짜 의미에서의 자연은 아닌 공간이다. 그것은 생명의 형태를 패러디한 공간이며, 동시에 문명의 통치가 ‘필요한’ 그저 사멸되어 있는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반해 「테라 닐」의 빈 공간은 본래부터 멸망의 음울함을 가진 공간이다. 「테라 닐」이라는 제목조차 제국주의 시절 원주민의 땅을 ‘주인 없는 땅’이라 명명할 때 사용한 단어 ‘Terra Nullius’를 떠오르게 만든다. 흥미롭게도 게임의 역학에 있어 양 공간의 기능과 목적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테라 닐」은 그 죽음의 이미지를 전면화함으로서 장르적 기능을 역행해 재생이라는 목적을 도출해낸다. 「테라 닐」은 ‘역 건설’이라는 게임적 메커닉을 통해 기존의 건설 시뮬레이션들이 가지고 있던 (해러웨이가 정의한) ‘지도그리기’의 역학을 무참히 드러내버린다.


「테라 닐」의 빈 땅


그런 의미에서, 「테라 닐」은 일종의 생태주의 게임이다. 그리고 「테라 닐」이 생태주의 게임인 이유는 기존의 건설 경영 게임들이 가진 반 생태주의적 특성 때문이다. 「테라 닐」의 혁신성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들이 가진 ‘지도 그리기’의 역학, 문명에 의한 자연 통치의 보편화에 저항할 때 기능한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관점을 바꿀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가 진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건설 시뮬레이션’의 기초적인 메커닉이라는 점이다. 그곳이 오염된 땅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한들 플레이어는 올바른 방식으로 건물을 세우고, 그를 통해 포인트를 모으고, 그 포인트를 소모해 다시금 건물을 세워 나가는 방식으로 ‘빈 땅’을 (건물이 아닌 식물로) 채워나간다.


리뷰 등에서 종종 지적되고 있듯, 「테라 닐」에는 수상한 미스터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플레이어가 재생해야하는 이 세계의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건물을 짓기 위한 (게임 내에서는 녹색의 나뭇잎으로 표현되는) 포인트의 정체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미묘한 미스터리는 이 게임에서의 문명과 자연 사이에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도사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는 복원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이 세계는 과연 어떤 연유로 이렇게 파괴된 것일까? 핵전쟁이 있었을까? 극심한 환경오염의 결과인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인가? 아니면 운석 충돌에 의한 예상치 못한 파멸인가? 이 조건의 공백은 플레이어의 행위가 올라설 지지대를 치워버린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는 자연을 ‘재생’하라는 미션을 건내고 있을 뿐이다. 즉 플레이어가 지금 수행하는 수복이 실패에 대한 책임의 행위인지, 세계의 재건이라는 극복의 의지인지 모호하게 굴고 있는 셈이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재생의 기술을 가진 플레이어와 재생을 필요로 하는 땅이라는 이분화된 관계 뿐이다.


말하자면 이 조건이 지워지는 순간, 플레이어에게는 일정한 ‘선한 의지’만이 주어진다. 책임에 대해 설명하지 않기에 그 행위 전체가 자연의 수복이라는 고귀함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플레이어에게 ‘위대한 일’을 위해 남겨져 있는 이 공간이 바로 「테라 닐」의 비어있는 땅이다. 이 조건은 에코모더니즘의 비전과 연결된다. 2015년 에코모더니즘 선언문An Ecomodernism Manifesto과 함께 발족한 이 사조는 기술 발전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고 인간의 더 나은 삶Well-being을 증진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환경 철학이다. 에코 모더니스트들은 인류세Anthropocene의 한계를 인정하며 지금의 세계를 ‘좋은 또는 위대한 인류세’로 만들겠다는 기치를 내건다. 이 사조는 다양한 방면에서의 비판을 겪었다. 특히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은 이들이 인류세를 ‘퇴보의 상징이 아니라 극복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게 해주는 전환’으로 받아들이며 ‘흥분과 기쁨의 기색을 보이며 환영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게임 제너레이션 홈페이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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