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자아 사이
여유와 공허함 사이
작년 가을, 가나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일을 좀 쉴 계획이었다. 낯설고 외로운 환경에서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리는 2년간 책임감이라는 연료로 근근이 작동했고, 배우자의 무한한 사랑과 전문가의 심리상담이라는 장치로 연명을 해온 터였다. 더는 남아 있는 체력도, 의욕도, 열정도 없었다. 마침 가나에서와 반대로 이번에는 짝꿍이 경제활동을 책임지기로 했고, 그 기회에 나는 1년 정도 회복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처음 두 달간은 우리가 살 집을 찾고 꾸미는 일에 열중했다. 해외에서의 학업과 업무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한국인 데다 심지어 살아본 적 없는 낯선 소도시에 정착하다 보니, 새롭게 적응할 것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넘치는 게 시간이니 마음만은 여유로웠다. ‘오늘 다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의 마음으로 느슨하게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석 달 즈음이 됐을 무렵, 조금씩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그간 일이나 공부를 중심으로 삶을 엮어가고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방법만이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나였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나의 시간을 보내보겠노라 호기롭게 시작한 백수 생활이었지만, 그 속에서 큰 재미나 동기부여를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허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백수와 프리랜서 사이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슬슬 내가 이전에 하던 국제개발협력과 교육 분야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분야에는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해서 진행되는 업무가 많은 편이다 보니 중단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고용 환경이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지만, 나처럼 느슨하고 다양하게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이다. 해당 분야를 전체적으로 관장하는 공공기관이 있는 덕분에 공식적으로 모집 공고가 나고, 자격조건이 맞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한몫을 했다. 서너 번 고배를 마신 끝에 나는 마침내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위한 첫 단기 해외 출장의 기회를 얻었고, 그렇게 느슨하게 한 달에 열흘 남짓 일하는, 백수와 프리랜서 사이 어디쯤에서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워야 하니까 긴장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일했다.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부터는, 더 이상 내가 속한 어느 조직이 아닌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하는 일인 만큼 남들의 기대를 넘어서 스스로 세운 높은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집중했다. 오랜만에 일을 하는 즐거움, 좋아하는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낯선 문화를 만나는 일의 새로움, 새로운 일을 익혀 나가며 성장해 나가는 내 모습이 좋아서 매번 강행군의 일정에도 힘든 줄 몰랐다. 잠을 잘 못 자고 쫓기듯 일해도 그게 또 재미였다. 마침내 내가 다시 살아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첫 출장을 시작으로 다른 국가로의 출장이 연계되기도 하고, 교육, 젠더, 보건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다른 전문가분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그분들이 다음 일에 나를 찾아주거나 다리를 놔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업무 영역은 조금씩 확장되어 갔고, 해외 출장 외에도 개발도상국 공무원 초청연수 등 국제개발협력 분야를 둘러싼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게 되었다. 1년간 아주 짧고 굵고 진한 시간을 보냈다. 이 프리랜서의 삶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두 해 정도는 더 이렇게 일하면서 다방면으로 배우고 익히면 좋겠다 싶었다.
잠시만 안녕...?
일의 특성상 가을 시즌을 기준으로 1년 사이클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보니, 원래라면 그렇게 작년에 열심히 뿌렸던 소소한 씨앗들을 올해는 거둬들일 때이다. 열심히 즐기며 내 일처럼 임했던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작년에 함께 일했던 분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연락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나는 작년 이맘때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답을 내놓게 되었다.
제가 내년 초에 출산을 하게 되었어요.
전화기 너머로 열이면 열 모두 아주 반가워하며 축하의 말씀을 건네주셨다. 그 말끝에 함께 일하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참 고맙고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첫 번째 전화를 끊었을 때까지만 해도 태어날 아가와 나의 새 삶을 축하받았다는 기분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비슷한 패턴이 두 번, 세 번 반복되고 나니 전에 없던 불안감이 조금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두 해 쉬고 나서도 과연 나를 찾아줄까, 잊히지는 않을까, 나 이제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자유롭고 느슨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던 ‘프리랜서’라는 나의 일하는 형태, 그 이면에 있던 불안정성을 마침내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
아가를 만난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여전히 요즘 내 삶의 가장 절대적인 중심축임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앞으로 나라는 존재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별안간 훅 몰려드는 때가 있다. 특히 ‘일하는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간 들어온 온갖 경력 단절 괴담이 떠오르며 심란해진다. 물론 나로 인해, 온전히 나를 믿고 이 세상에 오는 아가를 좋은 사람으로 키워내는 일이 향후 몇 년간의 나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거란걸 알고 있고, 나는 그 책임과 기쁨을 후회 없이 누리고 싶다. 그게 내 바람이자 이상의 영역이라면, 일하는 나와 내 경력을 지속하는 일은 현실 세계의 고민이다. 새내기 프리랜서에게 겨우 1년 남짓한 시간 동안의 흐릿한 경험 이후에 이어지는 1년 혹은 그 이상의 공백기는 더 뿌옇고 큰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결론은, 아직 잘 모르겠다. 프리랜서의 삶도 이제 겨우 맛을 봤을 뿐인데 육아의 세계는 더더욱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라서, 나의 두 자아가 어떻게 타협할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불확실성이 주는 막연한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일단은 ‘일하는 나’가 주인공인 현실을 외면하고 ‘아가를 건강하게 잘 만나 기쁘게 키우는 나’라는 이상에 집중하면서 육아서적이나 영상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이상마저 곧 현실이 될 날이 가까워져 올수록 회피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이상의 약효가 다 떨어진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는 어쩌면 아가를 잘 만나 잘 키우겠다는 이상 너머 더 크고 새로운 이상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가의 탄생으로 인해 더욱 단단해지고 깊고 넓어져서, 전혀 새로운 모습의 내 자아가 태어날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 말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늘 절망하고 안도하고 타협하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겪어보지 않은 엄마로서의 내 삶도 결국에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 거다. 이 과정 속에서 일적으로도 성장할 동력을 얻는 나, 그 새로운 이상을 붙들고 살아보는 거다.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프리랜서 1년 차의 첫 해를 이렇게 무기한 마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