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이 보는 세계 경제
사다리 걷어차기 / 나쁜 사마리아인들 / 도서출판 부키
왜 이 책들을 읽게 되었는가?라고 자문자답을 하자면, 제목 때문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은 정말 제목만 보고 골랐다. 이 책이 경제 관련 서적 인지도 모르고, 장하준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목이 인상적이라는 이유 하나로 다른 책들을 주문할 때 같이 구입했다.
물론 구입을 위해 책 소개 페이지를 보면서 ‘아, 세계 경제에 관한 책이구나.’라는 정도는 알게 되었지만...
장하준 교수의 경제관념은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것들과는 다르다.
그는 일관된 목소리로 자유경제체제를 비판하고 있으며, 선진국이라고 분류되는 나라들의 쩨쩨함과 건망증을 지적한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장하준 교수의 책들은 참 사람 기죽이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내 말에 동조하지 않는 분도 있겠지만...
우선 그의 책은 애초에 영어로 집필된 책이다. 우리가 읽는 책은 또 다른 한국 사람에 의해 번역된 번역본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형성백이라는 분이 번역을 했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순희라는 분이 번역을 했다.
한국 사람이 쓴 책을 한국 사람이 번역해서 한국 서점에서 팔리고 베스트셀러가 된다. 멋지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기가 죽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의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선진국들의 목록을 주욱 나열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이 선진국이라는 간판을 달기까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지금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비판하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첫 구절에 그는 이런 말을 써놓았다.
“이 책에서 필자는 선진국들이 현재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이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따라서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 경우가 많은지를 보이고자 했다.”
당연하게도 책은 모두 선진국들의 과거 사례를 ‘입증 가능한’ 근거자료를 들어가며 꼬박꼬박 집어낸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이것을 지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국가 사이의 거래에서 악영향을 받게 될 것이며, 그보다 앞서 절대로 경제적 발전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키면 여러 가지 혜택을 주겠다고 당근을 내밀기도 하고,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경제적인 제재를 가하겠다는 채찍을 들이대기도 한다.
여기에서 장하준은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지금의 선진국들이 과거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에도 그런 행동을 했는가?
물론 그 당시에는 지금 통용되는 의미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정확하게 비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개념으로 봐서는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수도 없는 논문과 관련 서적, 자료를 뒤져가며 연구한 그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대표적인 것이 관세에 관한 부분이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낮추어서 자국 상품과의 경쟁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이 나라들은 경제발전 시기에 과연 관세 정책을 어떻게 운용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은 관세를 물려서 자국 상품과는 경쟁할 수조차 없도록 했으며, 더 심한 경우에는 아예 수입을 막기도 했다.
그럼 과거와 현재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과거에는 그토록 높은 관세를 물리던 나라들이 왜 이제 와서 일제히 관세를 낮추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할까?
장하준은 과거와 지금의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단지 차이라고 한다면 과거에는 그들, 현재의 선진국들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잘 살고 있다는 차이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세를 높게 책정하는 것이 과연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저해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책 제목을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지은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벌써 사다리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뒤이어 쫒아오는 사람들을 낭패에 빠트리기 위해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도 사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가 어떤 의미에서 같은 이야기를 두 권의 책으로 냈는지 모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판단해보면 이렇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비교적 어렵다. 전문적인 자료를 충분히 연구하고 쓴 책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그에 반해 이해하기 쉽게 저술했다.
자신의 아들 ‘진규’를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저자 자신이 겪은 한국에서의 대학시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처음 시작 부분에서는 가상의 미래 세계, 아프리카의 모잠비크라는 나라에 대한 상상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도 그렇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원론에 충실하면서 독자를 위해 풀어쓴 책이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2002년과 2007년이라는 발표 시점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목차를 비교해보자.
우선 [사다리 걷어차기]를 보면 이렇게 구성되어있다. 목차를 전부 싣는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그럴 필요도 없으므로 큰 항목만 전제하도록 하겠다.
[사다리 걷어차기]
서장 - 선진국들은 실제로 어떻게 부유하게 되었는가?
제 1부 경제 정책과 경제 발전 - 역사적 관점에서의 ITT 정책
01 - 개발 도상국 시절 선진국들의 따라잡기 전략
02 - 선진국의 앞서가기 전략과 신흥 산업국가들의 대응
03 - 경제 개발 정책에 대한 몇 가지 통념과 실제
제 2부 제도와 경제 발전 - 역사적 관점에서의 바람직한 관리 체제
01 - 선진국에 있어서의 제도 발전의 역사
02 - 개발도상국들의 제도 발전의 역사
제 3부 선진국의 경제 발전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01 -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의 재인식
02 - 경제 발전을 위한 제도의 재인식
03 - 제기 가능한 반론들에 대하여
04 -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목차에서 보듯이 역사적, 사실적 서술을 통해 그는 선진국이 과거 개발 도상국 신세였을 때 어떤 방법으로 경제 부흥을 일궜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는 지금 말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너무 맹신하는 까닭에 어쩌면 그들이 과거를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고 꼬집는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을 때는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따분한 느낌도 들었었고, 졸린 부분도 있었다.
그에 반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꽤 재미있게 빨리 읽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프롤로그 - 나라가 부자가 되려면
1장 -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다시 읽기 (세계화에 관한 신화와 진실)
2장 - 다니엘 디포의 이중생활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
3장 -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자유 무역이 언제나 정답인가?)
4장 - 핀란드 사람과 코끼리 (외국인 투자는 규제해야 하는가?)
5장 -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민간 기업은 좋고, 공기업은 나쁜가?)
6장 - 1997년에 만난 윈도 98 (아이디어의 ‘차용’은 잘못인가?
7장 - 미션 임파서블? (재정 건전성의 한계)
8장 - 자이레 대 인도네시아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나라에는 등을 돌려야 하는가?)
9장 - 게으른 일본인과 도둑질 잘하는 독일인 (경제 발전에 유리한 민족성이 있는가?)
에필로그 -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까?
보다시피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별도의 대제목과 세부항목 없이 목차가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뚜렷한 방향성을 볼 수 있다. 책 내용 중에 등장하는 ‘기울어진 축구장’이라는 말이 있다.
선진국들은 자유 무역, 국제화로 대변되는 나라 간 거래에서는 모든 조건이 동등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선진국에서 1을 내놓으면 개발도상국도 1을 내놓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게 과연 진실일까?
그는 이 ‘기울어진 축구장’이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분명 기울어진 축구장은 불평등하다. 같은 실력을 가진 팀들끼리 싸울 때, 축구장이 기울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팀의 승패는 결정 났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초등학생과 프로축구팀이 맞붙는다면 어떨까? 그런 상황에서도 기울어진 축구장이 불평등하다고 말해야 할까?’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초등학생은 개발도상국을 의미하며 프로팀은 선진국을 말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으며 나름대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나열해보자.
우선, 앞서 말한 ‘기울어진 축구장’의 비유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1 장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항목에서는 이런 내용이 기억난다.
만일, 일본이 자동차 수입을 규제하지 않고 국내외 자동차에 동등한 조건을 부여했었다면 지금의 렉서스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만일 일본이 극도로 폐쇄적인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현재 일본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은 문을 닫았거나 선진국 자동차 회사의 부품 공장 신세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기술력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동등하게 경쟁하게 되면 기술력을 갖추기도 전에 도산했을 테니 말이다.
3 장의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에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섯 살 정도면 충분히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이다. 또한 여섯 살 아이에게 교육, 육아로 들어가는 경제적 손실과 아이가 돈을 벌어왔을 때 발생할 수입의 부재를 생각해보면 여섯 살 진규(저자의 아들 이름이다.)는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만일 진규가 교육을 포기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그가 하게 되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또한 진규는 그로 인해 미래를 위해 보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고급 기술을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된다. 과연 어떤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을까?
같은 논리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대입하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더불어 불법복제와 지적재산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는 대학 시절, 불법으로 복사, 제본한 전공서적으로 공부를 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만일 그 당시 그런 방법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신의 지식 습득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당연히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는 실정이고, 특히 중국으로 대표되는 ‘짝퉁’ 상품은 범죄가 된다. 더구나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는 말 그대로 시장을 고사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신기술 소유자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독점적, 배타적 이익 추구권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누가 어렵고 힘들게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장하준 교수는 이 역시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권리의 인정과 적정 수준의 보상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지만, 그런 강제적 법이 없던 시절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새로운 기술을 연구했고, 그 새로운 기술이 다른 사람들이 베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이익은 가능했다고 말한다.
물론 경제적 이익만이 아닌, 사회적 기여에 따른 연구 개발자의 자긍심과 명예도 충분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허를 인정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독점적 권한을 행사하는 기간도 지금처럼 길지 않았다고 한다.
미키마우스 법으로 유명한 미국의 지적재산권 유지 기간은 지금껏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저자 사후 14년간 보호하던 1790년의 미국의 저작권법은 이제 저자 사후 70년으로, 법인의 경우 95년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소급적용의 금지는 저작권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법이 바뀌면 저작권물은 자동으로 계속 권리가 갱신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 내용도 나온다. 가령 독재가 과연 나쁘기만 한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경제개발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꼭 나쁘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같은 관점에서 공기업은 무조건 척결되어야 하고, 민간 기업만이 정답이냐고 묻는다.
우리가 교육을 받고,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는 정보들이 말하는 것들이 과연 진실일까?
장하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철저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세계적 흐름을 분석하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두 권의 책이 경제상식 도서로 보이지만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장하준 식 세상보기’가 꽤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 세계가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을 본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내심 ‘북한이 핵을 제대로, 완벽하게 갖고 놀만큼 개발 능력을 키우고 나서 통일되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경우를 본다. 솔직히 나도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부분이 바로 사실과 진실의 간극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