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지은이) | 이은선 (옮긴이) | 문학동네 | 2010-02-25 | 원제 Letter To My Daughter (2010년)
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 2011년 2월이니, 벌써 5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편지를 쓸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짧게 쓰기 시작했는데, 몇 년씩 계속되고, 천칠백 통을 넘어가게 되니 무언가 조금 더 의미 있는 편지 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 서점에서 편지와 관련이 있는 책을 검색해보았다.
제목에 ‘편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중에서 제목에서 뭔가 끌리는 책을 몇 권 골랐다. 생각해보니 책 고르는 실력은 정말 형편없는 것 같다. ‘편지’에 관한 책이라는 이유로 제목에 ‘편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선택했다니...
어쨌든 그렇게 해서 산 책이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이렇게 다섯 권이었다.
사실 책을 사고 나서도 한동안 읽지 못했다. 다른 책을 읽게 되기도 하고, 막상 펼쳐보니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일단 도로 덮은 책도 있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그랬는데,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마야 안젤루라는 미국 흑인 여성이 쓴 책이다. 책 뒤표지에는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의 멘토, 전 세계인들의 영혼의 스승 마야 안젤루가 이 세상 모든 아들딸에게 전하는 인생 조언!”이라는 문구가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라고 한다. 교수, 가수, 작곡가로도 활동을 했고 인권운동가로도 이름을 남겼다고 하니 무척 활동적인 여성인가 보다. 궁금해서 인물 검색을 해보았다. 2014년 5월에 작고하셨다고 한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을 보면서, 나처럼 딸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예상은 프롤로그에서 멋지게 빗나갔다.
작가는 정작 아들만 하나를 두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짤막하게 써서 모았다고 했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삶의 경험에서 추려낸 의미 있는 글모음이다. 자전적 에세이라고 부르면 될까?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시절에 태어났고, 열여섯에 호기심 때문에 가졌던 하룻밤 때문에 미혼모가 되었고, 그렇게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든 조건을 갖고 세상을 살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그런 아픔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흔적을 담고 있다.
책은 분량이 별로 많지 않다. 하드커버로 되어 있어서 그나마 두께가 조금 더 나갈 뿐, 내용만으로는 새끼손가락 하나의 두께만큼도 되지 않을 정도이고,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이 있어서 글자로만 보자면 정말 얄팍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종횡무진 누빈 멋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실수와 잘못된 선택은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작가는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지만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였고, 가족들 역시 그런 그녀의 선택이 힘들지 않도록 도와주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간혹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꽤 좋은 응원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부피도 부담스럽지 않으므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밑줄 그은 문장 몇 가지...
11 페이지
푸념은 하지 말아라. 푸념은 가까운 데 먹이가 있다는 걸 사나운 짐승에게 알려주는 것밖에 안 되거든.
죽기 전에 이 세상을 위해 뭔가 근사한 일을 하는 것도 잊지 말고.
- 어쩌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교훈이 아닐까? 기억하자. “푸념하지 말 것! 죽기 전에 세상을 위해 근사한 일을 할 것!”
13P
어떤 사실도 그 아이의 실상 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수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친구를 데려온 날, 나는 그 아이에 대해 무엇을 물었더라? 분명한 건 집이 얼마나 넓은지, 아빠는 무슨 일을 하시고, 가족관계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건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아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17P
장담하건대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주차 공간을 찾고, 신용카드를 신줏단지처럼 떠받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나이를 먹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몸과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축적하지만, 진정한 우리, 그러니까 우리 안에 있는 어린아이는 아직도 순진무구하고 목련처럼 부끄럼이 많다.
- 장담한다. 온전한 어른이라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라고..., 게다가 마지막 표현 “목련처럼 부끄럼이 많다.”는 글은 왜 이리도 예쁜지...
19P
자선사업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 ‘philanthropy’는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hilo’와 인류라는 뜻의 그리스어 ‘anthro’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자선사업가는 결국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 자선사업가... 꽤나 거창한 뜻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거창한 단어는 내 것은 아닐 것 같다. 난 인류를 사랑하는 것처럼 거대한 건 하지 못한다. 다만 나와 내 가족, 그리고 함께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여섯. 솔직한 대답 – 44
내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는 사람들이 잘 지내냐고 묻는 건, 사실 정말 잘 지내는지 알고 싶어서 묻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곤 했다. 이 세상 수천 가지 언어로 건네지는 그 모든 인사가 대화를 시작하는 단순한 방법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무릎이 깨진 것 같고, 허리가 너무 아파서 쓰러져 울고 싶다”는 식의 대답을 실제로 기대하거나, 정말 그런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화는 곧 막힐 것이다.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끊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이렇게 대답한다.
“예, 잘 지내요. 그쪽도 잘 지내죠?”
- 생각해보니 그렇다. “안녕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한다. “네. 그럼요. 어떻게 지내세요?” 아무 의미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말...
“우리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또는 “이 정도로 적당히 아는 체나 합시다.”와 같은 수준의 말일뿐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관심이라도 간절하게 필요할 수 있다. 또는 지나친 관심은 사양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이 정도로도 좋을 수 있다. 국어책 읽듯 딱딱하지만 않다면...
56P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유혹에 빠져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사람에게 ‘게걸스럽다’ 거나 ‘걸신들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다.
- 어릴 적 가끔 들었던 말이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냐?” 우리 딸에게는 이렇게 가혹한 말은 하지 말아야지.
58P
생각해봐,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잖아. 언젠간 말이지.
- 이 문장은 무척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 나이 이제 오십이 됐다. 오십 년을 그저 그렇게 시시하게 살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가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오 년 후, 십 년 후면 어떤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건데... 그때 쪽팔린 과거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말아야지.
96P
교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겸손한 태도다.
- 교양과 같은 단어가 그다지 품격있고 고상한 말은 아닌가 보다. 겸손한 태도... 그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