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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Feb 03. 2016

칼의 노래 - 김훈

칼의 노래 –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 김훈 | 생각의 나무 | 초판 2001년 10월 22일 | 초판 23쇄 2005년 1월 26일

 꽤  오래전에 출간되었고, 베스트셀러로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도록 나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지 않았다.

 몇 년 전, 남한산성을 읽었었는데, 우울하고 무기력한, 슬프다고  하기보다는 처참하다는 느낌이 강한 그의 문장이 싫었다. 아마 그쯤이라고 생각되는데, 누군가가 읽고 있던 “칼의 노래”를 들춰보곤 문장의 무게감이 더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로 건네주었다.     


 2주 전쯤? 서예 공부를 하러 갔다가 서실 책꽂이에 꼽힌 “칼의 노래”를 발견했다. 별생각 없이 펼쳐 들고 읽기 시작했다. 네댓 페이지쯤 넘기면서 내가 이 책을 읽지 않기로 했던 이유가 생각났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주인은 일흔을 앞두신 서예교실 반장님, 서예작가로도 활동하시고, 한시에도 조예가 깊고, 문인화에 서각까지 두루두루 섭렵하신 반장님께서는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특히  오래전에 출간된 경우는 책을 읽는 것이 싱겁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읽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뉴스와 기사, 이야기들, 특히 제법 상세하게 쓴 리뷰를 수도 없이 접했던지라 내용은 물론 특징까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책장을 넘기지 않았을 뿐 사실상 다 알고 난 뒤라는 이야기다.     


 이 책이 그랬다.

 언젠가 작가가 이 책에 대해 인터뷰한 것도 읽어본 기억이 얼핏 나고, 무수히 많은 블로그에서 “칼의 노래” 리뷰 포스팅을 보았으며,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았느냐며 타박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 책은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한다. 따라서 당연히 그 유명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직후에 끝난다.

 시종일관 낮게 깔린 음성으로 무덤덤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무심한 듯 이야기하는 이순신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느낌이다.

 수많은 전투, 수없이 쌓이는 시체, 바닥마저 그대로 드러난 가난하다 못해 찌들어버린 궁벽한 삶...

 낮게 읊조리는 단조로운 어투로 들려주는 아픔이 그대로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거칠고 야성적인 사나이의 우렁찬 목소리가 아니라서 더 아픈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번도 웃을 수 없었고, 마음이 무거웠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은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깊게 사색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훈이라는 작가의 힘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감탄한 문장들...     


138P

 그들은 어느 나라의 백성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연안에서 연안으로 이동하는 철새의 무리들처럼 보였다. 썰물의 갯벌에 겨울 철새들이 부리를 박고 있었다.

나랏님이 지켜주지 못하는, 뿌리 내리지 못한 백성들...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는 겨울 철새... 이 뚜렷하고 선명한 대비. 밀물이 들어오면 사라질 갯벌, 그곳에 불안하게 부리를 박고 있는 철새. 백성들은 그대로 불안한 철새일 뿐이었을까?      


252P

 고향이 없어져버린 늙은 귀향자들이 술 취해서 제 고향 노래를 부르며 울었다. 늙은 격군의 눈물은 눈가를 겨우 적셨고 흐르지는 않았다.     

 나는 귀향자들의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군량미도 바닥이 나고, 결국 입 숫자를 줄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소모품이었던 격군... 그들도 사람이다. 돌아갈 곳도 없는 그들은 쓸모없이 내팽개쳐져야 한다. 돌아가라... 갈 곳 없는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나라를 지킨 댓가다. 그냥 가라...     


318P

 군량은 보름치가 남아 있었고, 화약은 잘 말라 있었다. 바싹 마른 볏짚 위에 바다의 새들이 내려 앉아 교미했다.

전투를 준비한다. 군량은 조금이나마 남아 있고, 전투에 가장 중요한 화약도 잘 준비되었으며, 그 화약을 받아 불폭탄이 될 볏짚마저 바싹 잘 말라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의 무기 위에서도 자연은 생명을 준비한다. 무심하게...     

 어떻게 저런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친절하지 않고 세밀하지 않지만 다 느낄 수 있는 그런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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