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허구 - 고장 난 어느 월요일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 김종완 몽상 소설집
김종완 (지은이) | 헤르츠나인 | 2015-12-10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연이라는 건 분명 따로 있다고 말이다.
꽤 오래전, 읽다가 도저히 재미없어서 못 읽겠다며 던져둔 책을,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며 푹 빠져본 경험이 몇 번 있다. 예전의 재미있었던 기억 때문에 다시 펼쳐 들었다가 실망하는 경험도 종종 있고...
큰 기대를 갖고 펼쳐 든 책에 실망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 큰 만족을 느끼는 경우도 아주 가끔은 있다.
2주 전쯤, 홍대 앞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코끼리 탈출하다’ 커피숍에 허름한 옷차림으로 들른 적 있다. 그곳에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띤 남자를 만났다. 죽이 맞아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월요 허구”라는 책을 알게 됐다.
이름 모를 작은 꽃 그림이 잔뜩 들어간 검은 표지를 한 “월요 허구”는 몽상 소설집이란다. 짧디 짧은 단편 68편을 욱여넣은 책이다.
보통 소설을 읽고 나면 줄거리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소설’이라면 응당 그래야만 한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중에 이 조건, ‘줄거리 떠올리기’에 실패한 책이 두 권이다. 몇 년 전 읽었던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이 그랬고, 지금 이 책, “월요 허구”가 두 번째다. 사실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은 그나마 나은 편일 것이다. “월요 허구”는 줄거리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심하게 벅차다. 도대체 한 권의 책에 담긴 70편 가까운 단편의 줄거리를 어찌 다 정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심각한 우울함을 느꼈다. 아니, 우울함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뭐랄까... 착 가라앉는 느낌? 어쨌든 신나거나 발랄하거나 생기 넘치는 느낌은 아니다.
잠깐 언급했던 이보 안드리치 단편선은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흑백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월요 허구”는 무심하게 구르다가 색이 다 빠져버린, 그래서 원래 색상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기 힘든 그림을 보는 기분이 든다.
내가 왜 “월요 허구”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이보 안드리치 단편선을 떠올렸는지 잘 모르겠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
심지어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두고 뒤적거려봐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랬다.
아마 이 책의 작가 김종완 씨는 월요일, 겨울, 크리스마스, 눈... 이 네 단어에 무척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장이 나버린 월요일이라니, 고장 나서 없어져버릴 세상, 게다가 하필이면 그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다.
25일 크리스마스 월요일... 이 날이 언제인지 찾아보니 2011년이다.
어쩌면 작가는 2011년 12월 25일 그 날... 세상이 고장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옛 애인이 죽은 모텔 안에서 내리는 눈에 파묻히며 고장 난 세상이 끝나길 기다리는 여자.
헤어진 옛 애인을 손님으로 태우고 고장나버린 택시 안에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고장 난 세상이 끝나길 기다리는 택시 기사.
또 뭐가 있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방금 책장을 덮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
어쩌면 작가는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장나버린 월요일, 멈추지 않고 내리는 눈 속에서 세상의 끝을 만나는 크리스마스... 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분명 여름 이야기도 있었을 것이고, 헤어진 애인 때문에 비를 맞으며 택시 잡아타는 이야기, 공상과학 이야기도 있었는데...
앞으로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만나면 난 월요일인지 확인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이 고장나버렸는지 확인하고 싶어 질지도 모르지.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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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방
180P
“이 세계엔 정말 이상한 구석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우는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거예요. 좀 울면 어때서? 왜 누군가 울면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해요? 저는 울음도 웃음하고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우리 감정 중 하나잖아요. 왜 감정을 차별하나요? 그렇잖아요. 우는 사람은 다른 취급을 받아요. 누가 울면 왜 울고 그러지, 하면서 속으로 귀찮아하고,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하면서 조롱하고. 웃겨서 웃는 것처럼 우는 사람은 울음이 나와서 우는 건데 다들 울지 마, 울지 마, 하기만 해요. 제대로 위로도 안 해줄 거면서 웃으라고만 해요. 그래야 그네들이 보기에 좋으니까. 다들 우는 사람을 보면 얼른 ‘웃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달이 나잖아요! 우는 사람은 좀 더 울고 싶은데! 그러니까 방해받지 않고 남들 안 보는 데서 울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예, 저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게 제가 하는 일이에요. 그러니 죄송하지만 지금부터 영업을 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는 방’문화가 확산되면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울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당국의 조처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녀가 말했다.
“도대체가 우는 꼴을 못 본다니까.”
나는 왜 이 걸 읽으며 조지오웰의 1984, 그리고 우리의 위대하신 박정희대통령 가카 시절을 떠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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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린 고양이의 이름은
288P
하지만 달은 누구의 달도 아니고 아침이 되면 사라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 밤 달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그녀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릴 것이다.
다들 그랬듯.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면, 곁에 있어 주었을까.
깊은 밤, 그녀는 미끄럼틀 계단에 앉아 속삭이듯 울었다. 그걸 숨기기엔 밤이, 너무도 조용했다.
분명하게 확신한다. 만일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면, 고양이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고양이는 단지 고양이일 뿐이다. 만일 그 고양이가 그냥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나만의 고양이라고 불러주어야 한다. 만일 그랬다면 그 고양이는 단지 고양이가 아니라 나만의 고양이가 되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