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 돌배게
유시민이 쓴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자주 가는 인터넷 서점에서 메인 페이지에 뜬 소개를 보고 고민 없이 바로 구입했다.
우선 저자가 유시민이어서, 그리고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데 막상 사놓고 나니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아서 처음 몇 페이지 들춰보고는 책꽂이에 모셔두고 있었다. 그러던 걸 며칠 전 꺼내어 읽었다.
이 책의 저자, 유시민...
나는 대한민국 정치인 집단에서 내 나름대로 존경한다고 표현하고 싶은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로 유시민을 꼽는다.
내가 그를 존경한다고 하는 이유는 그의 정치행동 때문이 아니다. 유시민은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서 보기 힘든,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정치인들도 책을 출간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내는 책의 대부분은 자기 자랑에 열을 올린다는 느낌이다. 가령 다음 선거를 위해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사진을 표지에 박아 넣어 펴낸 책들 말이다. 그런 책은 서점 매대에서 보더라도 절대 들춰보고 싶지도 않다. 가끔 들춰보면 몇 줄 읽기도 전에 짜증부터 난다.
유시민의 책은 그런 류의 책이 아니라서 좋다. 경제학, 민주주의, 국가... 현실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것들을 쑤셔낸다.
‘국가란 무엇인가’만 해도 몇 년 전 용산참사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국가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가란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이며 국민들은 대부분 국가의 폭력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서양의 철학자, 전제군주, 그들의 행적과 책을 들이밀며 분석한다.
유시민 씨가 천재가 아닌 이상,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꽤 많은 자료를 뒤지며 공부했을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유시민을 존경하는 이유다. 자신이 하는 일, 정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의문점을 찾아내고 온갖 자료를 뒤지며 공부를 해서 한 권의 책을 펴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정말 국가란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국가가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였었고, 국민들을 어떻게 대해 왔을까?
합법적 폭력 / 공공재 공급자 / 계급 지배의 도구 /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 혁명이냐 개량이냐 /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 훌륭한 국가를 생각한다
대략 위의 순서로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읽는 동안 가장 눈길을 끓었던 부분은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부분이었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이상과 현실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라고 배운다. 또한 선한 동기에서 시작했다면 설령 결과가 조금 안 좋아도 괜찮다고 배운다.
정말 그럴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한 행동의 결과에 의해서만 평가를 받는다. 선한 동기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결과가 나쁘면, 더구나 그것이 나 이외의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결국 이상과 현실은 그만큼 큰 차이를 갖는다.
정치인은 더욱 그렇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국민 모두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한 목적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보는 시각에 따라 악한 목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야당 정치인 폭행 할머니의 경우에도 분명 그 할머니의 사고방식으로는 선한 목적이다. 문제는 그것이 그 할머니의 개인적 범위 안에서만 선하다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는 하나일까? 정부와 정부 인사는?
국가라는 거대 집단의 힘은 사실 국가 스스로 행사하지 못한다. 그 힘을 행사하고 통제하기 위해 사람이 필요하고 우리는 선거를 통해 그 모든 힘을 모아준다. 그렇다면 국가에 충성하는 것과 정부, 정부 인사에게 충성하는 것은 어떻게, 얼마나 차이가 나며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하얀 표지에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담백하게 쓰인 책 한 권...
이 책을 읽으며 그냥 편하게 국가라고 부르는 집단이 사실은 인간의 역사 이래 모든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통제할 수도 있다는 것과 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시민 씨는 사실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이고, 상당한 강성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이미지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이 책의 말미는 진보정치에 대한 그의 시각이 담겨있다. 틀리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진보 정치인이니 진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겠지만 우호적인 입장에서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보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지면을 할애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