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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Nov 11. 2017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 최재천 (지은이)  궁리  2007-01-15  초판출간 2007년

내가 이 책을 산 게 200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위에서는 정말 재미있다고 추천을 해주었는데 난 왠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 기회되면 다시 읽지.’ 라는 생각으로 책꽂이에 얌전히 꼽아 두었었다. 


예전에 릭 게코스키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라는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다가 몇 년 지나서 다시 읽었을 때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해 말에 최재천 교수님의 [통섭의 식탁]을 읽고 난 후 03년 독서 목록을 작성하고 나서 이 책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맘 먹고 있었다. 당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느라 손대지 못하고 있다가 [역사]를 끝내자마자 이 책을 펼쳐들었다.

이런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책이라니!

게다가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고 끄덕거리게 만드는 신기한 동물 이야기라니!

이런 책을 내가 재미없다고 던져두었었던 말이지?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는 딱 하나다. 제 1강 제목이기도 한 “알면 사랑한다." 이 짧은 문장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료들, 함께 지구에서 살며 숨 쉬는 이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것 아닐까? 그러다 보니 사실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고 함께 아파할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는 다른 동물, 식물, 곤충들에게 그토록 심한 고통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은 무언가 대단한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지구 역사에서 막내 수준인 인간이 정말 막내처럼 투정부리고 오만하고 시건방지게 나만 잘났다고 으스대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에 지구를 떠난 동물 종도 있고,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까지 숨 쉬고 있는 종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런 것도 제대로 모르는 채 단지 인간만이 최고인양 오만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 인간 때문에 멸종된 무수히 많은 생물종이 있다.

인간이 멸종시켰다는 이유로 유명해진 날지 못하는 도도새가 있고



캥거루처럼 주머니를 가진 테즈메이니 늑대가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때문에 또 다른 생물종이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꿀벌 개체수도 엄청나게 줄어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최재천 교수의 자연과학자, 동물행동연구가라는 직업이 참 부러웠다.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보통 사람은 평생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할 자연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직업...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세상이 좁다고 돌아다니지만 정작 매일 연구실을 오가는 길에 흔히 만날 수 있는 작은 곤충 하나를 발견하지 못해서 외국에서 온 동료학자가 발견해서 연구하게 되었단다. (이건 아마 통섭의 식탁에서 읽었던 내용 같다.) 


이 책은 개미, 벌과 같은 곤충, 꽃, 새, 뱀, 올빼미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걸음만 더 다가가면 그들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알게 되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 주변에서 함께 숨 쉬는 생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 절대 그들을 함부로 죽일 수 없으며 사랑하게 되는 만큼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여름철 뙤약볕 아래에서 흔히 보는 개미, 가끔 침을 쏘아서 얼굴을 퉁퉁 붓게 만드는 벌처럼 하찮아 보이는 그 생명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정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끼리 오붓하게 살 수 있을까? 


몇 년 전, 교육방송에서 5분짜리 짧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제목은 “참 흔했던 새” 중국에서 1960년대에 가장 흔했던 참새에 관한 내용이었다. 농산물을 쪼아 먹는 통에 꽤 많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한 중국 정부는 전 국민을 동원해서 참새 박멸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 참새를 잡았을까? 참 단순하고 무서운 방법, 국민들을 동원해서 쉴 새 없이 소음을 냈단다. 그 소리에 놀란 참새는 열심히 날아서 도망을 가는데 가는 곳마다 무서운 소리가 들리니 날기를 멈추고 쉴 수 없었다고 한다. 날다 지쳐 떨어져 죽었단다. 그렇게 해서 참으로 흔했던 새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타난다. 

참새가 단순히 곡식만 쪼아댔던 게 아니라 해충을 잡아먹어서 해충에 의한 피해가 적었는데 참새가 죽고 없으니 해충으로 인한 피해가 참새로 인한 수확량 저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는 이야기다. 70년대 중반, 부랴부랴 보호조류로 지정하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지만 여전히 참 흔했던 새는 이제 참 보기 힘든 새가 되었다고 한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인간이 다른 생물 종을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그들에게 피해나 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닌가?

요즘은 ‘자연보호’니 ‘동물사랑’이니 하는 구호를 자주 보게 된다. 이게 우스운 게, 결국 인간이 망친 걸 이제 와서 보호하자 느니 사랑하자 느니 하는 것 아닌가?

실컷 괴롭히다가 죽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자비로운 손을 내밀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른 게 무언가?

지구에 사는 그 어떤 생물도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거나 사랑해달라고 말한 적 없다. 인간들이 머리 좋다고 거들먹거리면서 정복이니 개발이니 하는 말로 치장하면서 들쑤시고 못 살게 굴며 살아온 것일 뿐...

뒤늦게 인간 혼자 독불장군처럼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어린이 동화에 흔히 머리 나쁘고 비열하며 나쁜 놈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이 있다. 호랑이, 사자, 늑대, 여우, 하이에나...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들을 나쁘다고 규정한 건 인간이다. 동물들은 어느 누구도 그런 평가를 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간, 진화론, 사회학, 철학, 고전 분야의 책을 짬짬이 읽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지함. 어쩌면 그렇게나 아무 것도 모르면서 천방지축 날뛸 수 있는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도 긴 지구의 역사를 통해서 살아남은 하나의 생물일 뿐입니다. 이 지구가 우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존재했던 건 절대 아닙니다. 기나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어쩌다 보니 우리처럼 신기한 동물이 탄생한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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