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가족의 범위

나를 위한 변명

by NoZam

수민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애인 있어?”
“응? 애인?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냥, 아빠는 애인 없나 궁금해서...”
말꼬리를 흐린다.

“아빠 애인 있는 거 싫어?”
“응. 아빠한테 애인 없었으면 좋겠어.”
“그래? 그럼 아빠는 나중에 수민이 결혼하고 나면 혼자 살아야겠네?”
“난 결혼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아빠랑 나랑 같이 살면 되지.”

“그럼 아빠가 결혼하면 수민이는 어떻게 할 건데?”
“누구랑? 엄마랑 다시 결혼해?”
“엄마? 글쎄다. 그건 아빠 맘대로 하는 게 아니지.”
“그럼 누구랑 결혼할 건데?”
“그거야 모르지. 만일에 나중에 아빠가 결혼한다고 하면 수민이는 어떨 것 같아?”

한참 고민을 하던 수민이는 한숨을 푹 쉬며 이렇게 말을 한다.
“아빠가 못 생긴 여자랑 결혼하는 건 싫어.”
“그럼 예쁜 여자랑 결혼하면 되는 거야?”
“꼭 결혼할 거면 예쁜 여자랑 해.”
“왜?”
“친구들이 못 생긴 엄마라고 놀리면 어떡해?”

기왕에 결혼을 할 거라면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하라고 하던 수민이는 잠시 후에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아빠는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
“왜?”
“엄마는 같이 살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아빠가 결혼하면 슬플 것 같아.”
“그럼, 엄마는 결혼해도 돼?”
“엄마는 가족이 외할머니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싶었다.
“수민아. 우리 자전거 타러 갈까?”

수민이가 다니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자전거를 탔다.
한동안 자전거를 못 타서 쩔쩔매던 수민이가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이 지난 봄이다. 이제 두발자전거를 잘 타니까 사 달라고 하도 졸라서 핑크색 접이식 자전거를 사 주었고, 가끔 함께 타기도 한다. 처음 자전거를 사주었을 때는 몇 번 넘어져서 손바닥이 까지기도 하더니 이젠 제법 잘 탄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자전거 타는 걸 그만두고 집으로 향했다.

”참, 아빠. 학교에서 이번에 행사를 하는데 가족들 다 모시고 오래. “
“무슨 행산데?”
“몰라. 무슨 다문화가정 축제라던가?”
“아. 학교에서 그런 행사를 해?”
“응. 그런데 다문화가정이 뭐야?”
“음, 수민이 학교에 엄마나 아빠가 외국 사람인 친구 있어?”
“있어. 우리 반에 지현이라는 애랑 상희 엄마가 외국 사람이래.”
“그런 걸 보고 다문화가정이라고 하는 거야. 요즘엔 외국 사람이랑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부르거든.”

“가족 전부 오라는데 고모도 올 수 있나?”
“고모? 바빠서 안 될 걸?”
“그럼 어떡해. 가족 전부 오라는데...”
“고모는 일이 바빠서 집에도 거의 못 오고 따로 살잖아.”
“그래도 가족이잖아.”
“그냥 아빠랑 가자. 할머니 할아버지는 몸도 아프시고, 고모는 어차피 바빠서 못 올 텐데...”
“그래도 되나?”
“괜찮을 거야. 바쁜 사람은 못 가는 거지, 뭐.”

“수민아. 엄마 못 가는 건 괜찮아?”
“엄마? 괜찮아. 엄마는 가족도 아닌데, 뭐.”
수민이는 언제부턴가 가족을 이야기할 때 엄마를 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수민이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수민이는 울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엄마랑 같이 살아야지. 엄마랑 우리는 한 가족이잖아.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하는 거잖아.”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고, 아빠와 함께 살면서 이제 수민이의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엄마의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학교에서 가족에 대해 공부를 하고 와서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아빠. 엄마는 이제 우리 가족이 아니지?”
“왜?”
“이제 우리랑 같이 살지 않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우리 가족이 아닌 거지?”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이 미치지 못 했었다.
수민이가 ‘가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물었을 때 화들짝 놀랐다.
한 때 아내였던 여자, 내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아이에게는 ‘가족인지, 아닌지’ 고민해야 하고 가족의 범주에서 밀어내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사실이 새삼스럽고 참 아프게 다가왔다.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결국 수민이에게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말았다.

수민이는 엄마라는 존재를 가족이라는 범위에서 떨쳐내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민이에게는 엄마를 만나는 것이 생활이 아니다.
엄마를 만난다는 것이 이제 하나의 사건,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엄마를 만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엄마한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입을 옷을 고민한다.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뒤적이고,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챙긴다.
3년 가까이 배운 벨리댄스를 엄마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며 무용복을 챙겨가기도 한다.
“엄마, 이번에 만나면 우리 수영장 가자.”

수민이는 그동안 배웠던 수영실력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만나기 전 날, 일치감치 수영복을 챙기다가 나에게 묻는다.
“아빠, 평영은 머리를 물속에 넣고 나서 발차기를 해야지?”
“평영은 수민이가 아빠보다 더 잘하면서 뭘 물어?”
“내일 엄마한테 보여줘야 하거든. 헷갈릴까 봐 그러지.”
“수민아. 엄마한테 뭘 그렇게 다 보여주려고 그래? 피곤하잖아. 그냥 편하게 놀다 와.”
“아냐. 엄마는 자주 못 만나니까,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잖아.”
“그렇게 엄마 만나서 이것저것 하면 피곤하지 않겠어?”
“괜찮아. 엄마는 날 잘 모르잖아.”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면 수민이는 우울해진다.
“아빠. 난 왜 엄마 만나고 오면 눈물이 나지?”
“자주 못 만나서 그런 거야.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어.”
“나 이런 거 알면 엄마가 슬퍼할 텐데...”
“엄마랑 언제 또 만나기로 했어?”
“엄마가 요즘 바쁘대. 그래서 바쁜 일 끝나면 전화한대.”
“그러지 말고, 엄마 목소리 듣고 싶거나 보고 싶으면 네가 전화를 해. 그러면 되잖아?”
“안 돼. 엄마 일 때문에 바쁜데 아무 때나 전화하면 어떡해.”

금요일 저녁, 수민이는 자꾸 전화기를 만지작거린다.
“수민아. 왜 그래?”
“응? 아냐, 엄마한테 전화 올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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