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살아간다는 것

나를 위한 변명

by NoZam

휴일, 딸아이도 집에서 하릴없이 있는 것이 지루했는지 몸을 뒤튼다.
“아빠, 우리 산책 가자. 요 앞 공원에 갔다 오자.”
전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해서 눈은 감기고 몸은 무겁지만, 결국 딸과 집을 나섰다.

공원에 도착하니 널찍한 공터에서는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가족도 눈에 띄고 제법 많은 아이들이 어울려 놀고 있다.


벤치에 앉아서 아이의 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모래집을 짓는 아이, 비척대며 자전거를 타는 아이... 아이들...
딸은 그 가운데 섞여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생각만큼 높이 올라가지 않자 나를 부른다.
“아빠, 그네 좀 밀어줘.”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고 있었다.
옆 자리의 그네에 자리가 나자 내 딸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사내아이가 쪼르르 뛰어와 냉큼 올라앉는다.
입 주변에 무언가 묻어 있고 연신 오물대는 걸 보니 아마도 저쪽 공터에서 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들과 일행인가 보다.

사내아이는 용을 쓰며 그네를 움직이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지 나를 흘끔 대며 쳐다본다. 딸아이의 그네는 제법 높이까지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씨름하던 아이는 큰 소리로 제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일루 와 봐. 나 잘 못 타겠어.”
아무리 불러도 아이 엄마는 돌아보지 않고 먹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응, 잘 타 봐.”
아이 엄마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게 웅얼거리며 나를 흘끗 쳐다본다.

“아저씨.”
“...”
“아저씨, 저 그네 좀 밀어주세요.”
난 그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저씨, 그네 좀 밀어주세요. 잘 안돼요.”
“...”
내가 대답이 없자 아이는 목소리를 높인다.
“아. 저. 씨.”

감정 없는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너, 아빠는 같이 안 왔니? 엄마는?”
“저기, 밥 먹고 있어요.”
“응, 가서 엄마나 아빠한테 밀어달라고 해.”

난 다시 딸아이의 등을 힘껏 밀어주었다.
‘난 내 딸 그네 밀어주는 것만으로도 벅차거든. 제 목구녕에 고기 밀어 넣느라 제 새끼 그네도 못 밀어주는 네 부모 역할까지 대신할 여유가 없단다.’

사내아이는 그네 타는 걸 포기했는지 쪼르르 제 부모에게 달려갔다.

아내와 헤어진 후로 나는 딸과 놀아주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딸아이만이 아니라 또래의 아이들과 제법 잘 놀아주고 돌봐주었었는데, 이제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이와 둘이 보내는 날들이 쌓이면서 아이가 변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날들이 생각난다. 유치원에서도 딱 보육비 받는 만큼만 아이에게 친절했다. 몇 달간 아이를 맡겼던 4층 쌍둥이 엄마도 딸에게 살갑게 대해주고 끼니도 챙겨 먹이기는 했지만 내가 건네주는 돈, 그 액수를 넘어서지 않았다. 어쩌다 식구들끼리 외식을 하게 되는 날과 내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 겹치면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고 기꺼이 식탁에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월말이면 몇 번의 외식이 있었는지 날짜와 장소, 그리고 딸아이가 먹었던 메뉴까지 정확하게 적혀있는 청구서를 내밀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나는 내 딸 이외의 아이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와 관계없는 아이들에게 눈길을 돌릴 여유 따위는 내겐 없다. 그런 자투리까지 모두 아껴 모아야 한다. 그래야 딸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될 짬을 겨우 만들 수 있다.

뉴스를 보면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온갖 안타깝고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종종 벌어진다. 예쁘장한 계집아이는 납치된 지 몇 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개구쟁이 사내아이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실족사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후진하는 트럭에 치어 숨졌다고 하고,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기가 불치의 병에 걸려 숨을 헉헉대기도 한다.
그 아이의 부모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아마도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게 되겠지?
무심결에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에그, 쯧쯧... 어쩌다가...”
하지만 거기까지다. 남들을 향한 나의 관심은 딱 그만큼이고 그걸로 충분하다.

이런 나를 보며,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사람이 저렇게 편협하고 남 생각할 줄 모른다고 비난을 퍼부을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나의 그런 이기심으로 누군가에게 더 큰 불행을 주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살라고 한다.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몇 년 후, 몇십 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렇게 살아라 한다.

결혼을 할 때, 나의 인생설계 마지막 장은 이런 모습이었다.
다 큰 자식들이 두엇 있고, 백발이 된 아내와 나는 나란히 손을 맞잡고 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기왕이면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그러던 어느 날, 둘이 나란히 누워 편안하게 잠든 상태로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이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내가 계획한 인생 설계 그 어디에도 ‘이혼’이라는 단어는 들어있지 않았다.
초등학생 딸아이와 노부모를 모시고, 잠이 모자라 꾸벅꾸벅 졸면서 버스 빈자리를 노리는 중년의 남자, 하루하루 버티기 힘에 겨워서 무릎을 짚고 헉헉대는 모습, 마흔을 훌쩍 넘긴 홀아비의 모습을 그려본 적은 없다.
그렇게 준비하지 않았던 날들이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찬란하게...
인생 설계에 실패라는 단어를 넣어본 적이 없기에, 미리 준비하지 못한 지금의 생활은 어지럽다 못해 쓰러질 지경이다.

인생은 길다고 한다. 따라서 미리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설계를 멋지게 해도 그대로 따라갈 수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나에게 인생은 달리기와 같다. 아무리 긴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신발 코만 보면서 달리는 것이 인생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 녀석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이기적으로 살아야 하느냐고 화를 낸 적이 있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것이고, 내 삶이 의미가 있으려면 남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남에게 빚 독촉을 받아본 적 없고, 일찌감치 부모가 물려준 상가건물에서 받는 임대수입만으로도 벌써 억대 연봉을 받는 이 친구에게 난 이렇게 질문을 했다.
“쌀 떨어져서 라면 먹어봤어? 별식 말고 주식으로 말야.”
“카드 값 못 메워서 돌려막기 해봤어? 룸살롱 술값 말고 생활비 때문에 말야.”
“공과금 못 내서 전기 끊겨봤어? 몇 달 여행하기 위해 집 비워서가 아니라 당장 내야 할 돈이 없어서 말야.”
“자식새끼 유치원에 늦게까지 남겨 놓아야 하는 바람에 유치원 선생들에게 고개 숙여봤어? 어쩌다 하루쯤 밤늦게 하는 공연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일매일 돈 벌기 위해서 야근하느라 말야.”
“대리운전해 봤어? 심심해서 말고 생활비가 없어서 말야.”

이 친구는 여전히 내가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투덜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난 확실히 변했다.
예전엔 웃는 모습이 제법 여유롭고 싱그러워 보인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젠 웃기 위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기억도 아득하다.
그리고 딸아이는 여전히 산책을 가자고 조른다.
“아빠, 약수터 가자. 아니면 어디 드라이브라도 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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