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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Sep 15. 2020

황희 작가의 내일이없는소녀

노랑잠수함의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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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없는 소녀 - 저자 황희 | 네오픽션 |2019.03.20.


 십여 년 전, 글쓰기에 매료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글쓰기에 대한 미련은 남아서, 가끔은 밤을 꼬박 새우며 키보드를 두들기기도 하고, 오래전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원고지 대신) 노트에 만년필로 끼적대기도 한다.

 머릿속에서는 나름 꽤 괜찮은 아이디어가 날아다니고 그걸 들여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하지만 실제 글로 남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 특히 소설가를 존경한다. 책 한 권, 또는 몇 권 분량의 이야기를 짓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소설가는 정말 말 그대로 창작자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대단한 이들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스터리 분야를 좋아한다. 작가의 눈에 띈 무언가가 의미를 갖고 쉽게 눈치 채지 못하는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미스터리 소설은 끊을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 히가시노 게이코의 책들을 몇 권 연이어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 속에서 만나는 허를 찌르는 그의 이야기들이 갖는 매력이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꾸준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를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몇 몇 작가들이 생각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책 “내일이 없는 소녀”의 작가 황희다.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황희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월요일이 없는 소년”, “빨간 스웨터”, “부유하는 혼”... 그리고 “내일이 없는 소녀”까지... 네 작품을 만나보았다.


 황희 작가의 작품은 일단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성소수자인 주인공 이야기를 하는 “월요일이 없는 소년”, 납치당한 딸을 찾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빨간 스웨터”도 그렇고 한이 서린 여인네들의 영혼이 주인공인 “부유하는 혼”도 그렇다.


 “내일이 없는 소녀”는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사건,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사건 하나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어린이 성폭행 및 상해 사건으로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낸 조두순 사건이 그것이다.

 작가가 이 사건에 무척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다는 걸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피해자의 삶은 전혀 다른 일상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뒤표지에 인쇄된 문구를 읽을 때는 고개를 갸웃했다.

 책을 읽고 보니 그 문구가 중요한 내용이라는 걸 알았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이 문구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선택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만큼의 평행세계가 생겨난다!

 사람의 기억, 슬픔, 언한 등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어떤 장소나 물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고여 있는 잔류사념.

 도이는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당한 후로 시력이 손상된 오른족 눈에 보이는 환상이 누군가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시간에 접촉함으로써 현재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분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다.

 도이는 자신처럼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잔류사념에 접촉해 새로운 평행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위 문장에서 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문장은 이 부분이다.

 “과거의 시간에 접촉함으로써 현재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분기시킬 수 있는 능력”

 작가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책을 읽기 전에는 뭔가 좀 설명이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는 본격적인 리뷰를 진행하기 전의 사족이었고...


 나는 소설을 읽을 때, 그 소설의 첫 문장에 관심이 많다.

 길고도 긴 이야기를 작가는 어떻게 시작할까? 그리고 그 첫 문장이 책의 마지막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어떤 관계를 가질까? 라는 궁금증을 갖고 책장을 넘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나이 열여덟. 이것으로 끝이다.”


 이 문장은 나로 하여금 이 소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충분히 궁금하게 만들었다.

 열여덟이면 고등학생이다. 작년의 내 딸 나이다. 그 나이면 이제 시작해야 하는, 막 피어나야 하는 그런 나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 가슴 떨리는 열여덟의 나이로 끝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열여덟의 나이로 끝을 선언하는 비극은 현실에도 차고 넘친다. 따라서 작가의 이 문장은 어쩌면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더구나 소설의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큰 사건의 피해자였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가족 구성원 모두 “죽지 못해 사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주인공 이도이는 물론이고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지석이는 현재진행중인 동성 성폭행 피해자다.


 도이는 몇 번의 자살 시도를 겪으며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고, 정말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앞서 잠깐 소개한 문장...  “과거의 시간에 접촉함으로써 현재의 삶이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분기시킬 수 있는 능력” 바로 이거다.


 사건이나 사고가 있었던 곳에는 무언가 남아 있다. 우리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대로 하자면 한이 서린 것이고, 이 책에서는 그걸 잔류사념이라고 표현한다.


 주인공은 바로 그 한, 잔류사념이 서린 곳에서 그 원인이 되는 과거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선택을 한다면 현실은 바뀌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옮겨간 평행세계에서는 바뀐 과거가 이유가 되어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지고, 도이는 다시 또 다른 평행세계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책의 마지막은 평범하지만 행복한 소년 소녀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뭐랄까?

 내가 기억하는 교복 입던 그 시절은 항상 눈부신 찬란한 아름다움과 아련한 그리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나이 오십을 넘긴지 두어 해가 지났다.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 동창들을 가끔 만난다.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나와 친구 녀석들이 이야기하는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감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게다가 그 시절의 이야기는 왜 그렇게 하나같이 아름답고 그립고 절절한지...


 이런 걸 추억이라고 부를 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단 한 번도 삶이 아름답다거나 행복하다거나 찬란하게 빛이 난다고 느낀 적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느껴지는 건 되돌아갈 수 없는 그 때가 그립기 때문일 것이고, 그래서 더 멋지게 기억되는 걸게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보여주는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딱 그렇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투덕거리고, 멋진 교복 입은 오빠를 보며 설레는 여학생이 있고, 그 앞에서 툴툴거리는 개구쟁이 남학생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더 오랜 세월을 살아서 내 나이쯤 되면 그들 역시 자신들의 십대를 “아름답고 행복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시절로 추억할 것이다.

 “지루하고 짜증나고 답답하지만 웃을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며 가슴 설레는” 그 별 것 아닌 일상이야 말로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말 특별한 선물이므로...


 결국 이 책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극히 평범하지만 절대적으로 특별한 일상을 되찾으려는 우리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의 처음은 열여덟에 끝을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열여덟의 나이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를 한다. 열여덟, 그 나이는 끝이 아닌 시작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며 끝맺음을 한다.


 “교복이 너무 잘 어울려 코끝이 찡했다.”

 그 나이는 그런 나이인 거다.


https://youtu.be/kF7xBLtbp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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