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잠수함의 무식한 북리뷰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 - 살아있으면서 죽은 고양이를 이해하기 위한 양자역학의 고전
존 그리빈 (지은이), 박병철 (옮긴이)
휴머니스트 2020-04-13원제 : In Search of Schrödinger's Cat (1984년)
문제는 “물질의 물리학”이었다.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전에 읽었던 “최종 이론의 꿈”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물리학이라는 분야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내가 이 책을 읽었다.
읽는 내내 고민을 했다.
내가 정말 심각하게 이해력이 달리는 사람인가 싶었다.
아마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관련된 자료를 이렇게 많이 찾아본 경우가 있었나 싶다.
수학, 과학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뭐 한다고 이 책을 읽느라 이렇게 고생을 하나 싶었는데….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 도대체 이 책 첫머리에 무슨 소리가 쓰여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앞 장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눈에 띈 문장
양자 이론을 접하고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닐스 보어(1885~1962)
처음에는 분명 무심코 넘겼을 1부 양자 이론 표지 뒤에 쓰여 있는 이 문장을 발견한 순간,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이 문장대로라면 충격을 받았다면 양자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거라는 말이 되는 걸 텐데?
난 양자 이론을 도통 알 수 없어서 스스로 이해력이 떨어지나 하는 자괴감에 충격을 받은 건데 이 문장대로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당혹감이 양자 이론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라는 건가?
얼마 전부터 듣기 시작한 윌라 오디오북, 지금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는 소설을 절반쯤 넘어갔다.
이런 젠장...
이 소설도 양자 이론의 다중우주를 모티프로 한 소설이다.
이 책에서는 사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아니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살아있으면서 죽어 있는 고양이에 관한 말도 안 되는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빼면 그 흔한 고양이 새끼 사진 하나 없는 책이다.
지난번에 물질의 물리학을 읽을 때 “기다려 봐. 잘하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라는 짤을 소개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간간이 언급하는데 정말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기가 막힌 SF소설을 위한 세계관을 하나 설정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학문이라고?”
“이런 말장난을 배운다고?”
“잘하면 사기도 치겠다!”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대체로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왜 이렇게 말도 안 되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를 책을 읽었을까?
어쩌면 일종의 지적 허영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책도 가끔은 읽어… 뭐 이런 기분.
결국, 우리 인간은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런 주제에 참 많이도 아는 체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학이니 뭐니 하는 학문은 결국 세상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를 인간이 알 수 있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학문일 것이다.
양자역학은 “사실 세상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이치로 돌아가는 거고 그걸 인간이 이해하는지 못하는지는 전혀 상관없어. 어쩌면 이해할 수 있다고 건방 떠는 게 우스운 일이지.”라고 말하는 학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양자역학의 핵심은 이 책에 쓰인 이 문장이 아닐까?
213P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의 이기는 양자 조리실에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양자 이론이 탄생한 지 거의 60년이 지났지만, 양자 조리법을 따라가면 왜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지는지(즉, 이론과 현실이 왜 일치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돌아가는 대로 살면 살아지는 게 현실이다. 뭐 이런 정도 아닐까?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머니께서 만든 김치는 희한하게 다른 김치보다 맛있어! 일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으며 찾아낸(?) 오류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어색한 부분 두 군데.
우선 149페이지, “어느 정도 알려진 생태였지만 ->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지만”
생태라는 단어도 물론 말이 되기는 하지만, 상태라는 표현의 오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307페이지에서 발견한 부분이다.
“파인먼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이 책에서는 리처드 파인먼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라는 책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파인만이라고 표기한다. 이건 오류인지, 아니면 국내에 소개된 책 제목이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라서 그렇게 표기한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