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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Oct 10. 2024

조지 오웰 "동물농장" 지금 우리는?

노랑잠수함의 북리뷰

동물농장 | 펭귄클래식 4

조지 오웰 (지은이),최희섭 (옮긴이),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2011-12-28 원제 : Animal Farm


펭귄 클래식 네 번째로 읽은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다.

이 책이야 워낙 유명한지라 마치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중에 동물농장만큼 유명한 책은 아마도 1984일 것이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의 제목을 패러디해서 1Q84를 발표했다고 한다. 대여한 펭귄 클래식 목록에도 1984가 있으니 조만간 이 책도 읽을 것 같다.

책 내용 자체는 우화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다. 장원농장이라는 곳에서 동물들이 공모해서 주인인 사람을 끌어내고 스스로 운영하는 동물농장을 만들고 운영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돼지, 말, 개, 양, 닭... 온갖 동물들이 머리를 맞대고 농장을 운영하고, 원주인이 농장을 되찾기 위해 돌아왔다가 결국 싸움에서 지고 그렇게 동물농장은 여전히 동물들만의 힘으로 운영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온갖 정치질과 협잡, 공포와 유언비어 등을 이용해서 농장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하는 돼지가 나오고, 원수였던 인간과 손잡으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책의 서문과 조지 오웰이 쓴 우크라이나어 판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을 발표할 당시 영국은 공산화된 러시아와의 관계가 좋았던 모양이다.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국민들조차 러시아를 비판하기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동물농장은 대놓고 이런 분위기를 반박하고 러시아를 비판하기 위해 발표한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식 출간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이 지금까지 읽었던 펭귄 클래식 시리즈 중에 가장 손쉽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서문, 작가 서문, 판권 안내가 있는 건 비슷하지만 실제 소설 내용은 비교적 쉽게 전개된다. 게다가 의인화된 동물의 이야기인지라 내용도 어렵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 운영 체제와 비교하게 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이 책은 1945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고 한다. 발표된 지 80년 가까이 된 책이다.


과연 2023년 12월의 대한민국은 동물농장의 이야기와 얼마나 다를까? 얼마나 민주적이고 얼마나 인간적이며 얼마나 평화적일까?


동물농장의 권력자 돼지 나폴레옹보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자 역량이 얼마나 뛰어날까 궁금하다.


“봄철 내내 그리고 여름철 내내 동물들은 일주일에 육십 시간씩 일했다”


“그들은 삶이 고단하고 희망이 모두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신들이 다른 동물들과 같지 않다는 것은 의식하고 있었다. 설령 굶주리더라도 포악한 인간을 먹여 살리기 때문은 아니었고, 설령 힘들게 일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했다. 그들 중에서 어떤 동물도 두 발로 걷지 않았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모든 동물이 평등했다.”


“사회조직이 유지되는 한 어느 정도 검열은 항상 있어야 하고 어쨌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자유는 ‘다른 동료들을 위한 자유’이다. 동일한 원칙이 볼테르가 이야기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에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내용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내 목숨을 걸고 옹호할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서구 문명사회의 뚜렷한 특징 중의 하나인 지적인 자유가 어떤 의미를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이는 발표하는 의견이 어떠한 경우에도 공동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누구나 진실이라고 믿는 바를 말하고 출판할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우리 시대의 독특한 현상 중의 하나는 변절한 자유당원이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친숙한 주장과 더불어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적인 수단으로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유포되는 경향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적을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붕괴시켜야 한다. 그러면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그 적은 항상 민주주의를 공공연하게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상을 유포시켜 민주주의를 ‘객관적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도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모든 독립적인 사상의 파괴를 포함한다. 이 주장은 러시아인의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옹호했던 전체주의적인 수단이 본인들에게 불리하게 쓰이는 때가 올 수도 있음을 알지 못한다.”


“나는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반대하는 모든 주장을 잘 알고 있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과 자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모두를 알고 있다. 나는 다만 그러한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는 사실과, 사백 년에 걸친 우리 문명이 그러한 주장에 반대되는 정신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만 말하겠다. 지난 십 년 동안 나는 현재의 러시아 정권이 사악한 정권이라고 믿어왔고, 승리를 바라는 전쟁에서 소비에트연방이 우리와 동맹국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나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한 구절을 골라야 한다면 나는 존 밀턴의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선택하겠다.


옛 자유라는 알려진 법칙으로

여기서 옛이라는 단어는, 지성의 자유가 전통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독창적인 서구 문화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웰은 프랑스어 번역본의 제목으로 ‘사회주의 동물 공화국 연합’(URSA: 라틴어로 ‘곰’을 뜻함.)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프랑스어 판에서 나폴레옹은 ‘세자르’(César), 즉 ‘카이사르’로 바뀌어 표기되었다.”


https://youtu.be/a2rb4SxG3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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