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왜요? 이유가 뭐예요?

나를 위한 변명

by NoZam

“이혼남”이라는 딱지를 이마빡에 붙이고 다니는 기분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내 이혼 이야기가 몇 차례는 지나갔고, 이제는 제법 식상한 주제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친구는 멈칫하는 모습을 보인 뒤 묻는다. “왜 그랬어?”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는 참으로 고역이다. 몇 년에 한 번 볼까 싶은, 가끔은 누군지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분들이 다가와 은근히 묻는다. “왜 그랬어?”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하다 보니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생기게 된다.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식사를 할 때, 커피 한 잔 하면서, 아주 가끔 회식을 하게 되면 이들도 또 묻는다. “왜 그랬어?”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왜 이혼을 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삶이 바뀌었는지, 힘 들지는 않은지... 이런 내용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냥 궁금할 뿐일 거다.

“왜 이혼을 했어? 이유가 뭐야?”

모든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있다.
드라마도, 영화도, 노래도 시작을 하면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런데 절대 끝나지 않는 게 있다. 사람들의 호기심 말이다.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하는 그 호기심은 절대 끝나는 법이 없다. 다만 대상이 바뀌고 주제가 바뀔 뿐이다.

내가 무슨 특별한 재주나 기이한 능력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궁금해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게 있다. 내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격렬하게 궁금해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묻는다. “왜 그랬어?”

사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는 사람의 변화에 대해,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 하고 물어보게 된다.
내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내게 궁금증을 갖고 물어보는 걸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조금만 살살”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나는 햇수로 삼 년째 서예를 배우고 있다.
서실에서 만난 거대한 풍채의 왕반장님이 그렇다. 붓글씨를 쓰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왕반장님께서 들어오셨다.
“어? 우리 막내! 여기서 뭐해?” 세상에, 나이 오십이 낼모렌데 막내라니... 뭔가 무척 어색한 느낌이다.
“아! 네. 잠깐 쉬고 있습니다.”
“맞다. 자네 이혼했다며?” 우렁우렁 한 목소리로, 참 큼직한 질문을 던지신다.
“네? 아... 네.”
“왜 그랬어? 요즘은 이혼한 사람들이 많아서 별로 흉도 아니야. 그치?”
웃으며 서실로 돌아왔다.
서예 공부를 끝내고 서실을 나서는데 왕반장님이 부른다.
“막내! 바빠?”
“아뇨. 뭐, 바쁜 일은 없습니다.”
“그럼 일루 와서 나 좀 도와줘.”
서예대전 출품을 준비하는 중이라 꽤나 바쁘신 모양이다. 커다란 전지에 꽉 채운 글은 정말 기가 막히다. 벽 한쪽에 왕반장님께서 쓰신 글을 모두 걸었다. 어떤 게 가장 나은지 물으신다.
“왼쪽 두 번째가 좋아 보이는데요?”
“응. 나도 그게 젤 좋아 보이네.”
몇몇 사람에게 묻고는 왼쪽 두 번째 글로 결정을 하시곤 그 글에 대해 설명을 하신다. 조선시대의 문사가 쓴 글인데 가정의 화목과 자녀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글이란다. 설명 끝에 툭 한마디 던지신다.
“근데, 자네 왜 헤어졌나?”
“네?”
“이혼했다며? 이유가 뭔가?”
두 번째 똑같은 질문이다.
“네. 뭐, 성격차이 때문이죠.”
“에이. 성격이 다르다고 이혼을 해? 그건 아니지. 자세히 이야기해봐.”
덩치만큼이나 큼직한 목소리로 물으니 서실에 남아있던 몇몇 사람들이 흘끔 대며 쳐다본다.
“에이. 뭐 그런 걸 물으세요? 별로 재미없어요.”
얼버무리는 내게 또 한마디 하신다.
“이야기해봐. 뭐가 문제인지 내가 알려줄게. 자네도 재혼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려면 문제가 뭔지 알아야 하거든. 정확하게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면 재혼도 실패할 수 있어.”
왕반장님 머릿속에서 나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남자가 되어 버렸고, 재혼도 실패할 수 있는 위험한 남자가 되었으며, 그 덕분에 서실에서 나는 이혼남이라고 소문이 나게 생겼다.


“아따! 왕반장. 뭐 그런 걸 물어? 남의 가정사 들어서 얻다 쓰게?”
평소 말씀이 없으신 정선생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아니, 그렇잖아요? 뭔가 문제가 있었으니까 이혼을 했을 텐데, 그걸 제대로 알아야 고치죠. 오래 산 사람이 충고하려고 하는 건데 뭐가 어때서요?”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어?”
정선생님께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는 서실을 나섰다.
서실 왕반장님은 내게 무슨 말을 듣고 싶었을까? 앞으로 계속 서실을 다녀야 할까? 다른 데로 옮기는 게 나을까? 짐짓 고민이 된다.

지난 봄에 알게 되어서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동료가 있다. 말이 잘 통하고 화끈한 성격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학 후배인데다 사는 지역도 같고 여러모로 마음이 잘 맞는다.
제법 친해져서 이제는 형 동생 하기로 했는데, 드디어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진짜?”
“응.”
“왜?”
“무언가 안 맞았으니까 그랬겠지?”
“그랬구나.”
이게 전부였다. 그 뒤로 두 번 다시 묻지 않는다. 좋았다.
적당한 무관심, 적당한 거리두기...
가끔은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다.

어쩌면 단지 그것만이 궁금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 이유가 뭔데?”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또는 힘들었는지, 상처가 얼마나 깊고 고통스러웠는지...... 관심 없다.
그냥 딱 하나... “왜?”
그래야 이야깃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저기... 그 사람... 왜 그랬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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