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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 앨런 바너드

by NoZam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l 앨런 바너드 (지은이) | 김우영 (옮긴이) | 한길사 | 2003-10-20 | 원제 History and Theory in Anthropology (2000년)

언젠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운전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날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방송 내용 때문이었다. 꽤나 흥미로워서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다시 듣기로 몇 번을 들었으니까...

어느 대학교수의 강의를 들려주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걸 옮기면 이렇다.

우선 선진국에 대해...

- 현재 선진국인 나라들은 거의 대부분 제국이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 제국은 스스로 기준을 만들고 이끌어나가는 입장이다.

- 제국의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는 제국의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다.

- 따라서 선진국이 되려면 상상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국가의 경영에 대해...

- 최근 우리나라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 나라는 처한 상황에 따라 국가 경영에 필요한 학문이 따로 있다.

- 정치학, 경제학, 경영학, 수학, 과학이 필요한 수준의 나라가 있다.

- 나라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국가 경영에 필요한 학문이 달라진다.

- 지금 우리나라는 인문경영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 그럼 인문학 이후에는 어떤 학문이 필요할까?

- 인류학, 고고학과 같은 학문이 필요할 때가 온다.

대략 이런 정도의 내용이었다.


당시 한창 재미있게 인문학 관련 책들을 읽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인문 필독서부터 시작해서 어지간한 고전들을 열심히 읽던 시기였는데, 이 라디오 방송 덕분에 인류학, 고고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인류학, 고고학 입문서 수준에 해당하는 책을 사야겠다고 맘먹고 몇 권 구입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이다.


이 책은 인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 인류학 학문 역사상 중요한 인물에 대한 소개,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책과 함께 주문한 고고학 입문 책은 읽으면서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학교 고고학과의 교과서 같은 느낌이었다. 유물을 검증하는 데 필요한 방법은 무엇이고, 각각의 신뢰도가 얼마나 높은지, 유적지를 발견하면 어떤 방법으로 발굴을 진행해야 하는지...

어쨌든 일반인을 위한 고고학 입문서는 아니었다.

그에 반해 이 책,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은 제법 잘 선택한 것 같다.


무수히 많이 등장한 인류학자 이름을 외우지는 못했지만,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학문인지 감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고도 많다.

인류학은 어쩌면 이런 배워야 할 것들 중에서 가장 실질적인 학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인간의 역사가 전개되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니, 나는 누구이고, 내가 속한 인간이라는 종족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인류학에 관한 책들을 조금은 더 찾아보게 될 것 같고,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훌륭한 소개서가 되어 주었다.


인상적이었던 건-이 책에서 그런 건지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에 대한 다양한 주장과 그 해석을 언급한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문화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문화가 생성되고 유지되며 전통을 갖게 되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인지 궁금했었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곤 했다. 딱 잘라 “이것이다~”라는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않았지만, 문화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진지하게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도 또 하나의 수확일 수 있겠다.

내가 밑줄 그은 문장 몇 가지...


42P

인류학적 사고의 또 다른 발단은 ‘거대한 존재의 사슬’(Great Chain of Being)이라는 개념으로, 이 개념에 따르면 인종은 신과 동물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 사실 나는 인간이 무언가 대단히 특별하게 선택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동물, 아니 세상의 모든 물질, 생명체에 비해 특별해야 할 이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사자나 지렁이가 단 한 번이라도 인간이 자신들보다 고등하다고 인정했다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까. 스스로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 그리고 조금도 그 사람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상황이 아닐까?

어쨌든 인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런 관점을 갖는다고 한다. 인간은 조금 더 특별하다고...


75P

오이디푸스에 대한 그리스 신화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는 오래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한 ’ 기억‘이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 민족 신화는 대부분 공통적으로 특별한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홍수에 대한 전설도 있고...

이렇듯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서로 다른 민족이 비슷한 전설을 갖고 있는 건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고릿적 옛날 있었던 사건을 기억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프로이트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거지?


77P

타일러는 실제로 모든 인간사회에서 죽음을 초월하는 영적인 본질에 대한 공통된 믿음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 인간에게 절대적인 공포의 벽이 바로 죽음이 아닐까 싶다. 이 죽음을 극복하고 싶어서 죽음 이후를 생각하게 되고, 신의 존재를 상상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인간은 어쩌면 참으로 어쩔 수 없는 겁쟁이?


124P

얼핏 보기에는 가장 개인적인 행위인 자살조차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반을 갖는다는 것이다.

- 우리나라의 자살자 숫자로 전 세계 1위에 해당한다던가? 자살이 사회적 기반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라는 말에 100% 공감한다.


161P

“전체 체계는 하위 체계에 내재하는 갈등에 의존한다.” (Gluchman 1955: 21)

- 여기서 말하는 전체 체계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전체주의”를 말하는 거겠지?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국민들이 서로 악다구니를 쓰며 쌈박질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전체주의가 갖는 특징이라고?


193P

서로 다른 문화의 구성원들은 다르게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사고방식은 다른 것보다 원시적인가?

- 사실 범지구적(?) 차원에서 보자면 뚜렷하게 이런 흐름이 보인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힘이 있으며 잘 산다는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 내전이니 뭐니 해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나라를 홀대하는 걸 본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고... 우월하다는 의식, 내가 남보다 낫다는 선민의식이야 말로 우리가 겪는 모든 비극의 출발점은 아닐까?

323P

나는 나 자신이 읽은 방식대로 인류학의 역사를 구성했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다르게 읽고, 해석하고, 구성하고, 해체할 것이다.

-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인류학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원하는 대로 재조립해서 내재화한다.

이 문장을 몇 번 읽었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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