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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Nov 15. 2017

천년만에 깨어난 바이킹 선박들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노르웨이  8


1, 천년만에 깨어난 바이킹 선박들


춤추고 노래하고 마시고 소리 지르고, 흔히 보는 축제의 장면들이다. 도시 입구에서부터 차량 진입이 쉽지 않다. 예상은 했지만 이 작은 마을에 오랜만에 축제를 벌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도시 외곽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시내로 향한다.


9월 초순의 어느 날 톤스베르그(Tønsberg)는 축제 중이었다. 많은 도시들이 해마다 특정일을 정해 축제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가만 얘기를 듣고 보니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에서 바이킹 오세베르그호가 발견된 것을 자축하는 행사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유심히 살펴보니 다른 바이킹 축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바이킹 전투를 재현하는 모습은 별로 보이 지를 않는다. 대신 춤추고 노래하고 강당에서는 문화적인 내용을 가지고 열띤 토론도 진행 중이다. 참 진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중심에 있는 포구에서 오세베르그 호 복사선이 보인다. 사람들은 이 배를 타고 예전 바이킹들의 위용을 탐하려는지 신이 나 있다.


서기 820년 바이킹 시대가 한창이던 시기에 오세베르그호(Oseberg ship)가 태어난다. 그리고 얼마 후 이 배는 바다에 누군가를 싣고 무덤처럼 사라진다. 그 후 잊혀 있던 오세베르그호는 1000년이 훨씬 지난 1904년 사람들 눈에 띈다. 오랜 기간 잠을 자던 오세베르그호가 깨어나는 순간이다.


톤스베르그의 오세베르그호 발굴현장

* 톤스베르그(Tønsberg) 바이킹 축제 장면들(오세베르그 바이킹 축제는 해마다 9월 2째주 주말에 열린다.) 

* 톤스베르그 선착장에서 오세베르그호 복제선을 타고 유람 중인 사람들

* 톤스베르그의 바이킹 박물관(오세베르그호 기념관)과 오세베르그호 복제 선들 




2. 오슬로 바이킹 선박 박물관


오슬로 바이킹 선박 박물관에 3척의 배가 전시되어 있다. 이 배들은 바이킹 시대가 한창인 9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건조된 것들이다. 또한 배와 함께 소장품 등이 발굴되어 함께 전시를 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 중인 바이킹 선박들은 모두 오슬로 피요르드 지역에서 발굴되었는데, 오세베르그(Oseberg)와 곡스타드(Gokstad), 그리고 튜네(Tune)와 보레(Borre)에서 발굴된 것들이다. 발굴지역은 모두 오슬로에서 남쪽으로 100~15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오세베르그는 톤스베르그에서 배가 발견된 동네 이름이다.) 


오세베르그호는 서기 820년에 , 그리고 곡스타드호는 890년 경에, 그리고 튜네호는 910년 경에 제조된 것으로 추정한다. 보레(Borre)호는 900년 경에 제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배의 형체는 알 수가 없고 배에 사용한 쇳조각들만 발견된 상태이다.


오세베르그호는 깊은 진흙 구덩이에 박혀있는 덕분에 배의 원형이 상대적으로 덜 파손이 되었다. 오세베르그호의 길이는 21.6m, 최대폭은 5.1m, 그리고 배의 깊이는 1.6m로 결코 작은 배가 아니다. 선박에는 15쌍의 노와 정사각형 돛을 사용했다. 이 배는 묘지로 매장되기 전까지 여러 해 동안 항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배의 앞뒤 장식은 바이킹 선박 특유의 ‘긴 뱀’의 형상을 하고 있다.


* 긴 뱀의 형상을 한 오세베르그호의 자태, 돛과 배의 보존상태가 좋다.



오세베르그호를 발굴할 때 두 명의 여자 인골이 함께 출토되었다. 한 사람은 50세 정도의 여성이고 다른 한 사람은 7~80세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둘 중 누가 더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인지는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둘 중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종이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153cm 정도의 키를 가졌고 여왕처럼 귀족 장식품과 각종 가구류가 함께 발굴되었다.


배안에서 발굴된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용머리 장식품이다. 용머리 장식품 5개가 발굴되었는데, 이들 중 4개는 박물관에 현재 전시 중이고 나머지 하나는 파손 상태가 심해 박물관 창고에 보관 중이다. 또한 이들 중 1개는 은으로 된 조각들로 장식을 했는데 무척 화려한 자태를 보여준다. 


* 은장식을 한 용머리 장식품(왼쪽)

* 높이 50cm 정도 되는 크기의 나무로 깎아 만든 장식품들(무덤 속에 수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곡스타드호는 1880년 에 발굴되었다. 서기 890년에 제조된 곡스타드호는 서기 900년에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남자가 죽자 이 배에 그를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키는 제법 큰 편이었는데 181~183cm 정도이다. 그는 왕족이었거나 바이킹 수장이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곡스타드호는 말 12마리와 개 6마리로 장식한 침대와 함께 발굴되었다. 그리고 이 배와 함께 소형보트 3척도 발굴을 했다. 곡스타드호는 상대적으로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노르웨이에서 발견된 바이킹 선박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곡스타드호의 길이는 24m, 배 중앙의 폭은 5m, 양쪽 각각 16명씩 총 32명이 노를 저을 수 있는 전형적인 바이킹 선박이다. 그리고 곡스타드호는 바이킹의 묘실로 사용되었던 배이기 때문에 발굴 당시 바이킹 시대 유물들을 싣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바이킹 선박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선체의 판자가 매우 얇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바이킹 선박의 속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실제로 곡스타드호의 판자 두께는 약 1인치 즉 2.5cm 정도였는데 24m 길이에 달하는 그 크기에 비하면 이는 굉장히 얇은 편에 속한다. 이와 함께 비교적 좁고 높은 뱃머리를 가진 선체의 외형도 시선을 모을 정도로 충분히 아름답다. 


* 곡스타드호 발굴 현장과 함께 발굴된 마차(나무로 깎아서 만들었다.)

* 곡스타드호의 자태,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다.

* 곡스타드 복제선이 지난해 오슬로를 출발해 대서양을 횡단하고 시카고 국제박람회장에 도착해 위용을 뽐내고 있다.

* 2016년 4월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킹선박인 하랄드 호그파레 드레곤호(Draken Harald Hårfagre)가, "Expedition America"의 기치를 내걸고 노르웨이에서 북대서양을 가로 질러 예전 노르웨이 바이킹의 점령지였던 스코트랜드 북쪽의 셔틀랜드 제도와 페로 제도, 아이슬란드, 그린랜드, 뉴 펀들랜드, 그리고 세인트 로렌스 해로를 따라 장장 5개월 동안 항해를 했다.



바이킹 선박으로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역시 '속도'와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유연하고 가벼운 선체는 보통 물 위로 떠올라 움직인다. 즉 선수파 때문에 배 앞머리가 살짝 들리기 때문에 엄청난 속력을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곡스타드호의 복제 선은 시속 3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 범선 치고는 굉장히 빠른 속도이다.


투네(Tune)호는 1867년 오슬로 협곡 동쪽 해안 근처에 있는 프레더릭스타드(Frederickstad) 인근의 작은 섬 롤프쇠이(Rolvsøy)에서 발견된다. 선수와 선미가 없는 투네(Tune)호는 서기 910년에 장례용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이 배의 길이는 18m, 배의 최대폭은 4m이다. 


투네호는 배 밑바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이 부패된 채 발굴되어 선박의 모습은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투네호는 원거리 항해용으로 이용된 듯한데 발굴 당시 배안에서 남자의 인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목관과 마차 같은 부장품도 함께 발굴되었다.


* 박물관에 전시 중인 투네호의 모습, 선체 바닥만 남은 상태이다.




3. 전설의 바이킹 ‘롱쉽’


바이킹 시대에 가장 위용을 자랑하던 배가 있었다. ‘롱쉽’(longship)이라고 부르던 이 배는 일명 ‘긴 독사’(Long Serpent)라고도 불렀다. 이 배는 또한 ‘드래건 호‘(Dragonships)라고도 했는데 당시에 가장 길고 웅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배는 용의 머리를 깎아 만든 장식품을 선수에 달았는데 이 장식은 바이킹들에게 주술적인 효과를 주는 듯했다. 배의 선수에 용머리 장식을 하면 그 용의 무서운 위력이 배를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용은 중세시대에 이르기 전까지 그다지 나쁜 동물로 취급되지 않았는데 중세시대에 이르게 되면 점차 사악하고 괴력을 발휘하는 나쁜 동물처럼 취급을 당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 전파와 관련이 있는데, 기독교의 신보다 힘센 동물이나 괴력을 가진 그 어떤 짐승도 있을 수 없기에 점차 사탄이라는 이름으로 내몰리게 되고 그 피해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 것이다.(* 베오울프 참조)


바이킹 시대는 아직 기독교로 개종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이기에 용을 장식으로서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용머리 장식을 배의 선수에 달고 바이킹 함선들이 위세를 떨치려 한 것은 당연한 처세였을 것이다. 여하튼, 바이킹 함선은 주로 왕과 바이킹 수장들을 위해 제작되었는데, 긴 독사라 부르는 이 바이킹 전함은 당시 노르웨이 왕 올라프 트리그바손(Olav Tryggvason: 960-1000)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이런 대형 함선은 아마도 노르웨이 북부에서 처음 개발되었던 듯하다. 


이 배의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의 바이킹 선박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는 점이다. 그리고 배의 돛대와 함미를 도금으로 장식을 해 아주 고급스럽고 귀티 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긴 배의 양옆을 넓게 만들어 더 많은 인원을 태울 수 있게 했다.


* '롱쉽'에 탑승해 지휘하는 올라프 트리그바손의 모습(왼쪽), 덴마크와 스웨덴 연합군이 올라프 트리그바손의 '롱쉽'을 공격하고 있는 스볼더 전투 장면(오른쪽)/ 스볼더는 오늘날 독일의 뤼겐(ruegen)으로 추측된다.



"배는 마치 한 마리 용과 같았다. 그러나 이 배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머리와 아치형 꼬리는 모두 금테를 둘러 장식을 했다. 이 배는 당시 노르웨이에서 제작된 최고의 값 비싼 바이킹 함선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배의 길이는 48m, 68.5개의 섹션과 노 젓는 공간으로 34개의 섹션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반 섹션에는 여덟 명이 앉을 수 있었고 그 외 30명의 선원이 탑승함으로써 이 배에는 모두 574 명의 선원이 승선해 항해를 했다 “고 한다.


이처럼 당시 용머리 장식을 선수에 매단 올라프 왕의 함대는 영국을 침공해 위력을 떨치기도 하지만, 결국 적들의 엄청난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고 만다. 잉글랜드 노섬브리아(Northumbria) 백작인 에릭(Eric Håkonsson)과 스웨덴의 올라프(Olav) 왕, 그리고 덴마크의 스베인(Svein) 왕의 연합군이 모두 71척의 전함을 가지고 스볼더(Svolder) 협곡에서 매복을 하고 올라프 왕을 기다린다. 올라프 트리그바손 노르웨이 왕은 단지 11척의 전함만을 가지고 혼자 이들과 전투를 벌여야 했기에 결국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긴 독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올라프 왕과 함께 수장되고 만다.


스웨덴, 덴마크 연합군 병사들이 노르웨이 왕 올라프가 바다에 빠져 서서히 사라지려는 순간 그를 생포하려 했지만 그는 방패로 머리를 덮으며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Robert Wernick, The Vikings 참조)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올라프 트리그바손 노르웨이 왕의 무용담은 어느새 전설이 되었고 그의 용맹함은 트론헤임(Trondheim) 시내 한복판에 높이 솟은 기념탑으로 남아있다.




* 참고 자료

오슬로 바이킹 선박 박물관 사이트: http://www.khm.uio.no/english/visit-us/viking-ship-museum/

Robert Wernick, The Vikings(NOOK Book/ eBook), Barens & Noble.


* 도시 한복판 광장에서 위용을 뽐내는 올라프 트리그바손 왕의 동상(높이가 18m나 된다.)
* 올 로프 (Olav)왕은 995년 노르웨이 최초의 교회(Nidaros Cathedral)를 세우고, 트론헤임(Trondheim) 도시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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