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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Nov 26. 2017

로포텐에서 만난 오로라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노르웨이  10


로포텐을 처음 가던 날 하필이면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로포텐은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가 보다고 로포텐 여행을 단념할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예정된 비행기 일정이 취소가 된 때문이었다. 이유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언제 다시 비행을 하는지 아무 정보도 알려주지를 않는다. 그저 막막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동안 이런 비슷한 경우가 몇 번 있었지만 똑같은 일이 또다시 반복되리라고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기에 그저 막막하다는 게 가장 적합한 표현인 듯싶다. 언제인가 그린란드를 갈 때처럼 기상상태가 나빠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면 규정상 모든 손해는 개인이 모두 감내하고 아무 보상도 받을 수 없단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행히 상황이 다르다. 오슬로를 출발한 비행기가 로포텐 이브네스/나르빅 공항 상공까지 갔다가 무슨 연유인지 갑자기 오슬로로 되돌아온 것이다. 


잠시 후 노르웨이 항공사 직원인듯한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숙박에 대한 안내를 한다. 현지인들은 대개 여행을 포기하는지 반이상이 되돌아가고 나를 비롯한 외국인 여행객들은 대부분 직원이 소개한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도착지에 예약한 렌터카와 숙소는 취소나 환급이 안 되는 조건으로 조금 더 싼 가격으로 모두 카드로 선 지불해 놓은 상태이다. 그러니 늦는 만큼 손해를 봐야 한다. 여행 중 제일 아까운 것은 역시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다. 이번에도 일정을 억지로 쪼개 로포텐에서 잠시 머물려했던 게 화근이 되고 만 것이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다. 초조하게 호텔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점심때가 지나서야 연락이 온다 공항으로 나오라고 한다. 하지만 늦은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출발을 한다. 늦은 시각에 가고 보니 거의 이틀을 늦은셈이다. 로포텐에서 지내야 할 일정이 너무 짧지 않은가. 도착하자마자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여전히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 로포텐을 다 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수록 로포텐은 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다시 찾은 로포텐...



예정에도 없던 특별기를 타고 저녁 8시가 다 되어 로포텐 오른쪽 끝에 있는 이브네스/나르빅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예약한 렌터카를 찾으려는데 담당 직원이 예약한 자동차보다 등급이 높은 자동차를 내준다. 원래는 골프를 예약했는데 티구안을 내준 것이다. 그것도 3천 Km 밖에 안 탄 것으로 말이다. 그 덕분에 순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로포텐 반도 맨 우측 이브네스/나르빅(Evenes/Narvik) 공항부터 맨 왼쪽 오(Å) 마을까지 대략 300Km 정도인데 숙소를 예약한 목적지 헤닝스베어(Henningsvær) 까지는 200Km 정도이다. 다행히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저 E10번 도로만 계속 따라가면 되니 운전만 잘하면 된다. 


거의 세 시간을 달려 로포텐 중간 거점도시 스볼배르(Svolvær)를 지난다. 여기서부터 숙소가 있는 해닝스베어까지는 삼사십 분 거리이다.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에 피로가 몰려오는듯했다. 그때였다. 스볼배르를 막 통과하는 순간 경찰이 차를 가로막고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남녀 혼성 캡이 길을 막고 음주단속 중이다. 젊어 보이는 여성 운전자가 언성을 높이며 경찰과 대치(?) 중이었다. 남자 경찰관이 다가와 내게 불라고 도구를 내민다. 씩 웃으며 있는 힘껏 불어댄다. 경찰관은 이상한 사람다 보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베리 굿"을 외친다. 아무 흔적도 나타나지 않자 경찰관은 어디서 온 거냐며 묻고 가도 좋다고 한다.  방금 로포텐에 도착했고 해닝스배어까지 간다고 하니까 자기가 호위를 해줄까라면서 농을 한다. 꽤 늦은 시각인데 음주단속을 하다니 좀 의아하게 보였다. 아무튼 여성운전자는 여전히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나는 숙소로 향했다.  


얼마를 달렸는지 거의 목적지에 가까이 온 듯했다. 사진에서 봤던 마을 어귀에 있는 다리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하늘에 무언가 보이는 듯했다.(* 티구안 차량 지붕은 전체가 투명해 하늘을 보기가 좋다.) 차를 공터에 세우고 하늘을 유심히 보는데 “아 저게 그 오로라?”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문득 머리 위로 굵은 초록빛이 스치듯 지나간다. 약간 두렵기도 하고 뭔가 내게 신의 계시가 내리는 건가라는 야릇한 느낌 속에 카메라를 집어 든다. 그리고 삼발이를 찾는데 이런 카메라 바닥에 끼울 배꼽 나사가 빠져 차량 바닥 어딘가로 떨어져 버린다. 또다시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오로라를 삼발이 없이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다음날 차에서 나사는 찾았다.)


오로라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감히 손각대로 숨을 참아가며 촬영을 하는데 그나마 ISO를 최대치로 올리고 차에 바싹 기대어 촬영을 한다. 20초만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담배를 끊은후 수전증은 어느정도 없어진듯 했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몇장은 볼 수 있을 정도 사진을 건진 것 같았다.(* 그때 촬영한 사진들이 여기 올린 사진들이다.)


대충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자정이 다되어 도착한 숙소는 정갈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오전 9시 출발 비행기에 맞출 수가 있다.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5시 조금 안되어 무조건 숙소를 떠나야 한다. 문득 주인장이 보내준 이메일이 생각났다. 비행기가 취소되어 어제 도착하지 못한 걸 알았다면서 내일 하룻밤 공짜로 묵어도 좋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씨가 기분을 좋게 한다. 비행기 취소로 기분과 일정은 망가졌지만 그래도 이런 고마운 마음씨 덕분에 기분 좋게 떠나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 다음에는 좀더 여유 있게 날을 잡아서 다시 오자고 생각하고 잠시 눈을 붙인다.


*숙소가 있는 해닝스배어(Hanningsvær) 야경, 낮에 본 해닝스배어 포구

* 새벽 5시가 안되어 숙소를 출발, 이브네스/나르빅 공항까지 3시간 정도 가면서 만난 경치들(차례대로) 

 험준한 바위산과 바다를 감싸고 환하게 웃는 보름달과 달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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