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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Dec 25. 2017

핀란디아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핀란드  3


1. 교향시 ‘핀란디아’


오 핀란드여, 이제 너의 새벽이 밝아온다.

빛과 함께 어둠은 지나가고 공포는 사라졌으니

찬란한 아침 속에 종달새는 다시 노래하네

저 높은 천상의 대기로 충만해

아침해는 이글거리고 밤의 어둠은 사라졌으니

너의 날이 온다. 

오 나의 조국이여, 핀란드여, 일어나 미래를 향해 당당히 서라.

너의 자랑스러운 과거는 다시 기억되리니

핀란드여, 아름다운 이마에서 굴종의 흔적을 떨쳐내라

압제자의 지배에도 무너지지 않았으니

너의 아침이 오리라, 나의 조국아.


이 시는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 찬가’ 가사이다. 1900년 7월, 파리박람회에서 핀란드의 카야누스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핀란디아’를 연주한다. ‘핀란디아’는 그렇게 파리에서 초연되었고,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다.


이 노래는 점차 핀란드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러시아 정부는 핀란드에서 이 곡을 연주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킨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는 이 작품의 제목인 ‘핀란디아’라는 이름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킨다. 


‘핀란디아’라는 이름으로는 연주회를 할 수 없게 되자 검열을 피하기 위해 한동안 ‘즉흥곡’이나 다른 이름으로 공연을 한다. 예를 들면, ‘핀란드에 봄이 찾아올 때의 행복한 기분’, 또는 ‘스칸디나비아의 코랄 행진곡’ 등으로 속이기도 했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곡 중간에 나오는 장중한 코랄풍 선율이 ‘핀란드 찬가’ 임을 금방 알아차렸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한 촉매제로 생각했다.


이 핀란디아 찬가는 나중에 베이코 코스켄니에미(Veikko Koskenniemi)가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교향시 중간부의 선율에다가 ‘핀란디아 찬가’라는 시를 써넣어 '핀란디아 찬가'라는 합창곡을 만든 것이다. 이 곡이 오늘날 핀란드에서 애국가처럼 부르는 ‘핀란디아’인 것이다.


시벨리우스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러시아에 항거하기 위해 시벨리우스는 이 곡을 만들었고 핀란드 국민들은 아직도 그를 국민음악가로 칭송하면서 이 곡을 핀란드의 제2의 국가처럼 사랑하고 있다.


* 헬싱키 시내에 있는 시벨리우스 공원에 설치한 파이프오르간 조형물과 시벨리우스 흉상




2. ‘핀란디아’의 탄생


1899년 2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핀란드 공국의 자치권을 제한하는 ‘2월 선언’을 발표한다. 이 조치는 핀란드 문화예술인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러시아는 핀란드를 러시아화 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러던 중 핀란드 문화예술단체는 그해 11월, 언론인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이 행사는 핀란드 언론인들의 연금 기금 모금을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당시 34살의 혈기왕성한 청년 시벨리우스도 이 행사에 참여한다. 


문화예술인들은 이 행사를 위해 핀란드의 역사를 다룬 연극 공연을 준비한다. 모두 7 작품으로 구성된 ‘역사적 정경’이란 제목의 역사극인데, 일곱 개의 작품 하나하나는 핀란드의 역사적 내용들을 묘사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이중 여섯 번째 작품인 ‘거대한 증오’(Great Hate)는 러시아 정복자들의 파괴행위와 조국 핀란드가 눈보라 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인들이 얼마나 전쟁과 기아,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지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에 자극받은 시벨리우스는 이 작품 다음에 이어지는 마지막 일곱 번째 곡을 작곡하면서  ‘수오미여 일어나라’(Suomi herää)라는 제목을 붙인다.(* ‘수오미’는 핀란드의 별칭으로 호수와 늪의 나라라는 의미가 있다.) 

당시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 문화인들의 이런 행사는 국민들 저항의식 고취와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인데, 특히 시벨리우스가 택한 음악적 기여는 실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 온다.


이 작품을 위하여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부분은, 각 장면을 위한 전주곡과 대사의 배경을 위한 반주곡, 그리고 피날레 부분이었다. 시벨리우스는 이 극음악을 가지고 후에 '역사적 정경'(Op.26)과 교향시 '핀란디아'를 만든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오랜 시간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한 핀란드 사람들, 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이 ‘핀란드여 일어나라’가 바로 ‘핀란디아’의 초기 버전이다. 이 작품 속에 담긴 열렬한 애국심을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금방 감지할 수가 있지만, 처음 이 곡을 발표할 당시에는 청중도 비평가들도 이 곡의 의미를 잘 몰랐었던 것 같다고 시벨리우스 연구가 칼 에크만(Karl Ekman)은 밝히고 있다. 


이 행사가 있은 후 카야누스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마다 시벨리우스의 표제음악 중 좋은 곡들을 골라 연주를 한다. 특히 이 모음곡의 피날레 부분을 유럽 순회공연에서 빼놓지 않고 연주를 한다. 이때부터 이 곡은 유럽 전역을 통해 해외로 퍼져나간다. 


한편, 시벨리우스는 1900년에 피날레 부분을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을 했고 이곡에 악셀 카펠랑이 ‘핀란디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 후 시벨리우스는 작품을 정리해 ‘핀란디아’란 명칭으로 정식 개정판을 낸다. 그리고 드디어 1900년 파리에서 핀란디아가 초연된다.


* 1971년 핀란드 출신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시벨리우스 음악당 건물




3. 굴종의 역사를 넘어서


핀란드는 우랄 지역에서 기원한 아시아계 핀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핀족이 처음 러시아 지역에서 지금의 핀란드 동부지역으로 이주해 왔을 때 그들은 스웨덴 세력의 견제를 받아 밀려난다. 따라서 핀란드인들은 지금의 핀란드 지역과 발틱 해안 등지로 흩어져 정착해 살게 된다. 


10세기를 전후해 게르만족의 바이킹 세력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 당시 핀란드는 스웨덴 지배를 받는다. 바이킹 시대를 거치며 핀란드에도 기독교가 전래되고 핀란드는 완전히 스웨덴 왕국에 편입되어 하나의 국가처럼 자리하게 된다.


핀란드는 1155년부터 1809년까지 스웨덴 지배 아래 놓인다. 12세기 중엽 독일, 덴마크, 스웨덴의 북방 선교 경쟁이 활발할 때 스웨덴 국왕 에리크(Eric)와 웁살라 주교 헨리(St. Henry)의 선교 원정대가 핀란드 남․서부 지역에 스웨덴 포교 근거지를 마련하고 세력을 확장한다. 제3차 선교 원정대가 당도한 13세기 말 경 핀란드 지역 대부분이 스웨덴 지배하에 들어간다.


핀란드는 1809년 러시아 자치 공국으로 지위가 변경되기 전까지 스웨덴왕국의 일부로 존속한다. 이때 핀란드는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스웨덴에 편입됨과 동시에 기독교라는 신흥종교의 유입, 이 두 가지 사실이 핀란드를 본격적으로 중세 유럽의 문화권으로 편입시키는 계기가 된다.


핀란드 서남부에 위치한 투르쿠(Turku)는 핀란드의 옛 수도인데 스웨덴이 핀란드를 지배하기 위한 전초기지나 마찬가지였다. 투르크에는 스웨덴 국왕의 별궁이 건립되고 독일 상인들과 장인들도 투르쿠에 거주하며 한자동맹의 세력을 확대한다. 투르크는 당시 활발한 무역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그 후 1808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가 핀란드를 점령하고, 1812년 핀란드 지배를 용이하게 하려고 투르크에서 지금의 헬싱키로 수도를 이전한다. 그 후 1917년까지 108년간 핀란드는 제정 러시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는데, 1917년 12월 6일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틈타 독립을 한다.


드디어 ‘핀란디아’는 이제 제 이름을 찾고, 핀란드 국민들과 함께 감격적인 ‘핀란디아’ 공연을 할 수 있게 된다. 1899년 시벨리우스가 핀란디아를 작곡한 이후 1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핀란디아’가 핀란드인들에게 애국심의 표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핀란드의 모든 사람들을 일깨워 행동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독립의 의지를 확고히 다진 작품, 그 어떤 뛰어난 연설문보다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가진 교향시 핀란디아. 러시아의 압정에 시달리며 신음했던 핀란드 국민들에게 시벨리우스 음악은 큰 용기이자 밝은 내일의 희망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참고: Suomi 100 주년 기념 불꽃놀이 / Finlandia 100 Firework Celebration(헬싱키 2017. 12. 6)

https://youtu.be/F7_LTvwGLv0


* 시벨리우스가 1957년 세상을 떠나자 시벨리우스 협회가 결성된다. 이 단체는 시벨리우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을 맞이해 첫 사업으로 시벨리우스 기념비를 세우기로 하고 작품공모를 진행한다. 40대의 에일리 훌티넨(E. Hulttinen)이라는 여성 조각가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선정된다.

시벨리우스 기념비는 24톤의 강철관으로 된 은빛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금속파이프를 연결하여 만든 조형물인데 자작나무숲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조형물 아래에서 바람이 지날 때 그 소리를 듣다보면 문득 핀란디아의 격렬한 음향이 울리듯한 묘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신기하게 느껴진다. 날씨 좋은 어느 여름날 시원한 바람이 불때 이 조형물 아래에 누워 시벨리우스를 느껴볼 수 있다면 좋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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