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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Dec 25. 2017

시벨리우스 고향 하멘린나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핀란드  4


1.


헬싱키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시벨리우스가 태어난 하멘린나(Hamenlinna)가 있다. 이곳에는 시벨리우스 생가가 있다. 생가는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미 해가 떴음직한 시각 이건만 헬싱키의 1월은 여전히 한밤중처럼 어둡다. 예정된 시각에 기차는 헬싱키 중앙역을 벗어나 하멘린나로 향한다. 시벨리우스 생가로 가는 길은 꽁꽁 얼어있었고 간혹 눈발까지 날렸다.


시벨리우스 아버지는 핀란드 출신 군의관, 어머니는 스웨덴 출신이었는데 그가 2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시벨리우스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쳤다. 어려서부터 작곡을 시작한 시벨리우스는 1885년 헬싱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고향 하멘린나(Haemeenlinna)떠난다. 그런데 어머니는 시벨리우스가 음악가보다 법관이 되기를 바랐기에 음대가 아닌 법대에 입학시킨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는 법대에 입학하자마자 헬싱키 음악원에 입학해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우고, 법대는 결국 중퇴를 하고 만다.


1889년 그는 음악원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간다. 바그너를 만났지만 그의 음악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비엔나로 간다. 그곳에서 시벨리우스가 존경하는 요하네스 브람스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다.


1892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헬싱키 음악원 교수로 취임하고 아이노와 결혼을 한다. 같은 해 그는 핀란드 신화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쿨레르보를 모티브로 교향곡을 만들어 공연을 한다. 그 후 연달아 교향시 '엔 사가'(전설), '카렐리아 모음곡', '네 개의 전설'을 연이어 발표한다. 이 작품들은 핀란드 서사시 칼레발라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들인데 모두 성공을 한다. 그리고 1899년 드디어 교향시 핀란디아를 발표한다.


당시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 국민들은 시벨리우스가 핀란디아를 발표하자 그를 핀란드 영웅으로 떠받든다. 그 후 그는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데, 30대 중반에 이미 핀란드 영웅이 된 것이다.


* 기차역에서 걸어서 20여분 걸으면 생가가 나오는데 먼저 바나야베시라는 호수를 건너간다.

* 생가는 커다란 건물에 둘러 싸여 금방이라도 철거를 할 듯했다. 하지만 절대 철거하지 않을 거란다.



2.


어느새 기차가 하멘린나에 도착한다. 역에서 나와 시벨리우스 생가 방향으로 길을 나선다. 하멘린나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호수 바나야베시가 있다. 이 호수에 걸친 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간다. 시내 초입에 공원이 있고 그곳 한쪽에 헬싱키 성당을 닮은 교회가 나타난다.


교회 앞 공터를 가로질러 조금 가면 바로 시벨리우스 생가다. 그런데 이 집 부근은 모두 커다란 건물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이 집만 옛날 그대로 남아있다. 하멘린나 시가 이 집을 인수해 지금까지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한데 시벨리우스 생가는 개방 시각이 동절기와 하절기가 달랐다. 동절기에는 12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12시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인근에 있는 하멘린나 고성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시벨리우스가 어렸을 적 자주 찾아가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는 그 성은 시벨리우스 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까지 가는 중간중간에 벌판과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어쩌면 그리로 가는 길을 시벨리우스가 매일 걸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벌판에는 새와 나무, 그리고 바람소리까지 겨울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고성은 바나야베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1300년대를 전후해 지은 성은 당시 이곳을 지나는 상선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요새였다고 한다. 그런데 시벨리우스는 바로 여기서 바나야베시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핀란디아를 구상했다고 한다.


잠시 후 다시 시내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시벨리우스 공원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공원으로 들어서니 어디선가 핀란디아 피아노곡이 들린다. 어디일까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 있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도 그랬다. 바르샤바 사회과학원 앞 거리에 놓인 벤치 한쪽 켠에 단추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누르면 쇼팽이 나왔다. 또 다른 거리에는 쇼팽의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곁으로 가면 센서가 감지하고 쇼팽을 들려주었다.


이곳 시벨리우스 공원에도 센서가 달려있는지 벤치에 앉으니 음악이 나온다. 아마 일정한 거리에 접근하면 센서가 작동하는가 보다. 잠시 눈 덮인 의자를 쓸어내고 앉아 시벨리우스를 듣는다. 시벨리우스 생가를 방문하기 전 그의 음악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가 만든 음악과 그가 살던 시대, 그리고 그가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던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이었을지 잠시 생각해 본다. 10여분 간의 연주는 그렇게 끝이 났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거의 다 되었다. 이제는 시벨리우스 생가로 가면 될성 싶었다.


* 시벨리우스가 어릴 적 인근 바나야베시 호수가를 따라 산책하던 길, 새 한 마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 14세기에 지은 바나야베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성에서 시벨리우스가 핀란디아를 구상했다고 한다.

*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시벨리우스 공원, 시벨리우스의 키가 대충 190cm 정도 되는 듯하다.

의자 근처로 오니 의자 아래 스피커에서 핀란디아 피아노곡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앉아 시벨리우스를 듣는 기분 정말 좋다.



3.


시벨리우스 생가에서 누군가 피아노 연주를 하는지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 12시 정각에 문을 연 생가로 들어서니 관리인인듯한 사람이 지금 누군가 피아노 연주 중이라며 주의를 당부한다. 시벨리우스 생가에서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왔는데 이건 뭐 대박이다. 나이 듬직한 여성이 눈을 지그시 감고 연주하는 모습에서 문득 시벨리우스를 만난다. 분명 동방의 끝에서 온 나를 환영하기 위해 그가 복을 내려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는 급하지 않게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평온하게 시벨리우스를 닮은듯한 핀란디아 선율이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아마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기분 좋은 순간도 별로 없을 듯싶다. 마치 나만을 위한 연주회처럼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인사와 박수를 보내자 고맙게도 연주자는 시벨리우스의 다른 피아노 소품들 몇 곡 더 쉬지 않고 계속 연주한다. 30여분을 그렇게 피아노 연주에 빠져있다 간신히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시벨리우스가 말년을 보낸 곳 야르벤파로 향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감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를 상상하면서 하멘린나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시벨리우스 생가에 있는 시벨리우스가 사용하던 바이올린과 피아노들

* 시벨리우스가 태어난 방과 아기 요람, 시벨리우스 어릴 적 부모와 함께 잡지에 실린 기사들

* 시벨리우스 어릴 적 형제들과 찍은 사진, 노후의 시벨리우스 부부 사진, 그리고 악보 표지 사진

시벨리우스가 매일 바라보며 핀란디아를 구상하던 바나야베시 호수, 이곳에 오면 언제나 신비한 새와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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