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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Dec 31. 2017

라플란드 오로라 사냥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스웨덴  11


1. 오로라를 찾아서


오늘은 스웨덴 아비스코 국립공원을 출발해 키루나를 거쳐 옐리바레까지 간다. 그리고 다음날 계속해서 핀란드로 들어가 핀란드 국경 도시 하파란드를 거쳐 산타마을이라고 알려진 북극권 도시 로바니에미로 간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 북부지역 라플란드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겨울철 라플란드 여행은 도시들이 대부분 북극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날씨만 나쁘지 않다면 거의 매일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여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정말 날씨만 받쳐준다면 하는 바람이 라플란드를 여행하는 내내 매일 눈뜨면 바라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래쪽 붉은선은 북극권을 보여준다. 붉은점 도시들을 찾아간다.

드디어 아비스코 국립공원을 출발해 키루나를 거쳐 옐리바레로 향했다. 중간에 특별한 볼거리나 취재할 일들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키루나에서 옐리바레로 향하는 중간 지점부터 눈이 내려 옐리바레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눈이 많이 왔다. 도시는 모두 눈 속에 잠겨있는 듯했다.


옐리바레(Gällivare)는 생각보다 도시가 작았다. 인구 만여 명 정도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옐리바레도 북극권 시작 지점에서 100km 북쪽에 있으니 당연 북극권 도시이다. 역시나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은 곳이다. 옐리바레도 키루나처럼 철광석으로 먹고사는 도시이다. 옐리바레에도 스웨덴 국영철광석회사(LKAB)가 운영하는 철광석 광산이 있다. 어쩌면 키루나 보다 이곳이 더 철광석 생산 지역의 중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도시는 흰 눈으로 온통 눈꽃세상이다. 도시 한쪽에 제법 높은 산이 있고 시내에는 강인지 호수인지 모를 만큼 큰 호수도 있는데 겨울이라 꽁꽁 얼어 있다. 그 호수를 건너 스키장 캠프가 있는 곳으로 간다. 어쩌면 스키장이 있는 산꼭대기에서 오로라를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시내에서 보았던 산꼭대기에는 스키리조트 둔드레트(Dundret)가 있다. 리프트 6개와 경사로 10개, 그리고 호텔이 있는 잘 꾸며놓은 리조트 휴양지이다. 이곳에서 스키는 10월부터 5월까지 탈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라플란드 특유의 추위가 오랜 기간 스키휴양지로 제격인 모양이다.


스키장에서 내려와 시내 쪽으로 가다가 지도에서 보았던 호숫가로 간다. 어쩌면 이곳이 더 오로라를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며 간다. 호수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호수 한가운데까지 가보니 스노모빌이 지나간 흔적들이 어지럽게 나있다. 호수가 얼어있는 동안에는 대부분 스노모빌을 타고 오로라 사냥을 하러 가거나 겨울철 스포츠로 즐기는 듯했다.(* 라플란드 지역에서 오로라 관광은 스노모빌을 이용해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튼 이곳이 오로라 관찰하기가 스키장보다 나은 듯 싶었다. 일단 오늘 밤은 이곳에서 오로라 사냥을 하기로 다짐을 하고 숙소로 돌아간다.


드디어 늦은 밤 오로라 사냥을 위해 호숫가로 왔는데 주변이 너무 밝아 황당하기만 하다. 추측컨대 호수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주변에 적지 않은 강력한 탐색등(* 단순한 가로등이 아니라)을 설치해 놓은 듯싶었다. 하는 수 없이 호수를 벗어나 인근 숲 속으로 급히 장소를 옮기고 오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오늘의 오로라 지수를 알아보니 1.5 정도밖에 안되었다.(* 오로라는 1부터 9까지 강도를 표시한다. 최소한 kp 3 정도는 되어야 눈으로 볼 때나 사진 찍기가 수월하다.) 이날 밤 오로라는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 눈이 많이 오는 옐리바레 둔드레흐트 리조트는 인기 휴양지이다. 스키캠프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 옐리바레 시내 주택가, 예쁘게 생긴 '신교회',

* 스키장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 꽁꽁 언 호수와 숙소가 있는 주택가

* 어렴풋이 미소 띤 오로라 양이 살짝 뒷모습만 보여주고 사라져 버렸다. 이날 오양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2. 라플란드의 스웨덴인


핀란드 라플란드 지역을 몇 군데 돌아다니다 다시 키루나가 있는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핀란드와 스웨덴 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느낌이 다르다. 스웨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스웨덴 사람들이었고 핀란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사미인들이었다. 사미인들은 경계심이 강한 느낌을 준다. 오랜 역사적 경험때문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물과 기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니 느낌이 다를 수밖에...


아무튼 핀란드 라플란드 지역을 돌아서 또다시 키루나로 간다.(* 이번 여행의 출도착을 스톡홀름과 키루나로 했기에  키루나 공항에 렌터카 반납을 해야 한다.) 핀란드와 스웨덴 국경지대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국경 경비초소는 굳게 문이 닫혀 있다. 국경을 넘자마자 작은 마을 카레수안도(Karesuando)라는 곳을 지나는데 예쁜 교회가 보인다. 대개 교회가 있는 곳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카레수안도 교회

이 마을에는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백악관이라고 했다. 재미난 이름이라 생각하고 들어가 보았다. 생활용품과 지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진들도 보였다. 작은 기록들이지만 나름 의미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대부분 이 지역에 거주하던 사미인들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문득 이 지역에 살던 사미인들은 어디로 가고 스웨덴 사람들만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The White House" Museum

전시실에는 재미난 글이 적힌 종이가 한 장 놓여있다. ‘FIKA’라는 제목의 글이다. 가만 보니 덴마크는 휘게(hygge), 스웨덴은 피카(fika), 그리고 핀란드는 휘바(hyvä)라는 말로 자국 홍보를 하고 있다. 그래 그런 게 필요하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네는 이에 상응하는 게 무얼까 생각하다 ‘새참’이란 말이 떠올랐다. '새참', 참 멋진 말이다.



* 박물관에 있는 설명서와 스웨덴 관광청이 사용하는 사진들

* 흰새는 '버드나무 그라우스'(willow grouse)라는 라플란드를 상징하는 새이다.

* 전시품목 대부분이 사미족 관련 내용물들이다. 그런데 사미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음식물 저장소, 동물들 접근이 어렵고 추운 지방이라 외부에 높이 저장고를 설치했다고 한다.



우리네 ‘새참’이라는 말이 저네들 말보다 더 멋진 말 아닌가? 꼭 지네들만 그런 단어를 가지고 있는 양 홍보를 하는 게 어딘지 어색하다는 생각이다. 다른 나라들 대부분 비슷한 말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들만 가지고 있는 듯 자랑하는 걸 보면서 속으로 “그래 그런 말은 이제 박물관에나 잘 보관하라고!”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문득 울 나라도 ‘새참’이란 말로 유난을 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키루나 인근에 도착해 오늘 밤 어디에서 오로라 사냥을 하면 좋을지 장소를 물색하려고 키루나 인근 주변을 탐색한다. 점차 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간다. 지도에는 언덕 너머에 호수가 있는 것으로 보이길래 조금만 더 가보자 하면서 길을 따라간다. 그런데 그만 눈이 잔뜩 덮인 길을 가고 말았다. 거긴 길이 아니었다. 사고가 나고 말았다. 길 한쪽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렌터카 사무실에 전화를 하니 제일 먼저 "차량은 안전하냐"고 묻는다. 이런 젠장... 그래 아주 양호하다. 그러니 네가 견인차량 연락해 주면 안 되겠니?라고 했더니, 사무실 직원은 날 보고 직접 아비스(Avis) 긴급출동 서비스로 연락을 하란다. 알려준 곳으로 전화를 하니 알았다고 하면서 잠시만 기다리면 곧 가겠다고 한다.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다.


* 6시간이나 지나 견인차량이 오는 건 뭐냐? 페로제도에서 시동 꺼짐 사고가 있었는데 연락하자 25분 만에 달려와 고쳐주고 정중히 사과와 함께 좋은 여행하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던 기억이 새롭다.   



견인차량이 온건 거의 6시간 정도가 지난 한밤중이었다. 역시나 라플란드의 스웨덴 장사꾼 놈들은 인간이 아니라더니 그런 놈에게 내가 딱 걸린듯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6시간 정도를 추위에 벌벌 떨며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것도 여름이 아니라 한 겨울에 이러려고 라플란드를 왔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가장 심한 욕들을 한국말로 마구 쏟아냈다. 욕은 이럴 때 하는 거야라는 듯이... 그런데도 왜 늦은 건지, 미안하다는 말은 끝내  한마디도 안 한다. 정말 개새 X들이다.)


이날 밤 오로라가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수모를 당했으니 말이다. 자정이 다되어 숙소에 도착해 한참을 망연자실하며 온몸에 스며든 추위와 싸워야 했다. 이날 밤 보드카 한 병을 거의 다 마시며 스웨덴이 자랑하는 ‘피카’라는 가면 속에 숨은 더럽고 인종차별적인 저질 심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적지 않은 갈등이 생겼다.



* 2주일이나 라플란드에서 머물렀지만 매일 흐린 날의 연속이라 오로라를 만나지 못했다. 그냥 집으로 가자고 짐을 싸는데 그날 밤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계속 날이 맑았다. 이 사진들은 떠나려던 날부터 며칠간 키루나 인근 고속도로 길가 주차장에서 담은 사진들이다.

* 키루나에서 아비스코 국립공원 가는 중간에 고속도로 졸음쉼터 같은 주차장에서 촬영을 했다. 붉은 선이 보이는 것은 트럭이 지나가면서 차 옆에 장식한 전구들이 궤적을 그린 것이다. 밝은 부분 역시 차량들 불빛이다.

* 이 날 오로라 지수는 kp 4, 엄청난 빛을 뿜어대며 춤추는 탓에 멍하니 구경만 하느라...

* 수억 광년을 달려온 우주 공간의 빛들이 오로라처럼 멋진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멀리서 오느라 지쳐서 그런 게 아니라 누군가 그 빛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쓸모없을 것 같은 길가의 돌멩이 조차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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