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수 Dec 29. 2017

“오로라가 보고 싶단 말이야”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스웨덴  10


1. 롯지에서 비상식량이라니!


키루나에서 지낸 며칠은 계속 날씨가 흐렸다. 노르웨이 해안가가 난류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흐린 날이 많기에 내륙 쪽 키루나는 맑은 날이 많을 거라 기대를 했는데 영 날씨가 받쳐주지를 않는다. 라플란드로 들어온 지 벌서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오로라는커녕 별 하나 보지를 못했다.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키루나에서 한 시간 정도 가면 아비스코 국립공원이다. 오로라 관측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있으니 그리로 간다. 짐을 챙기고 나선다. 키루나에서 아비스코로 가는 길은 편했다. E10 도로만 따라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된다. 가는 중간에 길가 졸음쉼터 같은 공간이 있으니 사진도 찍을 겸 쉬엄쉬엄 간다.


아비스코 국립공원 내 숙소에 도착했다. ‘마운틴 롯지’에 숙소를 정하고 안내양에게 오늘 날씨와 촬영 포인트를 물어보니 이리저리 가면 된다고 하면서 행운이 따르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한다. 으레 하는 인사말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그 인사말이 유난히 귀에 박힌다. 정말 행운이 따라주기를 고대해 본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해 먹으려는데 이런 롯지에 가스레인지만 덩그마니 빛나고 있다. 냄비나 프라이팬은커녕 숟가락 조차 하나 없다. 수납공간은 텅 비어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안내양한테 가서 물어보니 자기는 그냥 데스크만 담당하기에 모르는 일이라고 상관없음을 주장한다.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스웨덴, 특히 라플란드 사람들 불친절은 알아줄 만하다. 속으로 욕을 실컷 하고 배낭에서 비상식량을 꺼내 먹는다. 비상시 먹을 식량은 여행 중 언제나 잘 챙겨두었으니 다행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어제 장을 보아둔 신선한 새우와 호밀빵과 버터, 꿀, 그리고 햄. 훌륭한 식사가 아닌가.


간혹 이렇게 텅 빈 싱크대 수납장만 갖추고 조리시설을 완비한 것처럼 거짓 광고하는 숙소들도 있다는 걸 기억하시기를... 더구나 스웨덴이 이런 짓거리를 잘 한다는 걸 기억하시기를... 날씨까지 끝내 말썽이다. 간밤에도 눈이 내리고 별조차 볼 수 없는 날씨였다. 계속 스웨덴이 나를 실망시킨다.


다음날 노르웨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아비스코 국립공원에서 나르빅까지는 60Km 정도밖에 안되니 충분히 하룻만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다. 나르빅에 가면 꼭 보고 싶은 게 있었다. 2차 대전 때 나르빅이 어떻게 독일군에게 점령을 당하게 되었는지 현지에 가서 직접 보고 싶었다.


* 해발 1169m 누올야(Nuolja) 산, 아비스코 국립공원의 상징처럼 우뚝 서있다. 그 아래 터널을 뚫어 나르빅까지 철도가 이어진다.  국립공원 계곡의 바위들, 철분 함량이 많아 붉은 산화철이 많이 보인다.

* 아비스코 국립공원에 있는 토르네트래스크(Torneträsk) 호수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호수이고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호수이다. 깊이가 168m나 된다. 이 호수는 토르네앨밴 강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호수이다. 이 호수는 11월부터 6월까지 얼어있다.

* 스웨덴 최북단 라플란드에 있는 국립공원 아비스코에는 남쪽과 서쪽으로 산맥이 뻗어 있고 북쪽에는 토르네트래스크 호수가 있다. 이곳에서 호수 위에 비친 오로라를 사진으로 담으면 정말 멋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2. 나르빅 전투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독일은 무기를 만들기 위한 철광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독일은 철광석의 3분의 1 이상을 스웨덴 광산으로부터 수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웨덴 항구는 겨울 동안 얼어붙기 일수인지라 잘못하면 철광석 확보가 어렵다. 히틀러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노르웨이 항구 점령을 명령한다.


1940년 2월 히틀러는 노르웨이 침공계획을 세우고, 1940년 4월 9일 나르빅 점령 작전을 실시한다. 노르웨이 항구들은 다른 항구들과 달리 피요르드라는 독특한 지형 내에 위치한다. 바다 쪽에서부터 안쪽에 있는 항구에 도착하려면 좁은 협곡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나르빅 항 역시 피요르드 안에 위치해 있다. 나르빅은 북위 70도 부근에 있어 4월에도 평균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며 강한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치기도 한다.


독일군은 순양함 2척이 엄호하는 동안 나르빅 항구로 진격해 들어간다. 노르웨이 해군의 저항이 있었지만 독일군은 쉽게 물리치고 별 어려움 없이 구축함 10척에 나누어 타고 2천 명 병력이 나르빅 항구에 상륙한다.


독일군이 노르웨이 나르빅을 점령한 사실을 알게 된 영국은 필사적으로 저지에 나선다. 노르웨이 나르빅이 독일 수중에 들어갈 경우 철광석을 독일이 쉽게 운송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해의 제해권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영국 해군은 동원할 수 있는 전함들을 노르웨이 해안으로 모두 집결시킨다.


나르빅 항에는 독일군 구축함 10척이 있었다. 영국 해군은 나르빅 항구 안에 있는 독일 구축함을 격침하기로 결정한다. 공격 함대의 사령관은 ‘워부턴 리(Warbuton Lee)’ 대령이 맡았다. 영국은 5척의 구축함 밖에 없었다. 독일 전력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4월 20일 새벽 강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때 나르빅 항에 있는 독일군 전력은 영국의 전력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이었고 나르빅 항이 피요르드 깊숙이 위치한 항구였기에, 독일군은 설마 하며 경계를 소홀히 했다. 하지만 강한 눈보라가 영국 순양함의 접근을 철저히 감춰준다.


나르빅 항이 있는 피요르드 안으로 돌입한 리 대령의 구축함은 독일 기함 ‘빌헬름 헬드캄프(Wilhelim Heldkamp)’를 어뢰로 공격해 침몰시킨다. 다른 구축함 ‘안톤 슈미트(Anton Schumit)’도 어뢰 2발로 격침시킨다. 3척의 구축함은 포격전으로 압도했다. 심지어 이 전투에서 독일군 사령관 ‘본테’ 대장이 전사를 한다.


영국 해군은 눈보라를 이용한 완벽한 기습공격으로 독일 구축함 5척과 상선 5척을 모두 파괴하는 큰 전과를 올린다. 나르빅 신화는 피요르드라는 특유의 지형 덕분에 그렇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출처: The Science Times, 2017. 12. 28)


* 아비스코 국립공원 마운틴 롯지를 출발할 때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점차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 국경지대에는 적지 않은 주택들이 있는데 모두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모두가 여름철 별장이다.

* 대관령을 넘는 내내 멋진 경치에 탄복을 한다.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3. ‘화이트 아웃’


아비스코 국립공원을 출발해 나르빅으로 가는 내내 날씨가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한다. 산악지형 특유의 날씨 때문이리라. 노르웨이로 넘어가는 대관령 정상 부근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인근 주택가는 여름철에만 사용하는지 자동차까지 눈 속에 파묻혀 있다. 경치는 더할 나위 없이 멋있다. 이런 곳에 머물고 싶어도 숙소를 정하기 쉽지 않을 테니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간다.


나르빅에 도착해 잠시 차 한잔을 마시고 있으려는데 문득 하늘이 어두워온다. 은근히 걱정이 들어 얼른 자리를 털고 찻집을 나선다. 눈이 오면 아무래도 아비스코로 돌아가는 길이 힘들어질 테니 그냥 철수하기로 한다. 이곳 나르빅 특유의 지형 때문인지 잔쯕 구름이 몰려오면서 점점 더 어두워진다. 전쟁 박물관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나르빅을 벗어나 아비스코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눈발이 엄청났다. 올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독일군이 이런 날씨를 못 알아 보고 감히 나르빅으로 침공해 왔으니 영국군에게 패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대관령을 다시 넘는다. 그런데 이때 눈앞이 아무것도 보이 지를 않는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화이트 아웃’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뒤에서는 다른 차들이 몇 대 나를 따라오고 있다. 길을 비켜 주려고 해도 양옆으로 눈 언덕이고 차선은 일 차선이니 그냥 천천히 가는 수밖에 없다. 얼른 사물함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구분이 안된다. 순간 오른쪽으로 핸들이 틀어지면서 길가 눈 언덕을 받아버렸다.


뒤차들은 그냥 모른척하고 내차를 피해 추월해 가버린다. 아무리 차를 눈 속에서 빼내려 해도 바퀴가 눈 속에서 헛바퀴만 돈다. 지나가는 차가 몇 대 있었지만 모두들 그냥 지나가 버린다. 한참을 그렇게 낑낑대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서더니 고릴라같이 생긴 친구들 몇이 내게 다가온다. 잠깐 기다리라면서 트렁크에서 밧줄을 꺼내 내차에 묶고 뒷걸음질을 친다. 다행히 차는 금방 눈에서 빠져나온다.


마침 자기들끼리 독일말을 하길래 독일말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웃으며 다음부터는 밧줄을 꼭 가지고 다니고 눈 속에 빠지면 다른 차가 구해줄 때까지 같이 기다려줄 여자 친구도 꼭 같이 다니라고 엄중히 경고(?)를 한다. 스웨덴에서 스웨덴 사람이 아니라 독일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다니 공연히 허탈한 생각이 든다. 다행히 대관령을 넘어 내려오니 날이 다시 맑아진다. 참 고약한 날씨 덕분에 별 경험을 다해 본다.


이 날 밤에도 하늘은 열리지를 않았다.


* 스웨덴 노르웨이 국경을 넘어 드디어 나르빅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나르빅 입구 다리를 건넌다.

* 나르빅은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도시로 피요르드 형태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나르빅의 상징 나르빅 교회.

* 새로운 다리를 로포텐 반도로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무서운(?) 떼구름이 점차 하늘을 뒤덮고 있다.

* 국경지대를 또다시 통과하면서 '화이트 아웃'을 경험하고 말았다. 아비스코 국립공원지역에 당도하니 날씨는 또다시 쾌청, 하지만 이날 밤 오로라는 잔뜩 낀 구름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 아래는 다른 날 만난 오로라


매거진의 이전글 얼음호텔에서 하룻밤 어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