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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Jan 11. 2018

오로라를 만나거들랑...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핀란드  10


1.


라플란드에는 사미 대학이 있는 카우토키노(Kautokeino)가 중심 도시처럼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위쪽으로 노르웨이 사미의회가 있는 카라스요크(Karasjok)가, 오른쪽으로는 핀란드 사미의회가 있는 이나리(Inari)가, 그리고 그 아래로 스웨덴 사미의회가 있는 키루나가 있다. 이들 도시들이 라플란드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를 잡고 사미인들이 배치되어 있는 형국이다. 물론 주민들 숫자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노르웨이 남부지방부터 러시아 콜트 반도까지 사미인들이 퍼져 있다. 


아무튼 주요한 거점 도시 네 군데, 즉 키루나와 카우토키노, 그리고 이나리와 카라스요크는 라플란드에 관심이 있다면 방문해 보면 좋을 것이다. 더욱이 이곳들을 지나면서 보게 되는 풍광은 어쩌면 그동안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경치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그런 풍경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날씨가 조금만 좋다면(구름이 끼여도 상관없이) 매일 밤 오로라와 함께 지내게 될 테니 좋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카우토키노와 키루나 중간지점에 있는 카레수안도를 향해 간다. 이곳은 스웨덴 최북단 핀란드 국경지대에 있는 도시인데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사미인들이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곳에 가기 전 사미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며칠 묵기로 한다.


늦은 저녁 도착한 숙소는 간밤에 내린 눈으로 주변이 온통 하얗게 채색되어 있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미인들 거주지가 있는지 환한 불빛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불빛보다 더 밝은 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에는 별들 사이로 오로라가 춤추며 나타나는 게 아닌가! 


* 카우토케이노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중에, 'Finnmark'는 카우토케이노가 있는 노르웨이 쪽 라플란드 지역

* 숙소와 인근 숲에서

* 이곳은 사미인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다. 인근에 50여 가구가 사는데 지금 동네 순찰 중이란다...^^ 




2.


오로라, 참 멋진 말이다. 그 이름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명의 신(Aurora)에서 따서 지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새벽의 여신은 에오스(Eos)이다. 그런데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사랑을 받던 전쟁의 신 아레스를 에오스가 사모하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해 에오스가 사랑하는 인간 세상의 젊은이는 모두 불행한 결말을 맞는 저주를 내린다. 어쩌면 이런 연유로 ‘에오스’라고 하지 않고 ‘오로라’를 선택했던 게 아닐까?


아무튼, 오로라는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중국에서는 극광(極光)이라고 부르며, 옛 문헌에는 적기(赤氣)라고 기록을 했다고 한다. 영어로는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 즉 북극광이라고 하며, 라틴어로는 '여명을 닮은 북녘의 빛'이라는 의미로 ‘오로라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라고 부른다. 그리고 북반구와는 다르게 남반구에 나타나는 오로라는 '오로라 오스트랄리스‘(Aurora Austrails)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름이 어떻든 오로라를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 짝이 없다.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듯하다가도 문득 하늘에서 불의 전차가 달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또다시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서서히 움직이다가도 순간적으로 둘둘 말리듯 사라지기도 하는 게 어떤 때는 사람 혼을 빼앗아가는 귀신같다는 느낌마저 준다. 


모든 오로라가 정해진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상태에서 오로라가 춤을 춘다. 그러니 오로라는 그저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로라 사냥’을 해야 볼 수 있다는 게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스칸디나비아 북극권에 살고 있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 사람들은 대부분 사미(Saami)인들인데 이들은 전통적으로 사람들 영혼이 그의 몸을 떠나는 순간 빛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밤중 오로라가 빛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엄숙하게 행동해야 했으며, 아이들도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늘의 불’을 바라보아야 했다. 하늘의 불을 경멸하는 사람은 불행을 초래하게 되어 병이 나거나 심지어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뿐이 아니다. 사미인들은 오로라가 스칸디나비아 북쪽 라플란드 벌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여우들이 만들어내는 불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미인들은 오로라를 “여우 불”(fox fire)이라고도 부른다. 마법의 여우꼬리가 눈 쌓인 벌판을 달릴 때 눈과 부딪치면서 마치 ‘불꽃’을 만들어 내는 듯이 보였고, 그 불꽃이 어두운 밤하늘로 올라가 또다시 커다란 불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오로라라고 여겼다는 말이다. 오로라를 만들어내는 여우꼬리와 라플란드 벌판, 상상만 해도 즐겁다.


1) 숙소 인근에 있는 천막교회, 오로라가 나타나면 샤먼들은 북을 치며 주문을 외운다. 하늘의 신과 교감을 나누기 위해... 2) 검은 점으로 표시한 지역들이 사미족 거점도시, 지역마다 샤먼이 사용하는 북 모양새가 다르다.

* 인근 숲 속을 산책하다 만나는 풍경들, 라부(유목민 천막)가 설치된 곳이면  사미인 거주지이다. 

* 밤이 깊어가면서 마을은 점점 오로라를 닮아간다. 숙소 건물들



그런데 핀란드식 오로라 이름이 레본툴레트(revontulet)이다. 이 말은 사미족 전설에서 오로라를 뜻하는 “여우 불꽃”이란 말과 같은 의미이다. 결국 핀란드인들이 생각하는 오로라 역시 사미인들이 말하는 오로라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오로라를 자주 보는 라플란드 사미인들은 아마도 하늘의 불이 마법 같은 힘을 가졌다고 믿기도 한 모양이다. 그래서 라플란드 샤먼은 그가 사용하는 북에다가 종종 하늘의 불을 묘사한 루네문자를 그려 넣고 그 기운을 이용하려 하기도 한다. 


‘하늘의 불’은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한 존재로 남아있다. 더욱이 라플란드 사람들은 만일 북극광이 춤추는 날 그 아래에서 휘파람을 불면 오로라를 더 가까이 불러올 수 있다고도 믿었다. 그뿐 아니라 북극광이 춤을 추게 되면 자신들의 근심과 시름까지도 날려 보낼 수 있다고도 믿었다. 


또한 이누이트 전설에 따르면, 오로라는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올라가는 증거라고 한다. 그래서 오로라는 방황하는 여행자(죽은 자의 영혼)가 최종 여행지(천당이나 지옥이거나)까지 가는 동안 그의 영혼이 내뿜는 불빛이라고 믿었다. 특히 하늘에 불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이누이트들은 그 오로라 불빛이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이한 어린 아기들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늘로 올라간 어린 영혼들의 방황하는 춤사위가 불빛을 일으켜 하늘에 불꽃을 만든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로라의 신비한 빛이 주는 의미가 그야말로 신비주의적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흔히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여신 발키리가 죽은 전사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때 그녀들이 들고 있는 방패가 빛을 반사하면서 보이는 빛”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중세 유럽에서는, 오로라를 "신의 계시"라고 하기도 했고, "하늘에서 타오르는 촛불"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심지어 스코틀랜드에서는 바이킹 정착민들이 몰려들면서 ‘하늘의 불’을 "명랑한 댄서들"이라고도 불렀다. 모두가 신비하고 신화적인 느낌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늘의 불빛’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하겠지만 그건 어쩌면 그들이 사는 방식에 따라 그리 달리 표현할 뿐 기본적으로는 모두 두려움이나 또는 하늘의 축복으로 생각을 한다. 대부분 인간들 스스로 자신의 처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신호로 ‘하늘의 불빛’을 해석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다.


* 밤이면 마실 나오는 오로라들



오로라와 관련된 이야기 중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캐나다 퀘벡에 거주하는 원주민들 알곤퀸 인디언(Algonquin Indians)들에게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창조주인 나나보조(Nanahbozho)가 지구를 만든 후 먼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창조주는 그곳에서 큰 불을 지펴 그가 떠나온 남쪽을 향해 반사되도록 함으로써 그의 변함없는 인디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처럼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오로라를 과학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면 조금은 신비감이 떨어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로라의 신화적인 특징은 과학이라는 이름하에서는 거의 불필요한 이야기, 아니 황당하기까지 한 꾸며낸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오로라를 잠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해 보면, 오로라의 빛은 태양풍의 입자가 대기권에 부딪히며 생겨난 마찰로 인해 주변의 산소 또는 질소 분자와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빛이다. 대기 중 나트륨 가스는 노란색, 네온 가스는 오렌지 색 등 각 기체 분자마다 발하는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대기 중 어떤 기체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색깔의 오로라를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오로라가 붉은색을 띠는 것은 대기권 상층부에 산소가 적을 때 나타난다. 그리고 반대로 산소가 많을 때 오로라 불빛은 초록색으로 나타난다. 이른 아침 여명이 동터올 때 흔히 보는 파랑 또는 보랏빛으로 감도는 것은 태양풍의 입자들이 질소 분자들과 이온화하여 보랏빛과 푸른빛을 뿜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오로라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떻게 오로라 불빛이 진행되는지에 관한 과학적 사실규명은 오로라를 보는 순간 잊어버리는 게 좋을 듯싶다. 여행하며 오로라를 만나게 되면 그냥 사미인들처럼 라플란드 벌판을 달리는 여우꼬리를 상상해 보던지 아님, 알곤퀸 인디언들처럼 사랑이 듬뿍 담긴 메시지로 여기고 그 속으로 빠져들면 좋지 않을까? 그러니 제발 오로라를 만나거들랑 딴생각 말고 사랑에 푹 빠져보란 말이다.



○ 참고 자료


- Nordlys. Auroral Mythology. 

- Jokinen, Anniina. "Aurora Borealis, The Northern Lights, in Mythology and Folklore." Luminarium.  4 Feb 2007.


*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하고...

* 다음날 잔뜩 구름이 끼였는데 하늘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버렸다. 흐리지만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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