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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Jan 10. 2018

카우토키노의 반란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노르웨이  14


1. 1852년 카우토키노의 반란


1852년 11월 8일 ‘카우토키노의 반란’(Kautokeino-opprøret)이라 부르는 주민 봉기가 발생한다. 이날 봉기는 아슬락 해타(Aslak Hætta)가 앞장을 섰는데 주민들은 제일 먼저 상인 칼 요한 루스(Carl Johan Ruth)와 보안관 라스 요한 부흐(Lars Johan Bucht)를 살해한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역시 시위 진압과정에서 죽거나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시위대와 집압군 사이에 싸움은 격렬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주모자 중 한 사람인 몬스 솜비(Mons Somby)의 형 올레 아스락슨 솜비(Aslaksen Somby)도 알타(Alta)로 도주 후 체포되는데 이미 총상을 입은 터라 얼마 안 되어 사망하고 만다. 시위가 진압되자 도주자 몇을 제외하고 가담한 사람 모두 체포된다.


1852년 11월 15일부터 이듬해 5월 25일까지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1853년 8월 6일 법원 판결이 내려진다. 이 사건은 그 후 대법원까지 올라가 1854년 8월 7일 아스락 해타(Aslak Hætta)와 몬스 솜비(Mons Somby)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이 난다. 사건 주모자인 아스락과 몬스는 1854년 10월 14일 사형을 당한다.(* 사형 후 이들의 두개골은 오슬로 대학 우생학 연구소로 보내 연구용으로 사용한다.(인권침해까지...)


50명의 사미인들이 노르웨이 정부를 상대로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이들은 먼저, 알코올에 찌든 상인들과 부패한 목회자와 관료들을 죽인다. 이후 사건 주모자로 지목된 2명을 포함해 5명이 사형을 당하고 시위에 참가한 28명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한다.


1) Kautokeino(초록색)와 Karasjok(붉은색)가 표시된 1842년도 지도, 2) 당시 사슴 사육 사진, 3) 라플란드 최북단 Finmark 지도(1868)에도 두 도시가 표시되어 있다.



사미인들은 그들의 생활 방식이 교회와 과도한 권위적 법률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스웨덴 교구 담임목사까지 나서 사미인들을 지나치게 윤리로 포장한 음주 금지 생활 등을 설법한다.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정부는 사미인들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한다. 1851년도에는 사미인들이 노르웨이 언어만을 사용해야 하는 정책안을 강제로 입법한다.


그리고 1년 후에는 러시아가 관리하는 핀란드 사이의 국경을 폐쇄한다.(* 1900년대 초반까지 노르웨이는 스웨덴이, 핀란드는 러시아가 지배를 했다.) 이로써 1852년 9월 15일부터 사미인들은 사슴 사육을 위한 이동이 전면 금지된 것이다. 사미인들의 사슴 사육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사미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비인간적 삶을 살아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라플란드의 사미인 문제는 단순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진다면 당연히 저항을 하게 될 것이다. 카우트키노 봉기의 경우뿐 아니라 최근에 전개되는 국내외 대부분의 사회적 갈등 문제들 역시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다.


오래전 먼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될 수도 있을법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결코 소홀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스칸디나비아를 튼튼하게 형성하는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 참고 자료: 노르웨이 트롬쇠(Tromsø) 국가기록물보관소(Arkivverket)


* 2008년도에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국내에는 개봉되지 않았다.

* 이 영화와 관련된 기사와 책자들

*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마리 보이네(Mari Boine). 그녀는 사미어로 노래 부르며 “노르웨이 정부가 사미족에게 사과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미족 영웅이다. 1994년 그녀는 당시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을 제의 받자 “소수민족에 대한 동정심으로 또 다른 장식품이 되고 싶지 않다“며 제의를 거절한다.


“모든 것들이 자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았다.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현대사회의 진보와 보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연과 인간과의 깊은 관계를 알리고 싶다” 그녀가 생각하는 라플란드를 닮은 삶의 지혜가 사미인들의 드넓은 삶의 터전처럼 큰 울림으로 메아리치고 있다.


* 영화 [카이토키노의 반란 1852] OST Mari Boine "Elle“: https://youtu.be/nF8RvYcAwU0




* 카우토키노에는 라플란드에 거주하는 사미인들을 위한 사미응용과학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에 관한 학사 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2. 사미응용과학대학(Sami Allaskuvla: Sami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사미대학은 1989년에 설립되었다. 사미족의 경쟁력을 높이고 사미족 사회의 필요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사미대학의 학생과 직원들은 사미인들이 거주하는 모든 지역 출신들로 구성한다. 사미대학은 현재 학생 200여 명과 1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이 대학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대학이다. 사미대학에서는 북사미 언어를 사용하는데 모든 강의와 연구, 그리고 경영 전반에 걸쳐 북사미 언어를 표준어로 사용한다. 사미대학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미대학은 사미족의 문화 전도사로서 학생들을 양성하고 국제적으로 원주민에 대한 분야를 가르치는 유일한 대학이다. 사미대학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의 관련 분야에서 상호 학술 교류와 공동 연구 등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준 높은 교육시스템을 바탕으로 더 좋은 교육내용을 가르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미대학은 3개의 분야로 나누어 학사운영을 한다.

-언어분야

-사회과학 분야, 전통적인 예술분야와 생계유지 수단에 관한 분야

-석사와 학사 배출을 위한 분야. 사미족 언어와 문학, 사미족 전통 예술과 응용예술 분야


-사미대학의 학사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운영한다.

1. 사미족 원주민 문화와 언론학 학사와 석사과정

2. 사미 문화 교육을 위한 교사 양성 프로그램과 훈련 프로그램

3. 응용예술(duodji) 학사과정과 석사과정

4. 사슴 농축산 학사

5. 사미어 학사, 석사, 박사과정

6. 북부사미어 기초과정


-사미대학은 응용과학분야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사 양성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학사와 석사과정 프로그램들 역시 언론분야와 사슴 축산업에 관한 프로그램을 준비함으로써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다.


-사미대학은 학생들이 응용과학 분야를 학습함으로써 장래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뿐 아니라 미래에 가장 필요한 일꾼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다. 한편 강의 진행은 세계와의 교류를 위해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로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사미대학의 코스는 전체 40여 개의 강좌가 준비되어 있으며 이들 중 해마다 20-24개의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 사미대학 전경과 사미대학 안내책자들

* 대학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 사무처 공간이 있는데 이곳 직원 도움을 받았다.

* 지하층 공간은 전시공간과 대형강의실, 식당 등이 구비되어 있다.

* 2층에 도서관과 연구실들이 배치되어 있다.



응용사회과학센터 ‘디흐토시다’(Diehtosiida)


-사미대학의 응용사회과학센터 ‘디흐토시다’(Diehtosiida)를 대학에 설치하고 있다.

-사회과학센터에서는 전통적인 사미족의 사슴 축산업에 대한 연구와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정보와 교육 등을 하고 있다.

-디흐토시다는 사미인들에게 국제적으로 사미인 관련 정보와 원주민으로서의 사미인 권리에 대한 지식센터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사미인 의회가 제시한 표준어로서 사미족 언어에 대한 교육과 연구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사미족 간의 교류와 상호 소통 등을 위한 방법과 실제 교류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사미 대학의 응용과학연구센터는 노르웨이 구오브다게아드누(Guovdageaidnu) 주 케이토키노(Keitokaino) 시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구오브다게아드누(Guovdageaidnu)라는 말 은 “길 가운데에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지역 이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으며, 북유럽 사미인들이 라플란드에서 매번 만나는 중요한 거점 지역으로 활용해 온 곳이기도 하다.


-사미족의 중심지역인 이 곳은 이름처럼 사미인들에게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문화와 각종 행사가 열린다. 사미족의 언어와 전통예술, 그리고 전통적인 산업 형태, 예를 들면 사슴 축산업과 같이 자연을 활용한 여러 농축산업 관련 학문들이 이곳 카우토키노에 있는 사미대학의 중요한 역할이자 업무이기도 하다.


참고 사이트: 사미대학 http://www.samas.no




* 참고 사이트: 사미족 언어에 대한 설명(문법, 철자 등)

:http://www.norwayhus.com/kultur/kultur_5.php?t_sort=%BB%E7%B9%CC%C1%B7


↑ 1970년대 사미 초등학교 수업하는 모습들


⟵ 1970년대 사미어 교본


* 중세 이후 오랫동안 사미족을 지배해 온 노르웨이는 1959년도 까지 사미어로 된 교육을 철저히 금지했다. 196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미인들이 자신들 학교를 세우고 교육하게 된다.

* 사미대학 복도에 걸린 사미인 모습액자와 카우토키노 마을 전경, 그리고 카우토키노 교회

* 사미마을  전경과 노르웨이 핀란드 국경 사진, 철조망이 인상적이다.

 



3. 카라스요크의 '사미의회'


노르웨이 최북단 라플란드 지역을 'Finmark'라고 한다. 이곳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 덕분에 사미인들이 사슴 사육을 많이 한다. 특히 핀란드와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 국경이 만나는 핀마크(Finmark)  남부에는 사미인들에게 중요한 거점도시 카우토키노(Kautokeino)와 카라스요크(Karasjok)가 있다. 이 도시들은 스칸디나비아 라플란드 거주 사미인들에게는 수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시의 의미는 단순히 도시로서뿐 아니라 정신적 고향 같은 역할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핀란드 렘멘요크 국립공원의 숙소를 출발해 이나리(Inari)를 거쳐 카라스요크(Karasjok)로 간다. 이 곳에 있는 사미 의회는 1989년 라플란드 지역 중 가장 먼저 의회를 설립했다. 노르웨이 거주 사미인들의 숫자(4만여 명)가 많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의 한이 그만큼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카라스요크의 사미의회는 의회의 역할과 기능뿐 아니라 이곳에 사미 방송국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방송국 관계자를 만나지 못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전하지 못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후일 기회가 되면 방송국 견학기는 따로 올리도록 하겠다.)


카라스요크 취재를 마치고 카우토키노로 간다. 이 도시는 라플란드의 한이 서린 곳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이 들어서 있는 사미족들의 정신적 고향 같은 곳이다.  아무튼 카우토키노까지 가는 내내 겨울 같지 않은 따스한 날씨에 여행을 떠나는 설레는 마음이 마치 들떠있는 어린아이처럼 기분을 좋게 한다.(* 가을과 겨울, 두 번에 걸쳐 방문을 했기에 사진 분위기가 다르니 참고하시기를...^^)  

   

* 핀란드 국경을 지나 노르웨이 사미의회가 있는 카라스요크로 가는 중

* 카라스요크에 있는 사미의회 건물, 왼쪽 라부천막을 본떠 만든 건물에 방송국이 들어서 있다. 오른쪽은 의회 건물 안에 설치된 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시설들

* 의회 건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미족 박물관과 체험마을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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