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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29. 2016

사랑의 전설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15


얼음나라 공주와 불의 나라 왕자



1.


사랑의 전설 /  원대연


얼음 나라 공주님과 불의 나라 왕자님은

더 이상 이대로 바라만 보고는 살 수 없다는 생각 끝에

단 한번 서로를 만져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대신하고자 약속했습니다.

“다음엔 당신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겠어요”

한 걸음씩 서로의 손끝이 가까워질수록

얼음 나라 공주님은 온몸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고

다가가고 있는 왕자님의 몸도 조금씩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서요... 망설이지 말고 어서요”

공주님의 아픈 눈물에 왕자님이 멈칫 망설이고 있던 시간에

이미 공주님은 여전히 눈물처럼 흐르고 있는

작은 손끝만을 남긴 채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다음엔 당신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

영원히 안아 줄게요, 약속해요...“

녹아 흐르는 작은 손끝을 잡아 보려

공주님의 눈물 속으로 뛰어든 왕자님의 몸은 차츰 식어 갔고

조금씩 조금씩 작은 양초가 바람에 꺼지듯

왕자님의 모습은 더 이상 불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둘의 사랑을 지켜보시던 하느님은

몇 날이고 몇 날이고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을 흘리시다가 

끝내는 둘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얼음 나라 공주님은 불의 나라 공주님으로

불의 나라 왕자님은 얼음 나라 왕자님으로...


<사진 설명> 일몰 풍경들, 수평선에는 언제나 떠내려 온 빙하들로 가득하다.



얼음나라 공주님과 불의 나라 왕자님이 애타게 서로 사랑을 갈구하길래 이를 지켜보시던 하느님이 끝내 둘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얼음 나라 공주님은 불의 나라 공주님으로, 불의 나라 왕자님은 얼음 나라 왕자님으로... 참 야속하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느님이 들어주신다기에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건만 이건 뭐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문득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 머무룰수 없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어서 짐을 싸라는 신호처럼 들렸다.


<사진 설명> 4월 하순의 자정이 넘은 시각인데도 사진 촬영을 할 만큼 훤하다.  



오콰아트수트(Oqaatsut), 이곳을 그린란드에 주둔하는 미군들은 로드베이(Rodebay)라고 불렀다. 아마 그린란드 어가 발음하기 쉽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린란드 사람들은 그린란드 서부지역의 이누이트 말을 표준말로 정하고 그린란드 공식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인구 5만 6천여 명 밖에 안되지만 자신들 언어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은 대단하다. 그게 바로 독립에 대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덧붙여 자신들의 전통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돌무지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야말로 문화는 집단적 가치체계라 했으니 이들의 집단적 가치체계는 전통적인 문화양식들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소수민족의 엄청난 자존감이다.


스물아홉 명이 사는 곳, 하지만 그린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 유행가 가사처럼 “시간이 야속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더욱 아쉽기 그지없다. 혹여라도 시간을 머물게 할수 있다면, 아니 잠시라도 천천히 시간을 가게 할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빨리 가거나 천천히 가거나 시간이 가는 건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에 정신을 차린다. 열심히 이 마을 곳곳을 가슴에 담아 가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을 것 같다. 


매일같이 이곳으로 올라 와 바다를 바라보며 혹시 고래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리고...


<사진 설명> 이 마을에 교회도 있다. 그런데 일요일인데도 문은 끝내 안 열렸다.   



2.


며칠 동안 아침마다 아침상을 차려주고 말벗이 되어준 사라와 그녀의 딸, 13살 된 사라의 딸은 앳되면서도 숙녀 같은 여자의 본성을 지닌 그런 아이다. 처음에 눈썹을 짙게 그리고 나타난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힘이 들었지만 상상력이 아주 뛰어난 아이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다 자기 뜻대로 사는 게 아니라 신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하면서 물고기들은 한 번도 인간을 지배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 아이는 이런 사실을 어디서 알게 되었을까? 정말 궁금했다. 


인간들이 그런 물고기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대고 있다. 어떨 때는 필요 이상으로 물고기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드나가 인간을 잡아다 아들리분(세드나가 사는 물속 궁전)으로 데려가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묘해진다. 풍랑이 거세지면 사고가 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어쩌면 이 아이는 그걸 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설명> 불의 나라 왕자님과 얼음나라 공주님이 사랑을 나누는 곳...



일을 끝내고 아이와 엄마가 어깨동무하며 놀이하듯 걸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창문 너머로 보면서 참 고운 사람들이란 느낌을 받았다. ‘우리 동네’ 사람들과 똑같다. 그래서 더욱 이누이트들이 정감이 간다. 문득 이들을 보면서 눈보라 치는 날 황량한 바위틈 속에 잡목들이 숨어 자라고 있는 게 생각이 났다. 그린란드에는 나무 한그루 없지만 잡초와 잡목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 여름 시기가 되면 나름대로 어여쁜 꽃을 매달고 푸르른 잡초처럼 피어난다. 그게 이누이트를 닮은 그린란드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나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동네처럼 느끼게 해 준 곳, 오콰아트수트에 저녁노을이 짙어가고 밤이 찾아오지만 4월 하순의 밤은 이미 백야를 준비하느라 자정이 넘은 시각인데도 사진을 찍을 만큼 환하다. 밤 11시가 다되어서야 해가 지고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이른 새벽녘에 또다시 해가 솟아오른다. 북위 70도가 조금 넘는 위도, 당연히 태양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아침해가 뜨자마자 이른 새벽녘에 언제나처럼 잠시 마을 산책을 나선다. 언제나 그렇듯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노랑색, 파랑색, 갖가지 색들의 집들이며 심지어 강아지들(썰매개)까지 짓궂은 장난을 하며 귀엽게 놀고 있다. 모든 건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 그대로이다. 잠시 그 자리에 나라는 존재가 잠시 스쳐가듯 머물다 갈 뿐이다.





사라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또다시 언제나처럼 이별을 고하고 선착장으로 나선다. 선착장에는 지난밤 쇄빙선이 미리와 한 바퀴 돌며 정지작업을 해놓은 덕분인지 바닷물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선착장이래야 바닷물이 얼지 않은 곳 한쪽에 배를 타고 내리도록 했을 뿐 정식 선착장은 모두 얼어붙어 보이 지를 않는다. 어쨌거나 나를 싣고 갈 모터보트도 이미 도착해 기름을 넣고 있다. 


문득 선착장 건너편에 섬이 보인다. 그런데 그 섬이 그린란드에서 보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바닷물에 반영되어 보이니 신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문득 떠나는 나에게 세드나가 마치 일각고래의 뿔처럼 생긴 모습으로 인사를 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누이트들에게 일각고래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고마운 일이다. 편한 마음으로 오콰아트수트를 떠나간다. 



머물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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