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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May 27. 2018

빈센트 반 고흐가 살던 몽스의 집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벨기에  11


인생의 전환점은 누구에게나 있다.



인생의 전환점, 간혹 그런 순간을 떠올려 본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계기로 인해 삶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행과 불행이 결정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행운의 여신이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기도 하는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분명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텐데도 우리는 그런 순간을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 어떻게 그 순간을 잡아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삶의 전환점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1853년 어느 봄날, 칼뱅파 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온화한 어머니 사이에서 열정적인 심성을 지닌 아이가 태어난다. 이 아이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어 오늘도 애증의 징표처럼 흠모를 받고 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그 주인공이다.


가까운 친척이 그림을 거래하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고흐 역시 어려서부터 그림 가게 점원으로 일을 하면서 점차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원래 고흐는 그림보다 책을 더 좋아하던 아이였다. 런던 서점에서 근무하던 시절 거의 책방에 있던 화가들에 관한 책을 모두 독파하면서 그들의 삶과 미술세계에 탐닉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만간 파리지사로 옮겨온 후 성서에 탐닉하다 결국 암스테르담 대학 신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된다. 모두가 책 속의 이론과 현실을 동일시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고흐는 암스테르담 신학교에서도 보고 만나는 종교적 실체가 단지 ‘금관의 예수’ 일뿐이라는데 실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신학교를 중단하고 선교사로 벨기에 몽스로 간다.


몽스에 있는 고흐가 살던  집
고흐가 테오에게 "다시 그림을 그리겠다"라고 쓴 편지와 편지를 쓴 낡은 책상



고흐는 2년여 기간 동안 몽스에 머물면서 선교사로 일을 하지만 막장에서 올라온 광부들 모습을 보면서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갈등을 하게 된다. 고흐는 종교의 탈을 쓴 교회의 위선과 신의 얼굴을 지닌 광부들의 인간적인 모습 사이에서 고뇌하며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고흐는 또다시 목사인 아버지에게 쫓겨나다 시피하고, 선교사의 지위마저 박탈당한다. 옷가지며 음식 등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성자와 같은 행실을 보이자 성자처럼 행동하던 그를 탐탁지 않아했던 교회가 결국 그를 잘라버린 것이다. 


깡마른 청년 고흐, 몽스 외곽에 있는 자그마한 탄광촌 퀴엠(Cuesmes)을 번질나게 찾던 고흐는 독실한 수습 선교사였지만 이 마을은 고흐를 버린 듯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마을 광부와 어울리며 2년 동안 몽스에서 지낸 고흐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1878년부터 큄므, 콜퐁텐, 그리고 보리나주(지금은 모두 몽스로 통합되었다.)를 전전하며 살았다. 빵집, 오두막, 신자의 행랑채 같은 곳을 마다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먹고 지냈다. 그러면서 고흐는 목사가 되려던 생각을 접고 이들을 그리며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몽스에서의 2년여 시간 동안 광부의 삶에 너무 깊이 동화된 그는 광부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동생 테오에게  1880년 9월 24일 그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다. 동생 테오도 형이 그림을 그리겠다는 소식을 전하자 반가워하며 기꺼이 돕겠다고 답장을 보낸다. 이제부터 형과 아우의 우정 어린 편지왕래가 시작된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들은 어쩌면 고흐의 그림만큼이나 아름답고 찬란한 삶의 역정이 담긴 그런 보물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게 한 청년의 인생은 몽스에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 후 몽스를 떠난 청년은 예정대로 화가의 길을 걷는다. 물론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삶의 회의와 고통을 겪지만 결국 고흐의 그림들은 그야말로 “별처럼 빛나는 그림들”로 그가 떠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세기의 화가로 칭송받는 반 고흐, 그의 운명을 뒤바꾼 곳이 바로 몽스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지만 큰 도시 몽스(Mons), 지금도 동네 한편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을 끼고 골목을 지나 얕은 언덕길을 오르면 나타나는 벽돌집이 석양에 물들고 있다. 마치 고흐가 그린 그림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동생 테오에게 “이제부터 다시 그림을 그릴 거야”라고 편지를 썼던 낡은 책상이 하나 놓여 있다.


참고:

몽스의 반 고흐 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방문이 가능하다.

집주소: Rue du Pavillon 3, Mons 7033, Belgium

누리집: www.maisonvangogh.mons.be


고흐가 살던 몽스의 집과 일하는 사람들 스케취, 그리고 '감자먹는 사람들'(1885)
저녁햇살이 물감이 뿜어져 나오듯 고흐가 살던 몽스의 집을 채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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