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수 Mar 13. 2018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파리 오페라극장


파리, 그 이름 자체가 느낌으로 다가오는 도시, 수많은 이야기와 멋진 풍광이 자리한 도시, 파리를 파리답게 만든 숨은 보석, 어쩌면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가 된 ‘오페라 극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 아닐까?


1858년 1월 14일 유명한 바리톤 가수 장 예티엔 오귀스트 마르소의 은퇴 기념공연을 보기 위해 나폴레옹 3세가 극장을 찾는다. 이때 이탈리아에 대한 그간의 프랑스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탈리아인 우르시니가 폭탄을 투척한다. 이때 156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지만 다행히 나폴레옹 3세는 위기를 모면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뜻으로 ‘공공의 복지’를 위해 새로운 국립가극장 건설을 명한다. 건축 설계공모를 발표하자 171건의 작품이 응모를 한다. 이중 샤를 가르니에 공모안이 채택된다.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쟝 루이 샤를 가르니에(Jean Pouis Charles Garnier, 1825-1898), 그의 설계안대로 오페라극장은 드디어 1862년 착공되고 1875년 완공된다. 마름모꼴의 이 건축물은 정면 계단으로 올라가면 다섯 개의 입구 문 앞에 서게 된다. 그 중앙에 아폴로 상이 황금색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양쪽으로 가르보의 춤추는 동상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건물 주변은 온통 음악가들과 시인들 동상으로 가득하다. 중앙문을 통과하면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을 오르게 되는데 주변은 호화로운 조각상과 천장화가 그려져 있어 눈을 사로잡는다. 


오페라극장이 완공되자 오페라극장의 화려한 모습처럼 파리는 서서히 변화해 간다.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는 동안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한다. 그의 명을 받은 오스만 남작의 주도하에 파리의 비좁은 중세 도로들은 사라지고 대신 넓은 대로와 멋진 공공건물들이 대로변에 들어선다. ‘오페라극장(오페라 가르니에)“도 그중 하나로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다. 그 후 이 지역을 지나는 지하철 역은 ‘오페라’라고 부르게 되고 ‘오페라’는 음악과 발레를 총칭하는 이름처럼 사용된다.


오페라극장
오페라극장을 들어서면 만나는 대리석 계단이 있는 중앙홀과 천장 그림들



오페라극장 개막식 공연은 프로망탈 알레비(Fromental Halévy, 1790-1862)의 작품 ‘유대 여인(La Juive)이었다. 가톨릭 신도인 남자와 유대교 신자인 여자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5막으로 구성된 그랜드 오페라이다. 극 중 유대 여인 라헬의 아버지, 금세공인 엘레아자르가 부르는 아리아 “Rachel, quand du Seigneur”(Rachel, when God in his wisdom)는 단독으로 자주 연주된다.(* 이 곡은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즐겨 부른 곡이기도 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코펠리아’를 공연한 후부터 20세기에 들어서서는 발레를 더 많이 공연한다. 

오페라극장 개막공연 여주인공

오페라극장은 가르니에 명성이 더해져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시대의 걸작품으로 건축미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23년 프랑스 문화재로 공식 지정된다. 2200석을 가지고 있는 오페라 극장은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을 따서 가르니에 궁(Palais Garnier)이라고도 부른다. 흔히 파리 오페라 극장(Opéra de Paris, Paris Opéra)으로 알려진 이 극장은 오페라 거리 북쪽 끝에 있다. 


1875년 이 오페라 극장은 공식적으로 국립 음악아카데미 오페라극장(프랑스어: Académie Nationale de Musique-Théâtre de l'Opéra)으로 명명된다. 이 이름은 1978년까지 유지되다가, 파리 국립오페라극장(프랑스어: Théâtre National de l'Opéra de Paris)으로 개명을 한다. 


건물 외벽에 “Academie Nationale de Musique et de Danse”(국립음악무용협회)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지만 지금은 그냥 “Opera national de Paris”(파리 국립오페라)라고 부른다. 이 협회는 17세기부터 존재해 왔으며 이 협회의 유명한 회원들 동상이 건물 내, 외부에 장식되어 있다. 바흐, 헨델, 글룩, 모차르트, 그 외에도 많은 음악가들 모습을 오페라 극장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루르(Gastong Leroux, 1868-1927)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천재적인 음악성을 지니고 있지만 추한 얼굴 때문에 유령 행세를 하는 ‘팬텀’이 사랑하는 여가수 크리스틴에게 구애하는 장소가 바로 파리 오페라 극장 지하공간이다. 이 건물을 짓던 19세기 당시, 지반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견된 지하의 작은 호수로 인해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는데 가스통 루르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유명한 지하 호수 장면을 바로 이 곳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다.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바라본 객석과 천장
샤갈이 그린 천장화 "꿈의 꽃다발"


유령이 사는 지하 궁전, 오페라극장 지하에는 호수가 있고 그곳에 유령이 살고 있다. 유령은 작은 배에 크리스틴을 싣고 호수를 저어 그의 거처로 향한다. 구름 같은 물안개가 자욱한 지하 호수에 양초 모양의 등이 솟아오른다. 커다란 촛대등이 양쪽으로 늘어선 유령의 거처. 크리스틴과 유령은 이곳에서 2 중창으로 주제곡(The Phantom of the Opera)을 부른다. 파리 오페라극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역시 가스통 루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뮤지컬을 만드는데, 바로 이 오페라극장을 배경으로 제작한다. 그런데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으로 유명한 옛 바스티유 감옥 부지에 현대적인 설계로 지은 오페라 바스티유(Opéra Bastille)가 완공되자 파리 오페라극장은 오페라보다 주로 발레 공연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이곳에서 그동안 오페라 600편 이상, 발레 300편 이상을 공연했다.


아름답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이 건물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은 20세기 중반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이 객석 중앙 천장에 그린 천장화를 들 수 있다. “꿈의 꽃다발”이라는 주제로 샤갈이 그린 천장화는 볼수록 특이한 맛을 느끼게 한다.


파리 오페라극장과 샤갈이 맺은 인연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샤갈이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르게 된 모리스 라벨의 발레 작품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무대장치와 의상 작업을 맡아 진행한다.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 프랑스 문화부 초대 장관)는 이 공연에서 샤갈의 작품을 접한 뒤 그의 솜씨에 매료되어 극장 천장화를 의뢰한 것이다. 


그림을 의뢰받은 샤갈은 원형 천장을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등 색깔별로 구역을 나누고, 윗부분에 배우와 음악가의 창작활동을 아름다운 꿈속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묘사한다. 그리고 아랫부분에는 관객의 의상이 일렁이는 것을 표현해 환상적인 색으로 채색을 한다. 그렇게 해서 “꿈의 꽃다발”이 완성된다. 


1964년 9월 23일 드디어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은 마르크 샤갈이 그린 천장화를 공개한다. ‘앙드레 말로가 샤갈에게 파리 오페라극장의 새 천장화를 그려 달라고 제안을 한 후 그가 그린 완성된 작품을 공개한 것이다. 천장화는 원래 폴 보들 리가 그린 “선율과 조화”라는 작품이었는데 오페라극장이 화재로 복원을 추진해야 했기에 샤갈의 “꿈의 꽃다발”로 바뀐 것이다.


오페라극장 뒷편 박물관 입구
지난 오페라 프리마돈나들
오페라극장 분장실과 의상실
오페라 작품 주인공들의 의상 스케치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고발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