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만난 박인경 여사
※ 여기 올린 그림들은 모두 박인경 초대전(2010, 서울) ‘나무 숲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며, 여기 올린 시들 역시 모두 박인경 시집 <봄이 뛰어 오네>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그녀의 자연에 대한 사랑
그보다 더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
아니 그 보다 더한 고암에 대한 사랑
그것이 그녀의 영원한 주제인지 모른다.
※ 박인경 여사와 파리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는 이 글 말미에 정리해 놓았다.
새벽 / 박인경
나 가만히 걸어간다
발이 마루 위에 놓일 때마다
실 같은 소리가 난다
커피 한 모금 내 목을 넘어간다
샘물이 작은 돌굽이를 감돌듯
소리가 난다
붓이 종이 위를 스쳐가는 소리가 난다
라디오를 틀려다 만다
밝아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태양 / 박인경
태양이여
감사합니다.
어김없이
아침이면
찾아주시어
게으른 내 마음
일깨워 주시고
아파하는 내 마음
쓰다듬어 주시며
메말라 가는 내 마음
축축이 적셔 줍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베푸는
뜨거운 사람
저기 저 초목처럼
당신 사랑 잉태하고
곱게곱게 키우고 싶습니다
저기 저 초목처럼
아무 반항 없이
당신 사랑 받아들여
행복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 박인경
보이지 않는
하늘 너머
꿈나라에서
어느 날
무지개 타고
내려왔기에
가지 못하는 내 고향
오늘도 그리워
산짐승처럼
고개를 쳐들고
머언
하늘을 쳐다봅니다
어머니!
큰 소리로
불러 봅니다
산울림도 없고
맑은 달빛 비추는 호수도 없고
어머니 살 냄새를 내 품에서 맡아봅니다
소꿉장난 / 박인경
볕에 쬐여
아랫 바위도 따뜻하고
윗 바위도 따뜻하고
온돌 같습니다
소나무 솔잎을 따서 빗자루 만들어
깨끗이 쓸어서 앉읍시다
너 아빠 해
나 엄마 할게
땅에서 주워 모은
깨진 사기 조각에
아름다운 꽃무늬가 빛납니다
들풀을 뽑아 김치 담고
가지각색 꽃잎 따다 반찬하고
고운 모래 담아 밥 짓고
나뭇가지 꺾어 젓가락 놓고
나 너보고 여보라고 부를게
너 나보고 여보라고 불러봐
행복 / 박인경
하늘 저 먼 곳에
별빛 반짝이는
쳐다볼 수 있는
행복이 있습니다
고독과 행복은
같은 것
같습니다
비행기도
공중에 길이 있다고
나 같은 사람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도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길이 있으니
별에 갈 길처럼
멀고 멀어도
행복합니다.
나도 모르는 눈물 / 박인경
붓을 들고 한 획을 그으니
눈물이 고인다
둘째 획을 그으니
눈물이 쏟아진다
나도 모르는 눈물
외롭고 슬펐던 마음이
눈물 되어 쏟아지나
붓을 들은 행복에서 흘러나오나
꽃 한 송이 그려 놓으니
그 꽃 나를 달래며
울지 말고 나처럼 살짝 웃어봐
울지 말고 나처럼 함박 웃어봐
꽃들이 별처럼 모아져 반짝이니
눈물은 멈쳐도 가슴 뜨거워
목 놓고 울고 싶어
‘고암 20주기 특별전’에 부침 / 박인경
여보
벌써 당신의 20주기가 되었군요.
이제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내 나이가 되었습니다.
당신과 내 나이 지금은 같아졌습니다.
이제 진정 사랑이 무엇인가,
당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이 사랑이지요.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동갑이 되면서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누구보다
계속 계속 오래오래 사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쁜 ‘오늘’입니다.
이번 ‘20주기 특별전’을 축하합니다.
고암은 / 박인경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고향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가고
서른에 처음으로
부산에서 배 타고
일본 가고
쉰넷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프랑스 오고
여든다섯에
처음으로 별나라 갈 때는 어떻게 갔을까?
지금도
그곳에서
그림
그리고 있겠지!
나의 별 / 박인경
우주 속에
달 하나
그것으로 족하다
만인의 달
그는
만인을 사랑한다.
나만의 달이었다면?
별 하나
그의 이름
o o o
그는
자기 자리에서
반짝반짝거립니다.
나
매일 밤 내 자리에서
그를 쳐다봅니다.
나의 별
햇살이 꽤나 따가운 7월 어느 날 박인경 여사를 찾아 나섰다. 파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 보 쉬르 센느(Vaux-Sur-Seine)라는 작은 마을에 당도했다. 문패도 없는(?) 허름한 정문을 들어서니 강아지 세 마리가 반긴다. 이 강아지들은 현재 박 여사님의 유일한 친구이자 반려견이다.
고암 이응로 선생께서 1989년 1월 15일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어 원래 살던 집을 정리하고 지금의 집으로 모두 옮겼다고 한다. 비탈길 언덕을 돌아서면 발아래로 세느강이 흐르고 있어 집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멋진 전망을 보여준다. 평소 이 집에서 두 분 내외가 세느강을 바라보며 고향생각에 젖고는 했다고 한다.
흐르는 세느강 저편에는 흡사 당인리 발전소(?) 굴뚝같은 게 두 개가 보이는데 벤치에 앉아 바라보면 정말 당인리 발전소를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라도 고향을 그리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라고도 했다.
아담한 정원이 있는 고택 한 귀퉁이에는 낡은 집을 수리해 다용도 아카이브로 사용하는 건물도 보였는데 도대체 언제 누가 그걸 다 준비하고 완성할지 은근히 걱정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건 다 박 여사님 몫이라고 했고, 천천히 완성해 나갈 계획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85세라는 연세가 못내 박 여사님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전해지며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동안 이 집 경내에 고암서방도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이응로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 파리 시립 동양박물관인 세르누쉬미술관 부설로 1964년부터 파리 최초로 동양미술학교를 개설하고, 그동안 3천여 명이 넘는 문화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고암 선생의 공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유럽에 동양 예술과 한국예술의 우수성과 정신을 알린 것이다. 그러나 고암 선생이 타계하자 운영상 어려움이 따르게 되면서 지금은 잠시 문을 닫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대신 고암서방을 만들었는데, 고암서방은 1993년 고암 이응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건축된 프랑스 최초의 전통 한국식 기와집을 가리킨다. 이 한옥은 목수라고 자처하며 호를 정한 신영훈 씨가 건축했는데, 가옥 전체를 한국에서 지은 상태로 날라와 현지에서 다시 조립했다고 한다.
25평 규모의 고암서방은 중앙의 큰 마루를 중심으로 안방과 작은 방이 배치되어 있고, 각 방의 문을 떼어 천장으로 올리면 전체가 하나의 큰 방이 되는 개방형 구조로 전통 한옥구조이다. 앞으로 이 곳은 파리의 고암 기념관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동백림 사건 이후 파리에서 사는 일은 오랫동안 한국인들이 고암 선생 근처에 오지 않아 다소 혼자 지내는 게 외롭기는 해도 익숙한 듯했다. 한데 문득 내게 “이제는 자주 올만큼 여유가 있으시지요” 하시면서 넌지시 자주 와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주신다. 그리고는 또 “아직 5년은 더 살 수 있겠지”라고 하시며 스스로 무엇인가를 다짐하시는 듯했다. 나는 당황해하며 아니 “앞으로 15년은 더 뵐 수 있을 텐데요” 라며 손을 꼭 잡아드리는 것으로 답을 할 뿐이었다.
나에게 커피와 차를 대접한다고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러는지 아이처럼 신나 하신다. 그런데 이때 “하 이렇게 더운 날은 수박이라도 한 덩이 잘라놓고 먹어야 하는데”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그만 잠시 여기가 프랑스이면서도 전통적인 한국 어르신이 살고 계신 곳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준비해 간 과자가 그 속내도 일지 못하고 초라할 뿐이었다. 혼자 지내다 보니 장을 본지 벌써 10여 일이나 지났다고 하면서 우리를 대접할 게 마땅치 않아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가을에는 고암 아카데미를 다시 오픈해야 하고 박인경 여사 당신의 전시회도 준비하고 계신다며 10월에는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일을 도대체 어찌 당신 혼자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믿기지 않았다. 산자가 죽은 자의 어디까지 돌보아야 한다는 건지 이럴 때는 정말이지 그런 게 사랑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아마 그건 고암 선생께서 너무도 복이 많아서, 아니 전생에 너무도 절절한 사랑을 하셨기에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랜만에 긴 이야기,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또다시 떠나야 했다. 여사님 곁을 지키고 있는 백구와 순희, 보리가 처음 마중할 때와는 달리 되돌아가는 나를 보며 풀이 죽은 기색이 역력했다. 강아지 3마리가 마치 사람처럼 우리들 마음을 읽는다. 저 녀석들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 박인경 여사는 ‘이응로 미술관’과 개인 전시회 등 일로 일 년에 한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신다.
※ 이 글은 여러 해 전 쓴 것인데 다시 정리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