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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Feb 24. 2019

'내가 만난 북유럽'


1.     

드디어 <내가 만난 북유럽> 책이 나왔다. 이곳 브런치에 '북유럽 인문학 여행'이란 제목으로 썼던 글들 중에서 일부를 뽑아 정리하고 <내가 만난 북유럽>이란 제목을 붙여 펴냈다. 지난여름 광기처럼 달아있던 한 여름의 태양 때문인지 대상포진까지 걸려 팬텀 오브 오페라의 주인공 같은 몰골로 고생하며 교정을 보던 시간들까지 여행처럼 느끼게 하는 책이다. 당연히 고대하던 만큼 반가운 책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이 책은 잊을 수 없는 책이다. 그건 지나간 시간들이 이 책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시간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이 책에 빼곡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즐겁고 아름다운 길을 갈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험하고 힘든 길을 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가끔 눈을 감고 상상 속 나래를 펴고 머릿속에서 상상 여행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엔가 멋진 환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환상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홀로 배낭을 꾸리고 떠나는 사람, 혹은 둘이 함께 손을 잡고 떠나는 사람, 이런 사람들 모두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쓴 책이라고 하고 싶다. 그건 여행하다 잠시 쉬면서, 또는 힘들고 외롭다고 느껴질 때 문득 배낭에서 꺼내 볼 수 있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조건 속에서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이 책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신화를 찾아가는, 또는 신화를 이룬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그런 길을 찾고 싶어 길을 떠난 ‘그대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고 싶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9726397


   

2.     


‘북유럽 인문학 여행’에서 가장 기본적인 주제는 ‘신화’이다. 신화는 ‘옛날이야기’처럼, 때로는 ‘역사’처럼 보인다. 그런 신화가 어떻게 존재하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해 왔는지를 아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신화는 그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우리 문화와의 관계까지도 유추해 낼 수 있다.      


‘신화’라는 것은 단지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주는 이야깃거리라고도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그 여행이 훨씬 재미를 더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 여행’이 추구하는 재미이자 가치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여행에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거창한 듯 하지만) 창조주가 의도하는 진짜 인간다운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여행이 더 많은 즐거움을 느끼며 소위 ‘힐링’을 통해 여행에 대한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따라서 ‘인문학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름 아닌 “즐겁지 않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내가 만난 북유럽>은 그런 의미에서 분명 가장 별나고 재미난 여행을 도와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신화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우리의 여행은 그로 인해 더욱 즐겁고 재미난 여행이 될 것이다. ‘신화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북유럽을 관통하는 문화적 기본 틀은 북유럽 신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과 바이킹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함께 겪어왔다는 사실이다. 스칸디나비아가 바이킹 시대를 통해 북유럽만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그들만의 사회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스칸디나비아의 문화적 전통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킹에 대한 관심과 문화는 여전히 그들 삶의 가장 큰 동력으로 자리하고 있고, 오늘도 바이킹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마가렛 미드는 그런 의미에서 사실(fact)과 진실(truth) 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즉 신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은 사실을 적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신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찾아내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중요해진다. 이때 신화라는 것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인가를 추구하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이란 말을 단순히 이야기를 하는 행위에 국한하지 않고 신화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북유럽 신화의 절대자 오딘(Odin)과 핀란드 신화 칼레발라의 주인공 그림(헬싱키 박물관 아테네움 소장)
바이킹 함선과 바이킹 거주지 로르부어(통나무집)
북유럽 지형은 대부분 척박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환경이 좋은 관광자원 역할을 한다.
뭉크의 '절규'와 그리그가 작곡할 때 사용한 베르겐의 오두막집, 산타마케팅의 귀재 핀란드가 로바니에미에 설치한 산타 사무실



3.     


오래전 유학을 하던 시절 어느 겨울날 기차를 타고 우리 가족은 스웨덴 웁살라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 갔다. 독일 함부르크를 지나자 기차는 북유럽으로 향하는 손님을 태운 2개의 객차를 배에 싣고 꽁꽁 언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당시 세 살짜리 아이는 잠을 자지도 않고 신기한 모습에 흥분을 했는지 밤새도록 “기차가 배에 들었갔다”며 혼자 중얼거리며 놀고 있었다.     


모든 게 신기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웁살라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오후 3시도 안되었는데 컴컴해지는 걸 보면서 “아 내가 북유럽에 왔구나!”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의 담배값이 500원도 안 하던 시절 담배를 피우던 나는 웁살라에서 담배를 사야 했는데 우리 돈으로 4000원 정도 하는 걸 보면서 혀를 내둘렀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북유럽 여행은 그 후 본격적으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등지를 다니며 북유럽의 신화와 예술, 그리고 사람들을 만났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북유럽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가이드북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북유럽 곳곳에서 마주치게 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책이다, 예를 들면, 뭉크의 ‘절규’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북유럽 곳곳에서 마주치는 바이킹 문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북유럽 신화는 북유럽 사람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누구도 속시원히 알려주지 않던 이야기들을 찾아내 정리했다. 그래서 이 책과 함께라면 북유럽 여행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북유럽 신화의 흔적들, 예를 들면,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신들을 북유럽 신화의 거인족인 ‘트롤’의 후예라고 말한다. 또한 노르웨이에는 거인족들이 최후의 전쟁에서 패한 후 은신하고 있다는 요툰헤이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국가인 북유럽의 도시 곳곳에서 신화의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선 북유럽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북유럽 신화와 함께하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면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톨릭으로 개종을 거부하고 바이킹에 나선 아이슬란드의 에릭(Erik, 1000경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교회 앞에 세워둔 것은 왜일까?
북유럽에서 만난 오로라
북유럽 최북단에 거주하는 7만여명의 원주민 사미족의 생활상과 사미족 국기  


북유럽 여행의 별미 중 하나는 험난한 자연경관과 음흘한 날씨를 즐기는 일이다. 하지만 마음먹고 덤비지 않으면 자칫 재미없는 여행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특히 겨울철, 북유럽 여행은 쉽지 않다. 태양을 볼 수 있는 건 잠깐이고 지천에 쌓인 눈과 얼음을 헤치고 다닌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눈 쌓인 도로에 자동차가 빠져 혼자서 헤쳐 나오기도 했고, 눈밭에 빠져 반나절을 기다리며 식은땀을 흘리다 구조되기도 했다. 또한 오로라를 보겠다고 북유럽 최북단 라플란드를 2주 동안 헤맸지만 제대로 된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오로라를 포기하고 짐을 챙기던 순간, 선물처럼 오로라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북유럽의 재미는 기대하지 않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대했던 북유럽이라는 장소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문득 아름다운 여행의 진미를 느끼게 되었던 여행. 이것이 <내가 만난 북유럽>이었다.     


그동안 <내가 만난 북유럽> 글을 올리면서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이 있었다. 일일이 그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언제나 격려와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아울러 앞으로도 좋은 글로 보답할 것을 다짐한다. Non plus Ul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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