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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07. 2016

불과 얼음, 그리고 오로라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아이슬란드  4


나는 지금 ‘검은색의 봄이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선다. 날씨는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데 약간 흐렸다. 아침해가 뜨는 장면을 혹시라도 볼수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틀렸다. 그래도 신선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는 게 참 좋다. 


길 위에 서니 또다시 새로운 기대와 설렘이 스민다. 언제나 그렇듯 집을 나서 어떤 길에 들어선다는 건 지금껏 내가 만난 것들과 또 다른 만남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는 다르다. 당연히 나 역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 내가 언제나 나일수 있다면, 그리고 그대가 언제나 그대일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아니 슬픔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매일 다른 내가 되어 다른 너를 만난다. 그러기에 그대에 대한 그림움이 생겨나고 호기심도 커지는 게 아닐까? 오늘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며 길을 나선다.


<사진 설명>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의 영향을 받은 전통 가옥들 



운전을 하면서 가다 보면 길 저편에 보이는 멋진 경치들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수가 많다. 그러니 무조건 달리기만 하지 말고 쉬엄쉬엄 갈 일이다. 가끔씩 운전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일이 그래서 더욱 즐겁고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보이는 경치들이 지금까지 보았던 그림들과 많이 다르다. 역시 아이슬란드가 산악 지형과 빙하 지형이 대부분이기에 그림 같은 경치를 보여 준다. 저 멀리 산봉우리 사이로 폭포 물줄기가 보인다. 잠시 또 쉬었다 가기로 한다. 이른 시각에 출발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지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다. 


기온은 영하 5도 정도, 바람이 심하게 불고 제법 춥다. 그린란드에서 영하 20도에서도 개썰매를 타고 다녔는데 이까짓 추위쯤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자동차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폭포 물줄기가 갑자기 내 얼굴로 날아든다. 순간 온몸이 오싹해진다.


폭포 주변은 영하의 추위 때문인지 물방울들이 얼어붙어 예쁜 얼음 구슬을 만들어놓았다. 마치 겨울왕국의 얼음궁전 같은 모습처럼, 폭포 주변은 얼음 구슬들로 가득하다. 폭포는 안쪽까지 들어갈수 있는 길이 나 있지만 얼음이 얼어 미끄러워 걷기가 힘들고 위험하다. 


셀야란드폭포(Selalandfoss)
얼음궁전으로 오르는 계단
폭포 안쪽에서 본 풍경



다시 또 1번 국도를 따라 얼마를 가다가 두 번째 폭포를 만난다. 시원한 물줄기를 선사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줄기는 괴이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시원한 물줄기가 날린다. 여름에는 이 일대가 모두 초록 이끼와 잔디로 뒤덮여 색다른 경치를 보여준다는데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 초록빛을 잃은 모습이 아쉽기 그지없다. 여름에는 분명 초록 폭포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머릿속에 그리며 또다시 길을 재촉한다.


스코가르폭포(Skogarfoss)의 위용



이번에는 유명한 아이슬란드의 빙하 뮈르달스요쿨(Myrdalsjőkull)로 간다. 물과 불의 나라 아이슬란드라고 했으니 빙하는 아이슬란드의 제일가는 아이콘이다. 뮈르달스요쿨 빙하는 아이슬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빙하지역이며 모두 4개의 봉우리가 빙하를 둘러싸고 있다. 빙하의 두께는 제일 얕은 곳이 30미터 정도, 제일 두꺼운 부분이 수백 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뮈르달스요쿨 빙하에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악명 높은 화산 폭발로 알려진 카틀라(Katla) 화산이 숨어 있다. 아이슬란드 섬이 태어난 후 두 번의 화산 폭발이 있었는데 최초의 폭발 당시 아이슬란드 1/4 정도에 이르는 면적이 화산재로 뒤덮어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폭발은 1918년에 있었는데 그때도 검은 화산재가 아이슬란드 절반이나 뒤덮을 정도로 엄청났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카틀라 화산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때 여파로 거대한 빙하가 형성되고 그 안쪽에 큰 물줄기까지 생겨나면서 특이한 형태의 빙하지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한여름 빙하 속 동굴 탐험(빙하 위가 아니라 빙하 속으로)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인기 관광코스라고 한다.(* 단, 5월~9월에만 이용 가능하다고 하니 유의할 것.)


뮈르달스요쿨(Myrdalsjőkull) 빙하



이번에는 빙하지역을 벗어나 검은 화산재가 날아가 쌓였다는 검은 모래 해안가로 간다. 바이킹이란 단어에서 유래한 비크(Vik)라는 마을, 이곳은 해안가가 온통 검은 모래로 뒤덮여있다. 자세히 보면 모래가 아니라 사실은 아주 작은 조약돌이다. 아이슬란드 해안가는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볼수 있는 그런 흰모래가 없다. 화산 덕분에 아이슬란드 어디를 가든지 아주 작은 (검은 모래라고 불리는) 검은 조약돌뿐이다. 그러니 유독 검은 모래해안이라고 하는 것도 좀 거시기한 표현일수 있겠다. 


아무튼 비크 주변 해안가에서 아이슬란드 특유의 주상절리도 볼수 있다. 우리나라 변산반도에서 보던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의 아른거리는 빛이 마치 신기루를 보는 듯하다. 어쩌면 이곳을 통해 예전에 바이킹들이 배를 타고 오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그리 지은 건 아닐까?


디르홀레이(Dyrholaey) 해안

<사진 설명> 검은 모래 해안과 주상절리


비크(Viik) 해안가 교회



이번에는 드디어 아이슬란드에서 제일 규모가 큰 스카프타펠스요쿨(Skaftafellsjőkull) 빙하로 간다. 안내문을 보니 숙달된 가이드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경고문이 있다. 제멋대로 행동하다가는 크레바스나 얇은 얼음판에 빠져 생사를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조심하란 말이렸다. 아이젠까지 준비해 갔지만 헬멧과 피켈 준비를 하지 않아 혼자 빙하를 걷는 일은 일단 포기, 사실 여기는 맨발로 가더라도 아무도 말리지 않으니 가던 말던 그건 자유...^^(* 만일 빙하체험을 하고 싶다면 가능한 빙하 탐사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오면 좋을 듯.) 


빙하 가까이 가기만 해도 좋다. 걷다 보면 어느새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뮐러 행성 장면처럼 검은 빙하들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바로 빙하 저 위 어딘가에서 뮐러 행성이라고 하면서 영화 촬영 놀이를 했을 텐데, 쥘 베른도 바로 이 빙하지역 저 너머 어딘가에서 지구 속 탐험을 시작하는 출발점이라고 하며 놀았을 테고, 역시 검은 빙하가 주는 매력은 여전히 색다른 자극으로 다가온다.


도로주변은 온통 검은 화산재로 뒤덮여 있다. 그 위로 이끼가 자라 누렇게 보인다.
스카프타펠(Skaftafell) 국립공원 내 대표적인 빙하인 바트나요쿨(Vatnajokull) 빙하



한 겨울은 아니지만 4월 하순의 아이슬란드는 여전히 춥다. 연중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썰렁한 기온, 그래서인지 푸른 하늘보다 회색빛 하늘이 더 어울리는 듯하기도 하다. 어디를 가던지 벌판은 화산의 영향으로 누런 이끼만 자라고 화산재 때문에 해안가도 검고 빙하도 검다. 그뿐 아니라 식탁에 오르는 소금까지도 온통 검은색이다.

히말라야의 분홍색 소금이 가장 좋다고 인기라지만 아이슬란드의 검은 소금을 한번 맛보면 히말라야 소금과 또 다른 맛에 반하게 될지도(달콤하다. 맛이, 마치 첫사랑처럼!). 그렇게 아이슬란드의 검은색은 지금까지 흰색 위주의 색상에 익숙해 있는 내게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이 검은색은 며칠 후 생각지도 않게 ‘죽음의 색’이 아닌 ‘삶의 색깔’로 확인된다.)


그뿐 아니라 검은 산비알의 그림자까지도 검은데 여름이 되면 푸르른 이끼 덕분에 초록빛으로 화사해진다고 한다. 여름날 이곳을 찾는다면 아마 초록빛 벌판 때문에 숨 죽이며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몬드리안이 그렇게도 초록색을 싫어했던 이유를 알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몬드리안, 그는 누가 꽃다발을 선물하면 초록빛이 싫어서 화병에 꼽혀있는 초록잎들을 몽땅 흰색 물감으로 칠해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생명력 넘치는 초록의 여름, 절규하는 흰색의 겨울, 그리고 죽음 같은 검은 해안의 봄,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지금 생명이 움트고 있는 “검은색의 봄”이다.


색의 변화를 통해 느끼는 자연의 느낌들, 참으로 기이하고 황홀하다. 어쩌면 신이 우리에게 선물한 색감이 무지개색 정도일 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검은색을 숨겨놓고 가끔씩 우리의 정신을 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검은 소금을 먹으면 내 몸도 점차 검게 변할까?라는 궁금증이 더해진다.


아무튼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색감을 통해, 그야말로 색(이)다른 느낌을 즐길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거기에 신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져 한 권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1번 국도를 달리고 있으니 정말 아이슬란드 여행은 멋지다는 말 밖에는...


호프(Hof) 마을 전경
호프 마을에 있는 교회에 화사한 저녁노을빛이 물들어 무척이나 곱다. 



그래서 오늘 숙소는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기와 흡사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호프 마을로 정했다. 아이슬란드 남쪽에는 비크(Vik)와 호픈(Hofn)이라는 마을이 제일 큰 마을인데, 호픈 인근에 호프(Hof)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이 마을에 잘 생긴 족장 아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동쪽 끝 해안가에는 보프나훼르두르(Vopnafjőrdur)라는 피요르드가 있는데 그곳에 우싸비크(Ussavik)라는 마을의 족장 딸이 호프 마을 족장 아들과 서로 사랑을 했다고 한다.


9세기 말부터 11세기 초 사이에 아이슬란드는 가톨릭이 전파되면서 기존 토속신앙과 당시 신흥 종교인 가톨릭 신자 간에 많은 암투와 갈등이 전개된다. 거기에 더해 노르웨이가 지배하던 아이슬란드를 이 시기에 덴마크가 지배권을 넘겨받으면서 또 다른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이 지역은 권력투쟁에 내몰리게 되고 적지 않은 갈등과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둘이 사랑을 하게 되자 마침내 두 마을은 화해를 하게 되고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이야기에는 대부분 특별한 상징이 등장한다. 그것이 비극이든 행복한 결말이든 나름대로의 상징이 따른다는 말이다. 그래야 사랑이 더욱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로미오와 쥴리엣의 경우 죽음이라는 상황이 가장 대표적인 상징일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죽음을 동반할 수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야기에는 까마귀들이 사랑의 가교로 등장한다. 즉, 사랑을 하는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호프 마을의 왕자님과 우싸비크 마을의 공주님의 사랑은 어떤 가교를 통해 사랑을 이루었을까?


오랫만에 보는 황홀한 저녁노을, 이후로는 날씨가 안좋아 거의 저녁노을을 볼수 없었다. 



오랜만에 보여주는 멋진 저녁노을이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한다. 어쩌면 오늘 밤 화려하게 단장을 한 우싸비크의 처녀가 저녁노을을 타고 호프 마을 족장 아들을 찾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늘은 어여쁜 공주님이 호프 마을 왕자님에게 갈수 있도록 화사한 꽃마차를 마련해 주었는지 온통 붉은 주단으로 장식한 하늘길을 열어놓았다. 붉은 꽃길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은 어쩌면 두 사람의 사랑이 그렇게 뜨거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도록 하늘은 그 여운을 지우지 않고 황홀한 여명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한밤중 다들 잠든 사이 이번에는 하늘에서 오로라가 빛나기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기다란 사랑의 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문득 섬광처럼 빛을 발하더니 오로라는 어느새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 밤사이 두 연인은 아무도 몰래 흔적도 없이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는 어디로 인지 또다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잠시 동안 오로라가 빛을 발하더니 구름이 몰려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어 버린다. 그만 헤어져야만 하는 연인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오로라는 사라져 버렸다.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 아래 사진 설명 : 오로라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하려는 순간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어버리는 중. 이후 아이슬란드를 떠날 때까지 두 번 다시 오로라를 만날 수 없었다. 고약한 날씨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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