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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05. 2016

아이슬란드의 시간여행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아이슬란드  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여행길에 나서면 즐겁다. 평소에 맛보지 못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거나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거나 흥미로운 일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그저 재미있고 흥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끔은 낯선 곳으로 무조건 떠나보는 연습을 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슬란드는 최적의 장소인 듯싶다. 북유럽 신화 속 이야기를 쏙 빼닮은 경관, 비록 섬나라지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거대한 대륙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 남한 땅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아이슬란드는 전 국토의 1/10이 넘는 면적이 빙하지대이고 화산과 산악지역을 포함하면 전 국토의 9할 이상이 사람 살기에 부적합한 땅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이 오히려 아이슬란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공항에서 꼬마차 붕붕이를 인수하고 레이크야비크 시내로 향한다. 그린란드로 가기 전 잠시 머물렀던 숙소로 가니 주인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그린란드로 가면서 불필요한 짐과 간단한 장비들을 몇 가지 두고 갔는데 주인장이 고맙게도 잘 보관했다 건네준다. 아이슬란드 사람 특유의 친절함이 느껴진다.


주인장이 운영하는 커피샵에서 맛있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여행에 대한 자세한 안내도 받고 떠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신화속으로 들어간다. 아이슬란드 주변을 빙둘러 1번 국도가 나있다. 서북쪽 지역이 눈이 많아 오가기 쉽지 않을거란 조언에 따라 조금이라도 눈이 녹기를 고대하며 시계반대 방향으로 가기로 한다.




2.


레이크야비크에서 가까운 곳에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관광 지역이 있다. 간헐천과 폭포,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만 볼수 있는 팅벨리르 국립공원. 이 세 곳을 합쳐 여기서는 ‘골든 서클’이라 부른다. 그만큼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일단 그리로 간다.


아이슬란드는 험준한 산악지형과 빙하지역으로 되어 있기에 마치 미개척지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섬을 관통하는 도로나 기차가 없다. 주민들도 대부분 수도인 레이크야비크 인근에 몰려 살거나 해안가를 따라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그래서 해안가를 따라 나있는 1번 국도가 아이슬란드의 젖줄인 셈이다. ‘골든 서클’도 1번 국도에 인접해있어 오가기가 편하다.


첫 번째 방문지 게이시르. 간헐천을 뜻하는 영어 단어 가이저(Geyser)는 이곳 지명 게이시르(Geysir)에서 나왔다. 간헐천은 5분 정도 간격으로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데 높이 5-30m 정도 높이로 솟구친다. 짙은 유황냄새가 폐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낯선 냄새지만 흔하지 않은 색다른 냄새이기에 그리 불쾌하지 않다. 인근에 보이는 작은 연못 같은 호수들 색깔이 환상적이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굴포스(Gullfoss), 굴포스 역시 화산활동으로 생긴 폭포인데 아이슬란드에서 만나는 많은 폭포 중 하나. 그런데 이 폭포가 유명한 것은 원래 이 폭포 근처에 댐을 쌓으려 했는데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를 해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폭포는 그 일로 인해 오히려 유명세를 타게 되어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게 된다.




골든 서클 세 번째 코스는 팅벨리르(Thingvellir) 국립공원, 유네스코 자연유산 등재 지역이다. 팅벨리르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좌우로 길게 높이 2-30m의 벼랑이 수백 미터 이어져 있다. 그 벽 같은 양쪽 벼랑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길은 두 지각판이 벌어져 난 길이다. 길 왼편이 북미판, 오른편 낮은 지형이 유라시아판이다. 지금도 매년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고 한다.


(* 인터넷 검색을 하면, 공상과학 소설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쥘 베른(1828-1905)이 쓴 ‘지구 속 여행’이란 작품이 이곳 팅벨리르에서 지구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했고, 그의 과학적 지식이 근거가 있다‘는 등의 글들을 흔하게 본다. 아마 지각판이 갈라지는 모습이 경이롭게 보여서 그런 생각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쥘 베른이 그의 소설에서 지구 속으로 떠나는 출발점은 이곳이 아닌 아이슬란드 남쪽, 빙하지역으로 유명한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내 비트나요쿨빙하 지역이다. 그리고 바로 그 빙하지역에서 영화 인터스텔라 역시 쥘 베른을 ’오마쥬‘하며 뮐러 행성 장면을 연출했다.)


팅벨리르가 의미있는 이유는 지구과학적 의미도 있겠지만 바로 이곳에서 ‘알팅’(Alting)이라는 아이슬란드 의회제도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10세기경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들이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면서 그들의 생존을 위한 방식으로 알팅제도를 시작했다.


요즈음 말로 하자면, 아이슬란드는 서기 930년에 처음 국회(알팅)를 소집하고, 1262년 노르웨이 국왕 치하에 들어가기 전까지 군주 없이 국회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공화정치를 한 것이다. 알팅은 일 년에 한두 번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는 전 주민이 모여 그들의 지배자인 왕과 지역 수장들을 직접 뽑았으며, 각 지역의 법률을 제정하고 왕의 통치기구에 대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토론을 했다. 알팅은 바이킹 생활에 관한 모든 결정을 했고, 바이킹 사회의 유일한 입법, 사법 기관으로 존재했다. 또한 알팅은 재판소 역할도 했는데, 피고는 알팅 총회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진술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었고, 지지를 받게 되면 무죄가 될 수 있었다.


<사진 설명> 팅벨리르 지역

맨 아래 왼쪽 사진의 사람이 지나는 장소에서 알팅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좌우측 벼랑은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인데 지금도 매년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왕은 입법권을 갖지 못했고, 알팅이 유일한 입법기관이기 때문에 왕이라 할지라도 법이 정한 대로만 행동할 뿐이다. 아이슬란드에 전문적인 사제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를 주재하는 일도 알팅에서 뽑은 왕과 수장들이 도맡아 했다. 침략과 약탈 그리고 야만을 일삼은 로마제국의 그늘에 있던 당시의 서유럽보다 훨씬 민주적인 사회였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를 가진 아이슬란드는 그 후 덴마크 식민지가 되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직접 주민참여 의회제도인 알팅은 바이킹들이 거주하는 지역,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는 물론이고 그린란드와 페로제도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비슷한 제도를 지금도 시행하고 있다.)


문득 바이킹들이 팅벨리르에서 험상궂은 얼굴로 열변을 토하며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지각판이 벌어져 장대한 경관을 보여주는 이곳에서 천 년 전 사람들이 민주적인 모습으로 자유롭게 토론하며 살아가던 모습을 그리워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내가 바이킹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이제 분명해지지 않았는가? 나는 오늘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바이킹이 되고 싶단 말이다.


(* 이곳 관계자들에게 왜 이곳에서 알팅을 개최해야 했는지 질문을 했더니, 이곳이 신성한 장소라고 여겨 이곳으로 모여들었을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또한 이곳이 지역적으로 외지고 험한 지형임에도 이곳으로 올수 있었던 것은 교통수단으로서 아이슬란드에서 사육하는 말을 타고 왔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달막한 아이슬란드 토종말이 힘이 장사래요.)


<사진 설명> 벌판에 집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한두채 정도씩만 보인다. 무덤은 모두 똑같은 십자가 하나만을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치장은 없다.


오늘의 숙소, 허허벌판에 달랑 집 한 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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