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터제 호수의 예술가들
어쩌면 아터제의 그림은 “분석하려 하기보다는 입안에 달콤한 사탕을 넣었을 때처럼 감각적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은 논리적인 서사보다 '시각적 쾌락'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비엔나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마리아힐퍼 거리’(Mariahilferstrasse)는 생명력이 넘친다. 차분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이 거리에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미술관들부터 각종 눈요기 거리가 가득하다. 맛있는 카페는 물론 에밀리 플뢰게가 운영하던 패션 디자인 사무실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레오폴드 미술관을 나와 천천히 이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비엔나 서부기차역(Westbahnhof)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 거리 중간쯤에서 무심코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건물을 보는 순간 ‘Attersee'라는 사인을 보게 되었다. 잘 알려진 백화점 건물 전면이 거대한 작품으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작가의 사인인듯한 이름이 적혀있다. 장미향이 배어있는 아터제의 바람이 여기서도 불고 있다니...
크리스티안 루드비히 아터제(Christian Ludwig Attersee, 1940~ ), 그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나 1944년 오스트리아로 이주했다. 그의 가족이 슬로바키아에서 오스트리아로 왔을 때 처음에는 린츠(Linz)에 인접한 아샤흐(Aschach) 호수와 잘츠카머굿에 있는 아터제(Attersee) 호숫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요트를 타면서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1957년부터 1962년까지 그는 오스트리아 요트 국가 대표로서 국가 챔피언을 연속 3회 수상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점차 팝아트, 무대 디자이너, 음악가, 작가로 활동하면서 만능 연예인의 면모를 과시한다. 한편, 1951년부터 그는 단편 소설, 노래 가사, 만화, 무대 세트를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 병으로 청력을 대부분 잃어 오페라 가수가 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포기해야만 했다.
1957년부터 아터제는 비엔나 응용 미술 아카데미에서 무대 디자인을 공부하고, 1959년에는 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해 1963년 회화와 그래픽 디자인 학위를 취득한다.
그 후 아터제는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미지 연작("날씨 그림", "무지개 변칙" 등)과 또 다른 오브제 연작("음식 공", "음식 파란색", "질", "의수 알파벳")을 제작하는데, 이는 아터제가 유럽 팝아트 작가로서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유일한 주역임을 보여준다.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아터제는 식탁 용품, 패션 아이템, 장식 패턴에 초점을 맞춰 캔버스에 오브제 창작물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의 첫 번째 회화 시리즈인 "날씨 그림"과 "무지개 변칙"은 1963년에서 1965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그는 비엔나 액션주의 그룹의 주요 인물들과 친분을 쌓았고, 때때로 그들과 협업을 하기도 한다. 1964년에서 1966년 사이에는 에로티시즘과 일상생활 영역에서 그의 첫 번째 소위 "사물 발명"으로 유럽 팝아트계에 이름을 알린다. 여기에는 "음식 구체", "푸른 음식"같은 그의 대표적인 사물 발명이 포함되었다.
1965년에는 베를린에서 첫 전시회를 연다. 그런데 1966년부터 그의 원래 이름 루드비히(Ludwig)는 그가 살고 있던 오스트리아 아터제(Attersee) 호수에서의 시간을 암시하는 ‘Christian Ludwig Attersee’라는 예술가 이름으로 전격 개명을 한다.
1967년, 로즈마리와 크리스토프 스텐젤은 아터제가 선택한 대상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그뤼스 아터제(Grüß Attersee: 안녕 아터제)"를 제작한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여러 사진 시리즈도 제작한다. 그와 함께 당시 저명한 동료들과의 교류 역시 그의 지속적인 협업으로 이어진다.
1970년대 후반에 아터제는 "신 오스트리아 회화" 그룹의 선구자였다. 심지어 1980년에는 요트 "퓨리탄"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며 "대서양의 나날들" 연작을 그리기도 한다. 1971년부터 2년간 그는 독일 DAAD 장학금을 받고 서베를린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그는 "항해" 시리즈를 완성하고 아터제(Attersee)라는 화가는 이때부터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 후 1970년대 후반 루드비히 아터제는 '신오스트리아 회화'의 창시자라는 영예까지 얻게 된다.
1984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오스트리아 대표로 참가를 한다. 1985년에는 아터제(Attersee)가 LP 앨범 "Lieder von Wetter und Liebe"(날씨와 사랑의 노래)를 발매한다. 1986년에는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열린 비엔나 최초의 샴페인 볼을 디자인했고, 1987년에는 앙드레 헬러(André Heller)의 "루나 루나(Luna Luna)" 놀이공원을 위한 그네를 디자인한다.
그리고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비엔나 응용예술대학 교수(회화, 애니메이션, 태피스트리 분야)로서 재직한다. 그는 또한 잘츠부르크 국제 여름 미술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1996년 9월 26일, 비엔나 마리아힐퍼 거리(Mariahilfer Straße)에 문을 연 국제 섬유 체인의 백화점 건물 외관에 210제곱미터 크기의 모자이크 작품 "Wetterhändler"(날씨 거래자)를 디자인, 설치한다. 이 작품은 유럽에서 가장 큰 유리 모자이크 작품인데, 그의 작품을 모자이크 예술가 엘리오 마코리토(Elio Macoritto)가 유리 모자이크로 제작했다.
루드비히 아터제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Petrushka"를 연출하기도 했고, 발레 아마데(Amadé)를 2006년 5월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마들레니아눔(Madlenianum) 극장에서 연출하기도 한다. 또한 2006년 여름 6주 동안 70미터 높이의 거대한 탑 <비엔나 링투름>(Vienna Ringturm)을 모차르트 작품 돈 조반니(Don Giovanni) 디자인으로 뒤덮어 장식하기도 한다.
이 작업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오페라 '돈 조반니(Don Giovanni)'를 테마로 건물 전체를 래핑(wrapping)한 예술 프로젝트였으며, 링투름 예술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가로 루드비히 아티제를 선정해 작품제작을 의뢰했다는 사실이 대단한 영광이라 하겠다.
2007년에는 비엔나 ‘Kursalon’에서 열린 비엔나 남자 합창단의 제1회 가곡 공연을 위한 장비 220m2 규모의 실내 모자이크 "지구의 부(Wealth of the Earth)"가 비엔나 연방 지질 연구소에서 11월에 완성해 선보이게 된다.
2008년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가 루드비히 아터제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으로 독일 브레멘 극장에서 공연한다. 그리고 2015년에는 오스트리아 린츠 브루크너축제(Brucknerfest Linz)의 일환으로 우도 침머만(Udo Zimmermann)의 오페라 "백장미“(White Rose)에 아터제가 디자인한 무대를 설치했으며, 극장 로비에는 그가 설계한 무대장치를 설치 작품으로 전시하기도 했다.
한편, 1998년 5월 그는 오스트리아 국가 미술상을 수상했고, 2004년 여름에는 독일 에쓰링겐 예술가 길드(Esslingen Artists' Guild)로부터 루비스 코린트(Lovis Corinth)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5년 9월에는 오스트리아 과학 및 예술 부문 1등급 명예십자훈장을, 그리고 2019년 1월에는 오스트리아 공화국에 대한 공로로 대은상 명예훈장을, 2020년 9월에는 어퍼 오스트리아 국가 공로십자훈장을 받았다.
이제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아터제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저명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수많은 전시회에서 소개되었다. 그는 해외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200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박물관과 브라티슬라바 슬로바키아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아터제 회화 1980-2000" 전시가 대표적이다.
"아터제 회고전"은 2002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카셀 국립미술관 노이에 갤러리, 그리고 비인과 잘츠부르크의 쿠르체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2019년 벨베데레 21에서는 작가의 초기 작품에 헌정된 <2019 Feuerstelle Belvedere> 전시가 개최되었다. “Feuerstelle”(벽난로) 전시는 아터제 작품 세계의 모든 면모를 보여주며, 특히 그의 창작 활동 초기 20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브레겐츠의 K12 갤러리에서는 "위대한 2인조"라는 제목으로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아터제와 미하엘 폰방크의 협업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다. 두 작가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유화 파스텔과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드로잉 연작 30점을 제작한다. 각 연작은 50x70cm 크기이며, 아터제와 폰방크가 각각 절반씩을 담당했다. 폰방크가 매년 작업을 시작하면 아터제가 다음 해에 자신의 부분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시각 예술 분야에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수많은 예술가 듀오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에바와 아델(부부, 퍼포먼스 아트를 제작), 길버트와 조지(부부, 시각예술과 사진),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설치작품),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부부, 랩핑 작업), 페터 피슐리와 데이비드 바이스(사진, 영화), 제이크와 디노스 채프먼(조각, 판화) 등은 매우 잘 알려진 사례이다.
이들의 공동협업은 그 분야가 각기 다르지만 공통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아터제와 미하엘 폰방크 사이에서 이루어진 작업 역시 매우 특별하고 어쩌면 유일무이한 형태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40년생인 아터제는 1964년에 태어난 폰방크보다 한 세대 이상 나이가 많다. 폰방크에게 아터제는 거의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더구나 비인에서 아터제가 응용미술대학에서 회화와 그래픽 예술 석사 과정을 지도할 때 폰방크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그의 지도를 받은 제자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 이들의 관계는 이후 깊고 친밀한 우정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의 예술적 우정은 서로에게 풍요로움을 더해주었고, 예술에 대한 공통된 접근 방식과 작품 활동에서 공유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통해 더욱 돈독해졌다.
이 협업 프로젝트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은 폰방크가 각 공동 작품의 절반을 먼저 그려 초기 모티프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아터제가 이 모티프에 어울리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런 작업은 사실상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넘나드는 예술적 대화라고 하겠다.
아터제는 폰방크의 초기 작품에 반응하여 마치 공명판이 음색을 증폭시키듯 작품을 발전시키고, 보완하고, 확장시켜 나간다. 폰방크가 출발점을 설정하면 아터제는 인상적인 제목을 붙여 각 작품을 완성한다. 작품의 시작과 완성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흐를 수 있지만, 마치 두 작가가 거의 동시에 작업을 시작해 이중 이미지를 만들어낸 듯한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위대한 둘"에서는 잘 익은 과일 옆에 기다리는 개와 고양이가 서 있고, "부끄러워하는 알"에서는 알 속의 집이 인어와 신화 속 꽃들과 어우러져 있으며, 고양이들은 스승과 그의 아들이 창조한 원시적인 풍경을 응시한다. "하넨트"라는 작품에서는 물고기가 폰방크의 다채로운 동물 세계에 스며들어 아터제의 인물 세계로 멀리 옮겨진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유쾌하면서도 관능적이다.
아터제와 폰방크는 모두 서사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폰방크의 유화 파스텔화는 폭발적이고 거친 색채가 특징이며 때로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반면, 아터제의 아크릴화는 서정적인 가벼움과 훨씬 섬세한 감성을 지닌다.
하지만 아터제의 서사적 표면은 단지 겉모습일 뿐이지만 사실 겉모습은 기만적이다. 표면 아래에는 심연이 숨겨져 있다. 그의 서정적이고 가벼운 이미지 아래에는 심오한 실존적 질문들이 자리 잡고 있다.
고풍스러운 요소가 협업 작품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아터제는 그 균형을 잘 잡아낸다. 그는 특유의 쾌활함과 유머로 심오한 심리학적 접근에 균형을 맞춘다. 이러한 점에서 두 작품은 완벽하게 서로를 보완하며, 감정적 대비는 폰방크와 아터제의 협업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된 요소가 된다.
아터제는 시각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음악가, 작가, 오브제 제작자, 디자이너, 무대 디자이너, 영화 제작자 등 그야말로 다방면에 걸쳐 명성을 떨쳤다. 아터제는 특히 지난 50년간 유럽 구상 회화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시각 예술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럽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500회 이상의 개인전을 가지기도 했는데, 아터제는 풍부한 연상을 지닌 시인이자 환상과 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곡예사와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아테제(Christian Ludwig Attersee)의 작품은 시각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복합적인 철학을 이해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쩌면 예전 클림트를 비롯한 분리파 예술가들이 주장했던 총체적인 예술(Gesamtkunstwerk/ holistic arts)을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예술적 가치가 전통 회화에만 담겨있다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기에 모든 오브제가 지닌 예술적 가치를 찾아내고 가꾸어내는 일이 예술가의 공통된 목적이어야 하기에 말이다.
아터제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음악가이자 요리사, 항해사로도 활동했다. 따라서 그는 작품에 미각과 후각의 시각화를 시도한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음식, 꽃, 향수병 같은 소재들은 우리가 마치 맛을 느끼거나 향기가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의 전이'를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선의 율동감 역시 그가 가슴에 담고 있는 아터제 호수의 물의 정령 같은 흐름을 음악적 조예를 통해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의 이름이 주는 서사적 느낌, 바로 그 점이 ‘아터제’라는 이름을 왜 그가 그토록 자신의 이름으로 개명을 하게 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그의 이름 '아터제' 자체가 오스트리아 호수 이름이니 말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의 작품은 대부분 고정된 형태보다는 흐르는 듯한 유연한 선이 지배적이다. 물은 언제나 그에게 있어 생명의 근원이자 여성성, 그리고 에로틱한 에너지를 상징한다. 작품 속에서 물이 어떻게 생명체나 사물과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예술은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라는 아터제의 철학적 논제는 예술이 고귀하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기쁨과 탐닉을 찬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대체로 밝고, 화려하며,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어쩌면 아터제의 그림은 “분석하려 하기보다는 입안에 달콤한 사탕을 넣었을 때처럼 감각적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은 논리적인 서사보다 '시각적 쾌락'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크리스티안 루드비히 아터제는 말한다. “나에게 예술은 내가 자연스러운 길을 찾은 많은 삶의 선택 중 하나이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매일의 창조와 재창조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 짧은 인생을 정말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미술계에서 많은 활동을 통해 그 일들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Kulturzeitung 80>, 2015년 7월 27일 인터뷰 기사 “무엇이 인생을 살 가치가 있게 하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