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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17. 2016

아이슬란드의 수호신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아이슬란드  8 

   

아이슬란드의 수호신 바르두르



이른 아침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숙소를 나선다. 오늘 목적지는 서쪽을 지키는 수호신인 거인을 찾아간다. 원래 오늘의 숙소를 서북쪽 제일 윗부분에 있는 호른스티란디르(Hornstrandir) 국립공원 근처에 숙소를 잡았는데 도로 사정이 나빠 숙소까지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하는 수 없이 서북쪽 국립공원 지역을 포기하고 진로를 수정해야 한다. 4월 하순의 아이슬란드는 여전히 겨울이다.


숙소를 출발해 서쪽 해안가 방향으로 간다. 그곳은 아이슬란드의 또 다른 빙하지역인 스네펠스요쿨이라는 곳이다. 그곳은 재미난 사가(Saga, 북유럽 신화)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다른 빙하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일 년 내내 하얀 봉우리를 안고 있으니 무슨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스네펠스요쿨 빙하지역으로 가는 도중 1번 도로에 당도하기 전에 셀라세투르(Selasetur)라는 곳에 들린다. 이 곳에는 물개 박물관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이 잠겨있어 볼 수가 없다. 개관을 하지 않은 이유를 알리지도 않고 문이 잠겨있다. 아마 물개들이 몽땅 바다 저편으로 가버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1번 도로를 만나는 갈림길에서 서쪽 해안가 빙하지대로 가기 위해 54번 도로로 접어든다. 계속 가면 헬리산두르(Hellissandur)마을이 나오고 빙하가 나타난다.




서쪽 해안가에 있는 빙하지역으로 가면서 중간에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데 얼핏 보이는 도시 모습이 아이슬란드의 고급 주택가란 느낌이 든다. 이 마을에서 스네펠스요쿨 빙하가 잘 보인다. 그뿐 아니라 헬리산두르 마을 근처는 다양한 조류를 볼수 있는 섬들도 많아 여름이면 관광객들이 몰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더구나 여름철에는 각종 새들이 축제를 벌리며 온통 새들의 낙원으로 변한다고 한다. 아쉽게도 아직 제철이 아니라 갈매기 밖에 볼수가 없다.


스네펠스요쿨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해안가를 따라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아르나르스타피(Arnarstapi) 마을로 간다. 이곳은 바르두르 사가(Bardur Saga)의 배경이 된 곳이다. 거인 석상이 마치 사람처럼 스네펠스요쿨을 바라보고 서있다. 아이슬란드를 지키는 수호신이 바로 ‘거인’이라 했다. 바로 그 거인을 의인화해서 만든 것으로 보였다. 스네펠스요쿨 빙하기 근처에 있어 그런지 제법 신화의 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아르나르스타피(Arnarstapi) 마을, 마을 한쪽에 커다란 석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석상의 모티브는 반인 반신인 바르두르(Bardur)가 주인공이다. 아이슬란드 신화 중에 아르나스타피(Arnarstapi) 마을에 사는 헬나르(Hellnar)라는 거인족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신인 바르두르(Bardur)는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정착을 하는데 그가 처음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곳이 바로 아르나스타피 인근 드유팔론(Djupalon)이란 마을이다. 이곳에 도착한 바르두르는 농장을 만들고 정착해 살기 시작한다.


바르두르의 동생 토르켈(Thorkell)도 아르나스타피에 정착해 로드펠두르(Raudfeldur)와 솔비(Solvi)라는 두 아들을 낳고 살았다. 한편 바르두르의 딸 헬가(Helga)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를 지녔는데 많은 시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미인이다. 토르켈의 두 아들들과 바르두르의 딸 헬가는 함께 장난을 치며 자랐는데 어느 날 토르켈의 아들 로드펠두르가 바르두르의 딸 헬가를 실수로 바닷속으로 밀어서 빠뜨려 버린다. 다행히 헬가는 별반 큰 상처를 입지 않고 그린란드로 표류하여 안착하게 된다.


바르두르는 격노하게 되고 로드펠두르를 로드펠드스그야(Raudfeldsgja) 골짜기로 처넣어 버리고 그의 동생 솔비를 아르나스티의 동쪽 해안가 절벽에 위치한 솔바함마르(Solvahamar)에 밀어 넣어 바위로 만들어 버린다. 이 일이 있은 후 바르두르는 스네펠스요쿨(Snaefellsjokull)의 빙하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바르두르가 스네펠스요쿨의 수호신이 되어 아이슬란드 서쪽지방을 지키는 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나르스타피(Arnarstapi) 해변에 있는 거인상 바르두르 스네펠사스(Bardur Snaefellsas),  제작: 라그나 크야르탄손(Lagna Kjartansson)
바르두루는 저 멀리 보이는 스네펠스요쿨 빙하로 들어가 아이슬란드의 수호신이 된다.



2.


바이킹의 조상은 바이킹 시대가 도래하기 약 2000년 전에 유럽 북서부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게르만족이다. 한때는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 롤로와 덴마크 출신 베른하르트가 이끄는 노르만족이 프랑스 북부지방의 센 강 하류지역에 정착해 거주하기 시작한 후 그 지역 이름을 노르망디라 부르게 되었다. 바이킹의 막강함을 단적으로 볼수 있는 대목이다.


바이킹들은 빠르고 조종이 가능한 선박을 제작하여 수많은 원정을 떠났으며, 바다에서는 뛰어난 항해사들이었다.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줄곧 왕래하였고, 항해에 적합한 그들의 폭이 좁고 긴 배가 엄청난 왕래를 입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전설적인 바이킹 라이프 아이릭손(Leif Eiriksson)이 드디어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마을을 일구고 오늘날의 아이슬란드 국부가 된다. 위대한 아이슬란드의 출발을 묘사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한편, 바이킹 시대는 노르웨이 국왕 하랄 3세(Harald Hardruler)가 잉글랜드에서 벌어졌던 스탬퍼드 전투(Battle of Stamford Bridge)에서 패배하는 1066년에 이르기까지 절정에 이른다. 그 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들은 현재의 지역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정착하여 국가를 이루며 발전을 하게 된다. 그 사이 덴마크는 그린란드와 페로제도, 그리고 1944년 독립하는 아이슬란드를 지배하며 패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왕국으로 자리를 잡는다.


멀리 스네펠스요쿨 빙하를 보면서 서쪽 해안가 돌출된 반도 지역을  돌아  남쪽 방향으로 간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북유럽 국가들의 실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바이킹이라는 세 글자일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에 아이슬란드에서 불고 있는 북유럽 신화를 근간으로 하는 파간(pagan)이란 종교의식이 바로 신화 속 인물들을 추종하는 토속신앙의 형태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파간’은 바로 바이킹 선조들이 그동안 그들의 신화 속 주인공들의 지닌 위력과 막강한 힘을 믿고 의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특히 토르는 오딘과 대지의 여신인 표르킨 사이에서 태어난 천둥의 신으로 타고난 장사이다. 그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강력한 쇠망치인 묠니르는 무엇이든 때려 부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부메랑처럼 집어던지면 쇠 장갑을 끼고 있는 토르의 손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토르는 천둥과 번개, 바람과 비를 부르는 농업의 신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이들의 위대한 힘과 권위를 따르려 했던 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보호본능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 전지전능한 신이 ‘우리’를 보호해 준다면 우리의 행위와 사고 역시 전지 전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신화가 지닌 힘이자 상징성인 것이다.


<사진 설명> 토르 청동상은 1910년 아이슬란드 셀포스에서 굴포스로 가는 중간에 있는 포스(Foss in Hrunamannahreppur)라는 마을에서 진흙 속에 박혀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십자가 형태의 청동상은 북유럽 신화(사가)에 등장하는 천둥신을 묘사해 만들었다.



신화의 흔적은 북유럽 사람들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일주일을 구성하는 요일 이름들이다. 요일 이름 대부분이 바이킹 신화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화요일(Tuesday)은 오딘(보덴이라고도 함)의 아들 티르(Tyr)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며, 수요일(Wednesday)은 보덴(Woden)의 날이고, 목요일(Thursday)은 토르(Thor)의 날이며, 금요일(Friday)은 프리가(Frigga)의 날이다.


대부분의 신화가 주는 가장 큰 상징성은 어쩌면 죽음과 관련된 것일 게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현재에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숙제처럼 남아있다. 그것을 북유럽 신화는 발할라라는 신화 속 하늘나라 궁전 이야기로 풀어낸다.


북유럽의 주인공 오딘은 전투에서 용맹스럽게 싸우다 죽는 사람은 천상의 거처인 아스가르드(신들의 집)에 있는 발할라 전당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마음껏 잔치를 벌이며 사후세계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살아있을 때 죽음을 무릅쓴 힘든 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전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오딘의 위력을 과시하고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 위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진 장례의식도 필요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오딘과 토르, 로키 등으로 알려진 북구 신화를 기반으로 한 의식구조를 바탕으로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으면 최상의 쾌락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발할라로 간다는 북구인들의 의식 치례는 결코 단순히 생겨난 의례가 아닌 것이다.


바이킹 귀족이 죽으면 배를 함께 매장하거나 혹은 무덤에 배 모양으로 돌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식료품이나 무기, 장신구 등도 함께 매장하고, 심지어 노예나 시녀까지 희생물로 함께 매장하는 의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의식들은 결국 신화가 보여주는 상징성을 그대로 현재의 것으로 재현하며 집단적 사회체계의 기본 가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사회가 어떤 행위규범과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기 위해서는 어떤 신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그 사회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트롤의 교회'라는 애칭을 가진 용암기둥

<사진 설명> 이 지역은 서해안 쪽에 있는 드리트비크(Dritvik)라는 지역인데,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아이슬란드의 어업 중심지로 전성기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용암 분출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각각의 용암들은 스네펠스빙하가 생성되기 이전에 화산 폭발로 용암들이 바닷가로 흘러들어 바다와 만나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굳어졌다. 특히 ‘트롤의 교회’라는 애칭을 가진 용암은 바닷가에서 햇빛을 받으며 우뚝 서있다.



3.


신화 속 인물이 어떤 존재인가에 따라 해당 지역의 주민들 의식이 결정된다. 신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탄생과정을 보면 거의 대부분 신화적인 인물, 즉 영웅이 국가의 시조로 등장한다. 이것은 그만큼 강력한 국가가 되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일 것이다. 한 나라의 권위와 위대함은 그렇기 때문에 신화의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신화 속 영웅이 현실세계에 도래하기 위해서는 조작된 신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호와 종교와의 관계도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종교의 역사는 성스러운 이미지와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의 경험과 더불어 시작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경험한 모든 것은 각기 하나의 상징으로 체계화 되고 서서히 인간은 그 상징을 하나의 행위규범으로 따르게 된다. 인간이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인간 행위의 상징체계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상징체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 등 모든 신화가 가지는 상징성의 근본은 권선징악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데. 그 의미는 인간 행위가 언제나 신화 속 이야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권선징악적인 것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상적인 모든 행위와 관련된 사항들까지, 예를 들어 인간의 사랑과 우정 등 시시콜콜한 모든 면을 규율하는 기준 역시 신화에서처럼 권선징악적인 면이 강조되어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신화의 상징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바로 우리 삶의 또 다른 행위규범이기도한 것이다.


<사진 설명> 드리트비크(Dritvik) 지역의 용암들, 멀리 스네펠스빙하가 보이고 화산 폭발 후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인 벌판에 이끼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사진 설명> 서북쪽 방향으로 가면서 만난 풍경들, 민속박물관도 보이고 바닷가에 용암이 흘러들어 애틋한 부부바위도 만들었다. 사진속 교회는 헬나르(Hellnar)지역에 세운 교회인데, 1880년도에 지었다. 목조로 지은 교회라 아이슬란드의 험한 날씨를 견디지 못해 몇 차례를 수리를 했다. 지금은 교회를 기념관으로만 사용하고 지역주민들의 예배를 위해서 근처에 새로운 교회를 지어 이용한다고 한다.



서해안 돌출된 반도에 위치한 스네펠스요쿨 빙하 지역


<사진 설명> 서해안가를 따라 스네펠스요쿨 빙하 지역을 드라이브하면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발코니에서 온천욕을 할수 있도록 통나무 욕조에 온천물을 연결해 놓은 멋진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다.  모처럼 저녁노을과 오로라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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