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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13. 2016

신들의 폭포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아이슬란드  7


신들의 폭포 고다포스(Godafoss)



1.


아이슬란드에는 동서남북 각 지역을 지키는 수호신이 있다고 전해 온다. 동쪽에는 용, 남쪽에는 황소, 북쪽에는 독수리, 그리고 서쪽에는 거인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 수호신들은 어쩌면 아이슬란드가 몇 백 년간 덴마크 식민지로 있었던 쓰라린 경험을 대변하는 증거처럼 보인다. 외부의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게 해달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아무튼 어제는 아이슬란드를 지키는 수호신 덕분이었는지 다행히 눈과 얼음 나라를 벗어나 숙소가 있는 후사빅까지 올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엄청나게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아직도 내게는 지울수 없는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보이는 겨울의 흔적들, 특히 먼산을 덮고 있는 흰 눈이 멋있다기보다 두려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쉽게 백색공포증이 가시지를 않는다.


그래서 아이슬란드의 수호신들을 모두 찾아보려 했던 처음 계획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그냥 편하게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게으름을 피우게 한다. 후사빅에서 잠시 낚시를 즐기거나 고래 관광을 하는 게 어떨까라고 스스로 유혹을 해보지만 “그까짓 고래가 뭐시 중헌디!”라는 생각에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후사빅 도시 전경

<사진 설명> 후사직의 진주로 불리는 후사빅 교회와 항구 전경 



늦은 아침을 먹고 거의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숙소를 나선다. 다행히 오늘 날씨는 맑음이다. 먼저 어제 들리지 못한 고다포스(Godafoss)로 간다. 이곳은 신들의 폭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으로 아이슬란드 사가(북유럽 신화)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다른 명승지들은 보아도 그만 안 보아도 그만이지만 아이슬란드 사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고다 폭포라는 말이다.


고다 폭포는 후사빅에서 지동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후사빅에서 아퀴레이리 방향으로 가다가 1번 도로를 만나는 곳에서 반대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바로 고다 폭포에 다다른다. 새벽녘에 왔다면 멋진 일출 장면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변은 온통 하얗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두려움을 대신하는 듯하다.


영하의 날씨 덕분인지 폭포는 제법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문득 언제인가 이 폭포 언저리 어디에선가 토르가이르(Þorgeir Ljósvetningagoði)가 그렇게 신봉하던 오딘의 동상을 폭포 속으로 내던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오딘의 동상을 폭포 속으로 내던진다는 건 어쩌면 새로운 ‘오딘’을 고대하겠다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신들의 폭포 고다포스(Godafoss)



2.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독일이나 영국의 영향 하에 기독교화가 이루어졌다. 스웨덴은 독일 교구의 영향이 큰 작용을 했고, 노르웨이는 토속신앙을 신봉하는 파간(pagan) 신도들을 노르웨이의  왕 울라프 트뤼그바손(Olaf Tryggvason, 995-1000)과 올라프 하랄드손(Olaaf Haraldson, 1015-1030)이 강제로 기독교도로 개종을 시킨다. 한편 아일랜드는 수도사들과 독일 작센 공국 출신 선교사가 개종을 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편, 아이슬란드의 경우에는 처음 기독교가 전파된 것이 9세기와 10세기경에 영국에서 아이슬란드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그 후 기독교 세력이 점차 증가하게 되자 아이슬란드의 사가(북유럽 신화)를 추종하는 파간 신자들과 기독교 신자 간에 갈등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 Pagan이란 단어를 직역하면 ‘이교도’로 번역이 되는데 이교도란 사이비 종교 같은 어감을 주기 때문에 여기서는 번역하지 않고 발음 나는 대로 ‘파간’이라고 표기하도록 한다. 파간은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 오딘과 그의 부인 프리그, 그리고 그의 아들 천둥신인 토르를 추종하는 일단의 신도들의 예배의식을 말한다.) 


결국 아이슬란드는 서기 1000년에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된다. 그 과정은 종교문제이면서도 당시 북유럽 게르만인들의 공동체 의식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그 후 아이슬란드에서 기독교 개종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고 누구나 자유로이 기존의 토속 신앙인 파간을 믿거나 기독교를 받아들이거나 상관이 없게 되었다.




기독교 개종이 허용될 때까지 그동안 토속신앙 신도들과 신흥종교인 기독교 신자들 간의 반목과 갈등은 양 집단 간에 파벌싸움으로 까지 번지게 되었고 각각의 집단은 심지어 알팅 의장(Law Speaker)을 따로 뽑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알팅(Alting)에 관한 것은 필자가 쓴 ‘그대가 아름다운 이유 20’을 참조할 것) 


기독교 개종을 바라는 집단은 시다 출신의 할루(Hallur at Síða)를 알팅 의장으로, 그리고 파간 신도들은 토르가이르(Þorgeir Ljósvetningagoði)를 알팅 의장으로 선출한다. 하나의 집단에 두 명의 수장이 존재하는 꼴이 되어버려 아이슬란드가 종교 때문에 두 개의 국가로 갈라서기 일보직전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때 시다 출신의 할루가 모든 권한을 토르가이르에게 일임하고 그의 결정에 무조건 따를 것을 맹세한다. 하나의 아이 슬란드를 위한 탁월한 선택이자 양보였던 것이다.


권한을 위임받은 토르가이르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심을 하던 끝에 결정을 내린다. 결국 그는 기독교를 인정하기로 하고 다음날 알팅 회의에서 이를 공표한다. 그의 결정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알팅 회의에서 정식으로 결정사항이 통과된다. 단 기존의 아이슬란드에 전해 오던 토속신앙인 파간 의식을 그대로 허용하는 조건을 전제로 기독교를 허용한 것이다.


출처: 레이크야비크 사가박물관 전시물(토르가이르가 밤새 고민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파간 신도들은 당시 ‘영아 살해’와 ‘말고기 식용’ 등을 허용하는 예배 의식을 행하고 있었는데 이를 그대로 계속해도 좋다고 허용한 것이다. 당시 가톨릭 교회에서 말고기는 금지하는 음식이었지만 아이슬란드의 전통적인 예배 의식에서 신에게 바치는 중요한 희생물이었기에 허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영아살해 역시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남아선호 사상에 따라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의식(?)이기도 했다. 따라서 아이슬란드 기독교 허용 과정에서 이러한 파간 주의자들의 예배 의식들을 허용한 것은 사실상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토르가이르 자신은 파간을 대표하는 신부였기 때문에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고민도 남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파간 신부로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파간의 대표적인 성물인 오딘의 동상을 버려야만 했을 것이다. 


<사진 설명>  토르가이르가 오딘의 동상을 들고 고다포스로 향하는 그림이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인 아퀴레이리에 있는 교회 창문 스탠인드글라스에 그려져 있다. 



알팅 회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토르가이르는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폭포로 간다. 그리고는 그동안 가장 소중하게 지녀온 오딘의 동상을 장엄한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다. 그 폭포가 바로 신들의 폭포로 알려진 고다 폭포(Godafoss)이다.(* 아이슬란드 말로 Goda는 영어의 God이고 Foss는 폭포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일단 파간과 기독교 간의 갈등이 해결되었다. 아이슬란드 주민들은 그의 결정에 따랐고, 종교로 인한 갈등 상황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슬란드의 평화적인 종교 개종 과정은 몇 가지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노르웨이의 경우 기독교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민들 간의 싸움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반면 아이슬란드는 거의 주민들 간의 싸움이 발생하지 않았다. 평화적인 기독교로의 개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는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한 모범적인 나라임에 틀림없다. 알팅이라는 탁월한 의회민주주의 제도 탓인지, 아님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뛰어난 민주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결정 과정과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결정 과정 등은 가히 탁월하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역시 바이킹의 후예들 답다고 해야 할까?




아이슬란드 주민들이 정치적 해결로 종교문제를 멋지게 해결한 것은 지극히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다. 그러나 반면에 아이슬란드는 16세기 초반 가톨릭에서 개신교인 루터교로 또다시 개종을 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개신교로 개종을 했기에 그 상처의 골이 꽤나 깊었을 것이다. 


언제나 지배국가는 피지배국가에게 제일 먼저 자신들의 종교와 일치하도록 개종을 강요한다. 아이슬란드 뿐 아니라 그린란드도 그랬고 페로제도도 그랬고 심지어 핀란드도 스웨덴이 개신교로 개종을 하도록 강요를 했다. 그래야 지배국가와 피지배국가 간에 이념적인 갈등을 예방할수 있기 때문에 지배국가와 피지배국가가 동일한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우선시 되는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서기 1000년에 토속신앙인 파간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할 때는 정치적으로 ‘선택이 아닌 공존’을 택해 희생을 치루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1550년 가톨릭에서 개신교인 루터교로 개종을 하는 과정에서는 수 많은 희생을 강요하면서 개종이 이루어져 바이킹의 후예로서의 자존심은 더 이상 기대할수 없게 되었다.

 

<사진 설명> 1550년 11월 7일 아라손 주교가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처형을 당한다. 아이슬란드가 또다시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을 하는 과정애서 마지막 가톨릭 신자인 그의 가족을 처형한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그후 완전한 루터교 국가로 거듭나 마을마다 교회가 들어선다. 



3.


토르가이르가 오딘을 추종하는 파간(Pagan)의 수장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기독교로 개종을 한다고 하더라도 오딘의 의미만은 절대 버릴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토르가이르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 최근에 오딘과 그의 부인 프리그, 그리고 그의 아들 천둥신 토르를 다시 공식적으로 따르기 위해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일단의 파간 신도들이 파간 사원을 신축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예전 아이슬란드의 파간 예배를 다시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파간 사원은 현재 북유럽 전 지역을 통틀어 1070년도에 세워진 스웨덴 웁살라에 있는 목조 사원 하나뿐이다. 이 사원은 1000년이 지나 낡은 채로 남아 있어 새로운 사원이 절실한 형편이다. 이외에 독일 하노버 박물관에 에다(Edda)를 소재로 조각한 부조들이 진열되어 사가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아이슬란드가 사가(Saga)의 원조 국가로서 오랫동안 잊힌 파간(Pagan) 의식을 복원하고 보존하기 위해 사원을 짓겠다고 나선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 설명> 독일 하노버 박물관에 있는 F. W. Engelhardrk가 제작한 오딘 석상(1867)과 아이슬란드 국기를 합성한 것인데 , 원작품에는 우측 손에 긴 창이 들려있다.


<사진 설명> 새로운 파간 사원을 레이크야비크 인근 언덕에 지을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자세한 사원 도면을 2015년 6월에 공표했다. 건축물 형태는 날렵한 바이킹 선박처럼 보이는 게 단순하면서도 사가의 의미를 담고 있는 디자인이 눈에 띄게 아름답다. 

   


신화의 종주국 역할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어쩌면 아이슬란드가 그동안 덴마크의 식민지로 지내면서 손상된 이미지 등을 복원하는데 가장 최우선적인 과제일지도 모른다. 나라의 운명과 기원을 보여주는 신화의 위력은 어쩌면 국가의 능력과 권위와도 정비례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를 잃어버린 민족은 국가를 잃어버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어느 나라가 과연 에다의 종주국이 될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 자료출처:

살아있는 역사 교회사, 쿠어트 디트리히 슈미트(공저), 신앙과 지성사 발행, 2010, 622쪽 

Wikipedia(영어판)/ Godafoss, Þorgeir Ljósvetningagoði

사가(Saga) 박물관 홈페이지

독일 하노버 박물관 홈페이지/ 독일의 신화(Edda) 

http://www.itsnicethat.com/articles/iceland-pagan-temple 



<사진 설명> 고다포스를 출발해 5분여 정도 달리면 토르가이르가 살았던 호수가 마을  엘요사바튼(Ljósavatn)이란 곳이 나온다. 토르가이르는 940년 경에 태어나 985년부터 1001년까지 알팅회의를 주재하는 의장직을 수행했다. 



<사진 설명> 아이슬란드 북쪽 해안가 지방은 산악지형이 많이 발달해 있어서 다른 곳에 비해 기온이 다소 낮은 편이다. 현재 기온은 영하 5도 정도로 쾌적하다. 날씨도 쾌청! 


오늘은 원래 서쪽 해안가 숙소에서 묵으려 했으나 진입로가 아직 정비가 안되어 접근이 힘들어 서쪽 해안가 못 간 곳에 숙소를 정했다. 시간이 충분하기에 천천히 쉬엄쉬엄 간다.  


<사진 설명> 아이슬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아퀴레이리, 이곳에 있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계속해 서쪽으로 간다.


<사진 설명> 북쪽 지방의 도로 상태는 양호, 도로 중간중간에 쉼터로 사용할 수 있는 의자 등이 설치되어 있다. 주택이 서너 채 모여있는 마을에는 거의 대부분 교회가 세워져 있다. 



<사진 설명> 오늘의 목적지인 목장에 도착, 아이슬란드 토종 말 사육장, 아이슬란드 토종말들이 일반 말보다 다소 작은 체구인데 힘이 장사다. 숙소용 호텔의 모든 장식들이 말 디자인인데 나름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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