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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Oct 06. 2016

아버지의 보물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페로제도  6


1. 귀향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페로제도는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말한 그대로 환상 속의 꿈나라처럼 보였다. 곧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을 들으며 떨리는 마음을 추슬러 보지만 가슴은 계속 콩닥거리며 뛰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린다. 아버지 고향에 도착했다.


잠시 공항에서 필요한 수속을 마치고 렌터카 사무실을 들려 자동차 열쇠를 받고 공항을 빠져나온다. 페로의 바람이 폐 속 깊숙이 들어와 인사를 한다. 왜 이제야 왔느냐는 것처럼 모래바람이 섞여 얼굴에 부딪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한다. 처음 맛보는 고향의 냄새가 마냥 기분을 들뜨게 한다.


아버지는 페로에 가면 거인들이 사는 마을을 꼭 들러보라고 했다. 그 마을에는 폭포도 있고 절벽 위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어 언제고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어 아주 멋진 곳이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그곳에서 할머니가 보내주신 사진 속 어린양들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날이 조금 흐려 눈이 올듯했지만 눈이 오더라도 아버지가 말한 그곳으로 먼저 가보고 싶었다.


<사진 설명> 과사달루(Gasadalur) 폭포와 마을 풍경, 멀리 미케네스 섬이 마주 보인다.



폭포가 멋진 과사달루 마을은 아버지가 말한 그대로 그림 같았다. 눈발이 간간히 날리기는 했지만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을을 산책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저기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기다리다가 마중을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집들은 지붕에 잡초들이 덮여 있었고 그 잡초들 사이에는 추운데도 불구하고 작은 꽃망울 같은 것들도 보였다.


한참을 과사달루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버지가 지었다는 통나무집으로 향했다. 차는 매끄럽게 도로를 달린다. 공항에서부터 터널을 두 개나 지나야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지하 150미터 이상을 파 들어가 뚫은 터널은 대부분의 섬들을 연결하고 있어 편리했다. 지나는 곳마다 흰 눈이 덮여있어 때아닌 초겨울 풍경을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올 때 그곳은 반팔 옷을 입어야 했는데 지금은 어느새 긴팔 블라우스를 입고 게다가 스웨터까지 입고 있을 정도로 서늘하다. 그래도 상쾌한 바람이 좋아 계속 창문을 열어놓고 운전을 한다. 드디어 아버지가 말한 통나무 집에 당도했다. 오래된 통나무집은 다행히 아버지 친척 형제분이 관리를 하고 있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나는 아버지가 말한 보물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집 어딘가에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아버지 손때가 묻은 보물들을 숨겨놓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말한 그대로였다. 지금 묵고 있는 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이 100년 전 어릴 적에 함께 지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훗날 아버지가 어른이 되면 이 집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했기에 아버지는 이 집을 아주 맘에 들어했다.


'아버지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통나무 집



집을 지을 때 아버지는 할아버지 몰래 기둥 한편에 속을 파내고 작은 상자처럼 만들어 손잡이가 있는 나무 뚜껑을 만들어 덮어놓았다. 얼핏 보면 눈치를 채지 못하게 만들어 놓아 처음에는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한 대로 화덕 바로 옆 기둥을 따라가다 나오는 첫 번째 기둥 아래쪽에 그 보물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추억과 페로제도의 지난 시간들이 상자 속에 갇혀있다가 한꺼번에 모두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기둥 속 작은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들은 조약돌이었다. 마치 방금 주워다 놓은 것들처럼 윤기가 흐르고 반짝이고 있었다. 어떤 것은 검은색을 띠기도 했고, 불그스레한 색깔에 줄무늬가 선명한 것도 있었다. 어떤 것은 마치 하트 모양의 무늬를 가진 것도 있었고 무지개색을 발하고 있는 돌도 있었다. 문득 신기한 모양의 돌들이 동화 속 난쟁이들처럼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 조약돌들은 아버지가 어릴 적 배를 타고 할아버지를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워온 돌들이었다. 그때 아직 어렸던 아버지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 돌들을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조약돌은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라 세상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돌이기도 했고, 마치 마술상자처럼 주문을 외우면 그 돌에서 마법사가 튀어나와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더구나 할아버지와 함께 주워온 돌들이었기에 아버지에게는 신성한 기운을 주는 할아버지의 선물이기도 했다. 조약돌에서 따스한 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져 온다.


밖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지만 나무 조각들이 활활 타고 있는 난로 덕분에 집안은 온기가 돌아 따스했다. 내일은 아버지가 살던 고향마을로 가야겠다. 어쩌면 할머니 동생들이 아직 그곳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으니 반가운 소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설명> 작가 제니퍼 헨케가 정착해 살고 있는 푸글라피요르드(Fuglafjord) 마을 풍경


<사진 설명> 키르크보르(Kirkbour) 마을과 미드보가르(Midvogar) 마을 풍경, 1772년 이곳에 세운 페로 교구 교회를 덴마크가 페로제도 지배를 강화하면서 모두 파괴한다.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들이 700년 전에 건립해 놓은 역사적 유물들이 한순간에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 뼈대만 남은 흔적들을 하나씩 재 건립해 예전의 모습들을 일부 복원해 역사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사진 설명> 페로제도 북쪽에 페로에서 가장 높은 해발 882m의 슬래트타라트인듀르(Slættaratindur) 산이 있다. 이 산 허리를 끼고돌아 그요브(Gjogv)로 간다. 가는 도중에 피요르드 지역에 있는 마을을 지난다. 이 마을은 예전 초창기 바이킹들이 거주하던 역사적 유적지인데, 당시 유명했던 바이킹 트론듀르(Trondur i Gøta) 전설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의 최대 업적은 노르웨이 왕이 페로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할 때 당시 페로의 전설적인 영웅 시그문듀르 브레스티손(Sigmundur Brestisson)과 함께 마을의 진입로를 차단하고 전투를 벌여 승리를 이루었다고 한다.


<사진 설명> 삭순(Saksun)에 있는 교회, 이곳은 산속 오솔길을 12Km를 달려가야 만날 수 있다. 봄이면 근처 들판은 야생화들로 꽃밭을 이룬다.  



2. 그리운 아들


나의 아버지 한스 제이콥슨(Hans Jacobsen)은 페로제도에서 태어났다. 페로제도는 모두 18개의 작은 바위섬으로 이루어졌는데 북대서양 한가운데 있다. 아버지는 나이 14살에 할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했다. 그리고는 15살에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다. 100년 전 당시 페로는 기근과 흑사병으로 아주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아버지는 나이 20살이 되어서야 고향을 방문한다. 아버지가 고향을 찾은 건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아버지는 선원으로 일을 했다. 원양어선을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던 아버지는 페로제도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듯했다. 아버지는 내게 자주 페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페로제도의 산과 들, 그리고 어린양들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러던 아버지는 끝내 페로를 두 번다시 찾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집에서 눈을 감았다.


<사진 설명> 왼쪽 사진 : 헤스투르(Hestur) 섬의 일몰, ‘Hestur’는 ‘말’을 뜻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섬은 여름에 음악축제장으로 변해 불야성을 이룬다. 오른쪽 사진 : 콜투르(Koltur) 섬, 헤스투르 섬 바로 곁에 나란히 있는데 콜투르는 망아지를 뜻한다고 한다. 이 섬에는 단지 한 가구가 거주해 옥수수 농사를 짓는다.

 

<사진 설명> 노르드라달루(Norðradalur)의 눈보라 치는 어느 날


<사진 설명> 노르드라달루(Norðradalur)에 있는 바이킹들의 흔적, 제단과 돌무지


<사진 설명> 크비빅(Kvivik) 마을 전경, 9세기초 바이킹들이 정착한 곳이다.



3. 사랑한다는 것


19세기 말을 전후해 페로제도를 비롯해 아이슬란드와 스코틀랜드 등 대서양 인근의 나라들은 모두 흑사병으로 고생을 했다.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다. 그뿐 아니라 풍토병이 도는 바람에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입에 풀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기근으로 또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연일 어린아이들이 쓰러졌고 어른들도 숨을 거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흑사병으로 죽어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어린 아버지를 데리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셨다. 아버지 나이 10살 때부터 배를 타기 시작했다고 했으니 나이는 어리지만 눈썰미는 제법 뱃사람 티를 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를 질병과 기근에 노출시킬 수 없었는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같은 마을 사람에게 딸려 보낸다.


이미 아버지를 제외하고 세명의 아버지의 형과 누나가 흑사병으로 숨을 거두었으니 할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를 곁에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미국 이민을 떠나야 하는 아버지도 마음고생이 꽤나 심했을 것이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번다시 페로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라고 단단히 당부를 하신다.


그러다 5년이 지나 나이 20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페로제도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사실 아버지는 방문이 아니라 귀향을 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로는 여전히 뒤숭숭했고 먹을 것조차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할아버지는 며칠을 함께 지내다 끝내 미국으로 아버지를 다시 돌려보내고 미국에서 살아갈 것을 명령하다시피 한다.


할아버지가 살던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해 연말 흑사병으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숨을 거두고 만다. 슬프게도 할아버지마저 숨을 거두고 할머니 혼자 살아남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도 할아버지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 다행히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마렌(Maren)도 살아남아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아버지가 페로를 다녀가던 해에 마렌의 가족들은 모두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한 동네 살던 마렌은 할머니와 한 식구처럼 지낸다. 그러다 아버지가 페로제도 고향을 다니러 갔을 때 두 사람은 운명처럼 만난다.


산도이 섬(Sandoy) 전경

<사진 설명> 베스트만나(Vestmanna) 풍경들

<사진 설명> 클락스빅(Klaksvik) 풍경들

<사진 설명> 쿠노이(Kunoy) 섬의 풍경들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마렌은 어쩌면 아버지를 이미 한 식구처럼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느 연인들처럼 마렌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고는 했다. 흑사병이 서서히 마무리가 되었는지 더 이상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지 않게 되자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마렌은 은밀히 아버지의 귀향을 부추기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렌도 이름 모를 병에 걸려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만다. 마렌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은 거의 7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사실 아버지의 귀향을 마렌 이상으로 기다린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말은 안 해도 매일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많은 편지들을 아들에게 보내면서도 아버지 귀향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다.


한편,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실 때 가끔씩 사진을 넣어 보내주셨다. 그중에서도 어린양이 엄마 양과 함께 있는 사진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귀엽기 짝이 없었다. 내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전혀 보기 힘든 사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페로의 멋진 저녁노을 풍경 사진도 잊히지 않았고 잡초로 지붕을 얹은 집들 모습도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살던 샌프란시스코와는 너무나 달랐다. 페로의 경치는 그야말로 가장 자연 상태 그대로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문득 페로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고향을 방문한 지 아마 80년 정도는 족히 지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고향을 방문하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페로에 대한 궁금증과 그리움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정말 그곳에서 아버지 친척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아름다운 페로를 그리며 아버지 고향을 찾아간다는 사실에 출발 며칠 전부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과연 아버지가 내게 들려준 페로의 멋진 풍경이며 어린양들이 정말 그렇게 벌판을 돌아다니고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 이 글은 제니퍼 헨케(Jennifer Henke)가 쓴 The Missing Son‘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필자가 임의로 재구성해 쓴 글이다. 원 작품과 내용이 일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읽기 바란다.




○ 작가에 대하여


제니퍼 헨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외부를 나가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어느 날 문득 아버지 고향이 생각나 1997년 처음 페로를 방문한다. 페로를 다녀온 후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것을 그만두고 페로에 들어와 정착한다. 그리고 2008년 드디어 아버지 고향에 대해 쓴 The Missing Son‘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다.


헨케는 이 책에서 그녀의 아버지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와 고향에 대한 이야기, 특히 페로제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고향 사람들의 꾸밈없는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특히 아버지가 7년간 마렌과 1917년부터 1924년까지 주고받은 편지들과 100년 전 촬영한 페로제도의 모습과 친척들 모습들을 보여준다.


‘The Missing Son’이라는 책은 우리들에게 제일 먼저 페로의 아름다운 풍경과 페로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 그리고 페로의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비록 페로제도의 이야기지만 마치 우리가 고향을 찾아가는 것처럼 아련한 추억 속으로, 그림 같은 페로제도의 풍경 속으로,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시간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우리에게 ‘고향’이라는 말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과 같은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더욱 정감이 가는 게 아닐까?


제니퍼 헨케는 현재 아버지가 태어나 자란 페로제도의 푸글라피요르드(Fuglafjord)라는 지역의 관광청에서 일을 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소설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설명> 페로제도의 수도 토르샤븐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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