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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Oct 07. 2016

아름다운 도반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페로제도  7


페로제도를 떠나며



비행기가 하늘로 올라가자마자 구름은 페로제도를 가리기 시작한다.

페로는 언제나 그렇게 베일에 싸여 있는 나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인구 5만이 채 안되는 나라

하지만 자기 나라말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노벨문학상 후보를 거부하기까지 한 나라

자존심과 자긍심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생활화 하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행복한 생활을 위해 꾸밈없이 신화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 사람들

그들은 진정한 바이킹의 후예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페로제도는 사계절 멋진 관광지임에 틀림없겠지만 흰눈으로 세상이 덮여있는 겨울에 여행하는게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계절이 바뀌면 또다시 눈이 내릴테지만 그들의 순수한 마음은 흰눈보다 더욱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언제나 숨어있는 보석같은 나라 페로제도.

이제 페로를 떠나 또다른 ‘꽃마름’으로 가자.


(* 꽃마름은 행복을 만들어 주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도반 /  이화은


눈 내린 산길 혼자 걷다 보니

앞서 간 짐승의 발자국도 반가워

그 발자국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 발자국 받아 안으려 어젯밤

이 산속엔 저 혼자 눈이 내리고

외롭게 걸어간 길

화선지에 핀 붓꽃만 같습니다

까닭 없이 마음 울컥해

그 꽃 발자국 꺾어가고 싶습니다

짐승 발자국 몇 떨기

가슴에 품는다고 내가

사람이 아니 되겠습니까

내 갈 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내 갈 데까지 데려다주고

그 발자국 흔적조차 없습니다

모든 것 주기만 하고

내 곁을 소리 없이 떠나가버린

어떤 사랑 같아

나 오늘 이 산속에 주저앉아

숲처럼 소리 죽여 울고 싶습니다




짐승 발자국 몇 떨기가 꼭 화선지에 핀 붓꽃만 같다는 시인의 생각이 마음에 와 닿는다.

가끔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섬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른 날 섬의 모습은 청명하거나 눈이 부시다.

그런데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섬은 칙칙한 몰골로 음흉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모두 우리의 마음이 그리는 그림들이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낼 일이 아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

때로는 기분 좋은 날도, 때로는 힘들고 슬픈 날도 있다.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 어떤 때는 그냥 살아지도록 내버려두기도 하면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면서 그런 게 사는 거라고 자위할 때도 있다

그래도 섬은 언제나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니 말이다.




섬은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이

우리는 그걸 보지 못하고 섬은 그냥 언제나 같은 섬인 줄로만 알고 있다.

그걸 보지 못하고, 우리는 행운의 여신을 탓하기만 한다.

모든 사람이 쉽게 보지 못하지만 분명 섬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 섬은 내게 귀한 선물이 된다.

아니 나의 도반이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름다운 도반임에 틀림없다.


(* 도반: 불자들이 사용하는 용어인데, 일반적으로 ‘같은 길을 가는 사람’, ‘같은 생각, 같은 스승을 따르는 사람’ 등의 뜻을 갖는다.) 




※ 사진속 섬은 페로제도 중앙에 위치한 에이스투로이(Eysturoy) 섬 남쪽 끝 'Nes Municipality'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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