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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Oct 02. 2016

코파코난의 저주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페로제도  5


1. 13일 밤의 무도회


페로제도의 북쪽에는 마치 긴 칼자루처럼 생긴 칼소이(Kalsoy) 섬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온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코파코난’(Kopakonan)에 대한 이야기이다. 코파코난은 물개 여인을 뜻한다. 이곳 사람들은 물개들이 오래전 바다로 나가 죽음을 맞은 인간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물개들은 매달 13일 밤에 육지로 나가 그들이 입고 있는 물개가죽을 벗고 다시 인간이 되어 춤을 추고 즐겁게 논다고 생각한다.


칼소이(Kalsoy) 섬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 미클라달루(Mikladalur)에 젊은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 역시 이 물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청년은 물개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13일 밤을 기다려 한밤중에 해안가로 나가 물개들이 해안가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밤이 깊어지자 여러 마리의 물개들이 나타나 해안가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물개들은 해안가에 당도하자마자 그들이 입고 있던 물개가죽을 벗어 조심스레 바위 위에 차곡차곡 정돈을 해 놓는다.


물개가죽을 벗은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젊은 사내는 그들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물개 여인들의 춤이 시작되었다. 젊은이는 그들이 벗어놓은 물개가죽 중에 하나를 훔쳐 숨긴다. 밤새도록 춤과 노래로 즐거운 시간을 만끽한 물개 여인들은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동이 터오자 또다시 벗어놓은 물개가죽을 주워 입고 해안가를 떠나 바다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중 한 아가씨가 갑자기 당황해 한다.


칼소이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클락스빅(Klaksvik)에서 배를 타야만 한다.  
칼소이 섬에 도착후 저 멀리 보이는 곳 끝까지 간다. 그곳에 코파코난 동상이 있는 미클라달루 마을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물개가죽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 그 젊은이를 발견하고 그가 숨겨놓은 물개가죽을 돌려줄 것을 간청한다. 하지만 그 청년은 돌려주지 않는다. 그 아가씨는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 농장으로 가 돌아가 그 사내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새 여인은 젊은이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고 여러 해를 함께 지내며 아이들도 여럿 낳는다. 그런데도 그 여인이 여전히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기에 사내는 그녀의 물개가죽을 상자 안에 넣고 자물쇠를 채우고 열지 못하게 했다. 열쇠는 언제나 사내의 허리춤에 몰래 감춰놓고 있었기에 그녀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동료들과 함께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집에다가 빨래를 하려고 벗어놓은 옷에 열쇠가 들어있는 것을 기억해 낸 사내는 동료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사내는 이미 코파코난이 빨래를 하다 열쇠를 발견하고 아이들만 남겨두고 집을 떠나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그녀는 바다로 돌아간 뒤였다. 사내는 그녀가 두 번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떠나면서 불씨도 꺼버리고 칼이란 칼은 모두 숨겨놓고 가버렸기에 그녀를 해코지 할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칼소이 섬 전경, 섬은 화산폭발로 생성된 바위섬이다. 맨 왼쪽 부근에서 부터 맨 우측 끝까지 터널을 뚫어 연결해 놓았다. 칼소이 섬에는 모두 14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녀가 바다로 돌아가려고 해안가에 도착해 물개가죽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들자 그곳에는 수컷 물개 한 마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물개는 그녀가 사내에게 물개가죽을 도난당하고 농장으로 가 살고 있던 내내 바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나 물개 여인과 사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성장해 가끔 바닷가로 자신들의 어머니가 혹시라도 다시 육지로 나오지 않을까 찾아 나선다. 하지만 수평선 너머에서 멀리 물개가 보이기는 했지만 해안가로는 절대 다가오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물개가 바로 아이들 엄마였을 거라고 믿었다.


코파코난 동상은 2014년 8월1일 이곳에 세웠다.



2. 저주의 시작


그러던 어느 날 사내는 그녀를 잊지 못해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 있는 동굴로 물개 사냥을 떠난다. 밤이 되자 코파코난이 사내의 꿈속에 나타나 사냥을 하더라도 커다란 수컷 물개만은 잡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 물개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동굴에는 그녀의 두 어린 자식 물개들도 함께 살고 있었기에 이 어린 물개들도 해치지 않도록 특별히 당부를 하면서 어린 물개들의 물개가죽 색깔과 무늬까지도 알려주고 돌아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사내는 다음날 날이 밝자 그만 아무런 주의도 하지 않고 다른 동료 어부들과 함께 닥치는 대로 모두 다 잡아버린다. 사냥이 끝나자 다음날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와 잡은 물개들을 나누어 갖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사내는 그가 잡은 커다란 수컷 물개와 어린 물개 두 마리를 받아갔고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이 되자 사내는 커다란 물개의 머리와 어린 물개의 몸통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사내의 부인이었던 코파코난이 무서운 몰골로 그 사내 앞에 나타나 냄새를 맡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저주를 퍼붓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커다란 콧구멍을 가진 물개 머리와 물개 몸통과 발은 바로 그녀의 아이들 물개의 것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한다. 칼소이 섬의 미클라달루 사내들에게 내린 ‘코파코난의 복수’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미클라달루 마을 전경



그 후 미클라달루 마을의 남자들은 바다에 나가 물에 빠져 죽기 일수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산에 올랐다가 굴러 떨어져 죽기도 했다고 한다. 더욱 무서운 일은, 코파코난이 칼소이섬의 사내들이 칼소이 섬을 손을 잡고 빙 둘러설 수 있을 만큼 죽어야 저주가 끝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저주가 아닐 수 없다, 과연 그 후 칼소이 섬의 사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후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에도 미클라달루의 남자들은 바다에서 자주 익사를 하거나 산 위에서 굴러 죽음을 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도 희생된 사람들이 칼소이섬의 둘레만큼 안돼서 그런 게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칼소이 섬은 죽음의 공포가 가시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곳을 여행하게 될 사람이 있다면 코파코난의 동상을 만나걸랑 그녀의 물개가족들 명복이라도 빌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페로제도에서 2007년 발행한 코파코난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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