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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28. 2016

노벨문학상 후보의 당찬 거부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페로제도  4  


꿈을 찾아주는 요정 타리라



1.


북대서양 한가운데에 제주도보다 작은 섬나라 페로제도(Faroe Islands)가 있다.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섬에 요정 타리라(Tarira)가 살고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 동화작가, 화가이기도 하며 작곡가인 윌리암 하이네센(William Heinesen, 1900-1991)을 기리기 위해 토르샤븐 시는 그에게 ‘영예로운 시민’상을 수여하기도 했는데, 그가 쓴 소설 ‘잃어버린 음악가들’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꿈을 찾아 나선 요정 타리라를 소재로 동상을 만들어 헌정한 것이다. 타리라의 동상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어쩌면 타리라가 내게도 잃어버린 꿈을 찾아다 주지 않을까라고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된다.


1900년 1월 15일 윌리암 하이네센이 태어난다. 그는 아버지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지붕에 얹혀있는 잡초들 사이로 요정들이 노닐며 바다로 들어가고 나오는 신비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마치 팅커벨이 인어공주를 만나 사랑을 속삭이듯 상상의 세계를 목격한 것이다. 하이네센은 이때부터 그가 본 이야기들을 소설로 담아내기 시작한다.


잡초들이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지붕 위에서 마치 태초에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놀고 있는 요정들의 모습은 분명 단순히 지나가다 들른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네센은 요정과 인사를 나누고 바다에 갔다 온 이야기며 어느 집 지붕 위 잡초 사이를 누비며 다니던 이야기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을 한다. 그 이야기들은 1950년에 ‘The Lost Musicians’라는 소설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요정 타리라의 고향 토르샤븐



소설은 그가 살던 토르샤븐의 오래된 주택들 사이로 요정이 누군가를 찾아 나서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하이네센은 그가 살던 어릴 적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토르샤븐을 배경으로 풀어나간다. 그래서 골목골목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를 좇아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사라진 욕망과 꿈을 찾아다니는 요정 타리라는 우리를 어느새 바다내음 짙은 그의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그가 본 신비한 환상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은 어쩌면 요정 타리라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타리라가 지금 진짜 타리라를 대신해 토르샤븐 도시공원 한편에 조각 작품으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의 첨탑에서 울려 퍼지던 종소리와 거리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하프 연주 소리까지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요정 타리라, 옛 가옥들이 즐비한 골목들을 누비며 잃어버린 음악가들을 찾아 나선 그녀는 어쩌면 삭막해진 인간세상에서 그런 감미롭고 풍료롭게만 느껴지던 음악이 점차 무심하게 잊혀 가는 게 안타까워 우리에게 그걸 일깨워 주려고 나선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네센은 어릴 적 학교에서 덴마크어로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모국어는 페로어였기에 그가 덴마크어로 쓴 모든 작품들은 후에 페로어로 번역해 출간한다. 그가 덴마크어로 작품을 쓰면서 언제나 걱정했던 것은 그의 감성과 느낌을 페로어로 표현하지 않고 덴마크어로 쓸 경우 감정 전달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는 분명 적절한 표현은 자신의 피가 담긴 페로어로 해야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 게 분명했다. 언어란 무엇인지 이를 깨닫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전율이 느껴진다.


요정 타리라 동상



2.


하이네센은 1960년에 덴마크 문학상 ‘홀베르그 메달’(Holberg Medal)을 받는다. 또한 1965년에는 북유럽문학위원회로부터 1964년에 발행한 ‘Det gode håb’(The Good Hope)란 작품으로 수상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하이네센은 17세기 덴마크 고어를 어렵사리 발굴해 사용함으로써 수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그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알아준다. 북유럽에서 하이네센의 덴마크어 실력은 그만큼 정평이 나있다.


그러던 중 1981년도에 하이네센은 드디어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른다. 그가 노벨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자 그는 스웨덴 노벨 아카데미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내 작품에서) 페로어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실제 철저히 억제했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페로어는 커다란 문학적 업적을 이뤄내고 있다. 그래서 노벨상은 페로어로 작품을 쓴 사람에게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만일 이 상을 나에게 준다면 덴마크어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주는 것이 된다. 결론적으로 그럴 경우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페로어에 대해 타격을 가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덴마크 문학 비평가상과 덴마크 아카데미로부터 ‘Karen Blixen’ 메달, 그리고 1987년도에는 작은 노벨상으로 불리는 스웨덴 아카데미 북유럽문학상을 수상한 하이네센. 단순히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국 페로의 언어를 빛내고 페로의 시민들이 자국의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마음씨를 보여준 것이다.


단지 개인의 영예와 명예만을 생각하기보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시시콜콜한 말을 실천으로 보여준 사람, 그래서 그는 ’ 거부할 줄 아는 사람‘의 힘이 무엇인지를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3.


얼마 전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49)는 프랑스 최고훈장 ‘레지옹 도뇌르’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 이 훈장은 프랑스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이자 내무장관인 무함마드 빈나예프에게도 수여한 적이 있는데 마르소는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훈장을 거절한 것이다. 그녀는 트위터에 “사우디 왕세자에게 레지옹 도뇌르가 수여됐다. 그의 나라에서는 지난해 154명이 처형됐다”며 “이것이 내가 레지옹 도뇌르를 거부한 이유”라고 밝하기도 했다.


13살에 영화 <라 붐>으로 데뷔한 소피 마르소, 그녀는 언제나 청순한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다. 마냥 어리고 귀엽기만 한 줄 알았는데 어느새 중년의 여인이 되었다. 나이만 들은 줄 알았더니 제법 곧은 심성을 가졌다. ‘거부할 줄 아는 사람’, 그녀의 청순함은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얼마 전 모 방송뉴스 프로그램에서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까지 대한민국 최고훈장을 받는 등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어쭙잖게 크고 작은 상을 마구잡이식으로 남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도대체 우리나라 상의 권위는 차치하고, 상을 받은 사람들이나 상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 자존심은 있는 건지 묻기조차 황당하다.


‘거부할 줄 아는 사람’과 ‘거부할 줄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단지 상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차이가 아니다. 한 사람의 ‘거부’가 보여주는 의미가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나라의 문화적 성숙함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상은 당연히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그로 인해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모욕을 당할 뿐 아니라 나아가 그 사회의 문화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우리에게 여전히 ‘거부할 줄 아는 사람’이 절실히 아쉬운 건 그 때문이다.



4.


작은 섬들이 모여 강한 나라를 이룬 바이킹의 후예들, 지금은 비록 덴마크 식민지로 수모를 당하고 있지만 문화적 자존감과 자부심은 그 어떤 나라보다 강한 민족, 페로제도의 모습이다. 더구나 그곳에는 꿈을 찾아주는 요정 타리라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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