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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27. 2016

새야새야 파랑새야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페로제도  3


'놀소야 폴의 귀향'



놀소야 폴(Nolsoyar Pall, 1766-1808), 그는 페로의 국민적 영웅이다. 놀소야 폴(Nolsoyar Pall)로 알려진 그의 페로어 이름은 ‘놀쇠 폴’(Nolsøe Poul)이다. 1766년 10월 11일 페로의 수도 토르샤븐에서 마주 보이는 작은 섬 놀소이(Nolsoy)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이름을 놀소이(Nolsoy) 섬의 옛 이름 놀소야(Nolsoyar)라고 짓는다. 그는 이 이름 때문인지 그의 행적은 그야말로 길지 않은 인생을 페로를 위해 숙명처럼 일을 하며 지낸다. 그는 현재 덴마크 식민지로 지내야 하는 페로인들에게 마치 희망의 등불처럼 온몸을 불사르고 이정표를 제시한 인물로 평가를 받고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놀소야 폴은 32살이 되던 해인 1798년 놀소이 섬에서 어여쁜 아가씨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러나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는 병으로 죽고 만다. 다음 해인 1801년 동네의 부유한 농부의 딸과 재혼을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클라크빅의 보르도이(Borðoy) 섬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사위에게 8천 평 정도의 땅을 주고 경작하게 한다. 놀소야는 새로운 농법을 고안해 기대 이상의 수확을 거둔다. 그러자 덴마크 왕실은 그에게 은메달을 수여하기까지 한다.


놀소야 폴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덴마크가 독점하고 있는 국제무역 장벽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이 순간 그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자신의 일생을 바칠 각오를 다진다. 그는 우선 배를 만드는 조선업에 눈을 돌린다. 또한 숙련된 선원이 필요하기에 배를 다룰 줄 하는 교육도 준비를 한다. 이런 일들은 다행히 페로가 북대서양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튼튼한 배를 만들고 선원을 조련하는 일 등이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토르샤븐 앞에 있는 놀소이 섬 
놀소이 섬의 이모저모



그러나 이런 작업은 그가 단순히 무역업 만을 위해 배를 만들고 선원을 조련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를 통해 조국 페로의 국위선양과 덴마크로부터의 독립을 얻기 위한 힘을 비축하려는 노력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페로의 주민들 역시 그의 뜻을 눈치채고 그를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주민들은 그가 준비한 배의 셜계도에 숨어있는 그의 독립 의지를 마음속에 도면처럼 새기고 선박 제조 작업을 진행해 나간다.


그런 그가 드디어 페로에서 바이킹 시대 이후 처음으로 페로 무역선을 자체 제작해 타고 영국과 덴마크 등을 오가며 무역과 외교를 담당한다. 그러던 중 1804년 그는 형제들과 영국의 난파선 한 척을 구입한다. 선박은 낚시 용도가 아니라 이 배를 수리하여 페로의 상품을 수출하고 대외무역을 촉진하려는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다. 그때까지 대외무역은 덴마크가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페로주민들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놀소야 폴의 이런 행동은 페로 주민들로부터 내심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게 했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던 그가 당연히 조국의 앞날을 위해 자주적인 대외무역을 추진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죽기 한 해 전인 1807년 덴마크와 영국 사이에 전쟁이 난다. 그로 인해 그동안 영국을 오가며 조국 페로의 식량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곡물을 실어 나르던 그의 배가 1808년 영국 해군의 공격으로 침몰하고 만다. 그는 배를 잃자 또다시 다른 배를 만들어 대외무역을 하려고 했지만 1808년 11월 17일 하늘의 부름인지 그가 탄 배와 함께 실종되고 만다. 


페로에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기에 페로에서 최초로 상선을 이끌고 대서양을 횡단하며 기근이 들어 고생하는 조국 페로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마다한 놀소야 폴, 배가 침몰하면서 그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페로 주민들은 오늘도 그의 귀향을 애타게 고대하고 있다.



<사진 설명> 왼쪽 : 놀소이 섬에 있는 놀소야 폴 기념비,  오른쪽 : 바구르(Vagur)에 있는 놀소야 폴 기념비 


<사진 설명> 첫 번째 사진: 페로의 독립을 상징하는 아이콘 물떼새. 나라새로 지정하고 있다. 

                   두 번째 사진: 놀소야 폴이 그려진 페로제도의 화폐

                   세 번째 사진: 2016년 4월 26일 발행한 놀소야 폴 탄생 250주년 기념우표


<사진 설명> 왼쪽 사진: 페로의 시인 듀르후쓰(Janus Djurhuus)가 쓴 놀소야 폴 추모시 ‘놀소야 폴의 귀향’(Heimferð Nólsoyar Páls)을 소재로 2004년에 발행한 기념우표

오른쪽 사진: 페로의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놀소야 폴이 그려진 카카(Kaka)라는 쵸코렛 과자


페로 독립의 상징인 물떼새와 함께 있는 놀소야 폴 동상(Torshavn), 한스 파울리 올슨(Hans Pauli Olsen) 제작



페로의 시인 듀르후쓰(Djurhuus), 그는 놀소야 폴의 고향 친구이기도 한데 놀소야 폴을 추모하는 노래를 만든다. 가사는 페로에 전해오는 민요 ‘새의 발라드’를 기본 모티브로 물떼새와 까마귀라는 두 새를 중심으로 ‘놀소야 폴의 귀향’이란 제목으로 만들었다.


가사 중에 ‘물떼새’는 페로의 독립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니 당연히 폴을 의미하고, ‘까마귀’는 페로를 지배하고 있는 덴마크를 비유한 것이다. 이 노래는 페로의 여름축제에서 록밴드의 반주에 맞춰 애국가처럼 제일 먼저 부르는 노래이다.(아래 링크 참조)


Bimbs Nólsoyar Páll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9S3r88RTY54


이와 함께 페로인들은 ‘새의 발라드’라는 노래도 즐겨 부른다. 이 노래는 1620년 덴마크 지배에 항거하기 위해 만들어 부른 페로의 민요이다.



○ 참고사이트

http://wikipedia.qwika.com/de2en/Poul_Poulsen_Nols%C3%B8e

http://www.smyrilline.com/Files/Billeder/00_General/Pdf/Must-do-in-Faroes-EN-jan14-lowres.pdf

http://www.wikiwand.com/sv/N%C3%B3lsoyar_P%C3%A1ll

http://alfahir.hu/delfinzabalok_ellen_eselyunk_nincs_a_feroer_szigetek_sportosabb_mint_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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