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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0. 2016

이누이트 신화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3


이누이트 신화와 세드나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Nuuk) , 그린란드 전체 인구 5만 6천 여명 중에서 1만 2천 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곳이다. 눈은 쉬지 않고 퍼붓지만 금방 청소차가 지나간 듯 거리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정막이 흐른다. 아마 인구가 적으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은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대중교통도 버스 몇 대가 간간히 시내를 다닐 뿐이니 시끄러울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숙소에서 나와 시내 한복판을 가로질러 누크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거리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가끔 자동차 몇 대가 천천히 달릴 뿐 도로는 한산하기만 하다. 거리에서 몇 사람을 만나 박물관 가는 길을 물어보는데 모두들 교회를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때서야 오늘이 일요일임을 깨달았다. 


다행히 박물관은 월요일에 문을 닫고 쉬지만 다른 날은 생각보다 늦은 시각에 문을 연다고 써놓았다. 10시쯤 박물관에 도착했지만 오후 1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표시를 해 놓았다. 아마 찾는 사람이 드물어 그리 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스 에게드 동상과 그 곁에서 놀고 있는 꼬마 아가씨


박물관 근처에는 공동묘지가 딸린 교회와 작은 언덕이 보였다. 언덕 위에는 초기 그린란드 총독이자 선교사였던 한스 에게드(Hans Egede) 동상이 보였다. 동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 보니 예쁘게 생긴 꼬마 아가씨가 동상 곁애 앉아서 웃으며 나를 반긴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잠시 꼬마 아가씨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문득 언덕 아래 바닷가에 동상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꼬마 아가씨에게 혹시 세드나 동상이냐고 물으니 세드나라는 말을 알아들은 건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린란드를 상징하는 세드나는 그렇게 기대하지 않은 순간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섬 그린란드, 이곳에는 이누이트들이 살고 있다. 날고기를 먹는 ‘에스키모’들이 아니라 ‘인간’이라 불러주기를 바라는 ‘이누이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해안가에 집을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작은 촌락을 이루며 살았다. 이들은 바다에서, 그리고 바다와 함께 모든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언제부터인지 이들에게 바다는 마치 신의 세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누이트들은 신이 원하는 대로 순종하며 복을 빌며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들이 신으로 떠받드는 바다에는 세드나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세드나 신화, 즉 이누이트 신화는 태어나게 된다.


이우이트신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세드나(Sedna)가 존재한다. 세드나 이야기는 그린란드 뿐 아니라 알래스카를 비롯한 이누이트족이 사는 곳 대부분 비슷한 형태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세드나 신화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바다와 개, 그리고 인어라는 공통의 요소가 자리한다. 기본적인 구성요소를 바탕으로 세드나 신화, 즉 이누이트 신화가 몇 가지 이야기로 갈래 치기를 하고 있다. 


박물관 인근에 있는 세드나 동상


○ 첫 번째 세드나 이야기


얼음이 떠다니는 적막한 북극의 한 해안가에 아버지와 딸이 살았다. 딸의 이름은 세드나(Sedna).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자존감이 강해 주변 마을의 청년들은 외딴 해안가까지 찾아와 세드나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세드나는 괜찮은 청년들의 청혼을 번번이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새가 세드나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곳으로 내가 데려다줄게. 그곳에 가면 따뜻한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기름진 고기로 너의 배를 채울 수 있을 거야.” 세드나는 바다새를 따라 길고 긴 여행을 떠난다. 며칠의 여행 끝에 세드나는 바다새가 약속한 천상 낙원에 도착한다. 그러나 뒤늦게 그녀는 자신이 속았음을 알게 된다. 


세드나는 구멍이 뚫려 찬바람이 들어오는 생선 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바다코끼리의 까칠한 가죽으로 된 잠자리에서 잠을 자야 했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바다새들은 세드나 주위에 몰려들어 서로 남편 노릇을 하려 한다. 세드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버지는 딸을 찾아 헤매다 드디어 세드나가 잡혀 있는 곳에 도착한다. 세드나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놀라 말도 못 하고 황급히 세드나를 데리고 그곳을 도망친다. 세드나를 데리고 탈출하면서 아버지는 그를 쫓아오는 바다새를 죽여버린다. 


세드나와 결혼한 알바트로스


나중에 다른 바다새가 와 보니 세드나와 함께 있던 바다새는 죽어 있고, 세드나는 도망가고 없었다. 바다새는 거대한 폭풍과 비바람을 일으킨다. 거친 비바람 때문에 배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하는수 없이 아버지는 궁여지책으로 세드나를 바다에 바치기로 하고, 세드나를 배 밖으로 던진다. 하지만 세드나는 결사적으로 배를 붙잡고 버틴다.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첫 번째 손가락을 자른다. 손가락은 바다로 떠내려가면서 고래가 되고, 손톱은 고래수염으로 바뀌었다. 세드나가 그래도 손을 놓지 않자, 아버지는 두 번째 손가락을 자른다. 바다로 떠내려간 손가락이 이번에는 물범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손목을 자르니 바다코끼리로 변했다. 세드나의 희생으로 폭풍우가 잠들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세드나를 다시 배 위로 끌어올려 고향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세드나는 아버지의 지나친 현실적 판단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세드나는 아버지가 잠든 사이 개를 데려오는 음모를 꾸민다. 개는 아버지의 팔다리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놀라 깬 아버지는 이 모든 상황이 한스러워 자신과 딸 그리고 개를 저주한다. 그러자 갑자기 땅이 열리면서 세드나를 삼켜버린다. 


인어가 된 세드나



○ 두 번째 세드나 이야기


세드나(Sedna)는 원래 인간의 딸로 아버지와 둘이서 살았는데 아버지가 아무리 권유를 해도 인간과 결혼을 거부하고 결국 개와 결혼을 한다. 이후 세드나는 아버지와 헤어져 작은 섬에 살면서 많은 자식을 낳았는데, 그중 일부는 개가 되고 일부는 인간이 되었다.


그녀의 남편인 개는 매일 바다를 건너와 아내의 아버지 집에 가 고기를 받아가지고 돌아가 처자를 양육하였는데, 그 일에 싫증난 부친은 개에게 고기 대신 돌을 주어 보낸다. 개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익사하여 바닷속에 빠져버린다. 따라서 세드나는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아이들을 세상에 내보낸다.


개로 태어난 자식들은 바다를 건너가 유럽인의 선조가 되고, 인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육지로 흩어져 이누이트족의 선조가 된다. 그 후 세드나는 다시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는데 그러던 중 그곳에 늠름한 청년의 모습을 한 폭풍의 새 알바트로스(까마귀)가 나타나 그녀를 유혹해 데리고 가 아내로 삼는다.


부친은 딸의 행방을 찾아 돌아다니다 그녀를 발견하자 부친은 그녀를 배에 태워 데리고 가려한다. 도중에 그것을 알아챈 새가 폭풍을 일으켜 바다를 거칠게 하자 아버지는 두려움에 떨며 딸을 제물로 바닷속으로 던져버린다. 딸이 필사적으로 배 끝을 잡자 그 손가락을 도끼로 잘라버린다. 손가락은 바다에 떨어져 바다표범과 해마, 그리고 고래로 변했다. 세드나는 이때부터 바닷속에서 살면서 이들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살고 있는 바닷속 궁전 아디번(Adivun) 입구에는 처음 남편인 큰 개가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일루리사트에 있는 썰매개 사육장에서


○ 세 번째 세드나 이야기


세드나는 바다의 여신으로 외눈박이의 무서운 여신이다. 악령들이 사는 아디번(Adivun)을 다스린다. 


거인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세드나는 기회만 있으면 고기를 움켜쥐고 마구 먹는 다루기 힘든 아이였다. 어느 날 세드나는 잠자는 부모의 팔다리를 먹기 시작했다. 그녀의 부모는 깜짝 놀라 일어나 세드나를 붙잡아 작은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가 그녀를 던져버린다. 


세드나는 뱃전을 붙잡고 놓지 않았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세드나를 배에서 떼어내기 위해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낸다. 잘려나간 손가락들은 바닷물에 닿자 고래, 물개, 물고기들로 변했다. 손가락이 다 잘린 세드나는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지금도 바다의 모든 생물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해저에 가라앉은 세드나는 원한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다. 인어가 된 세드나의 다리는 물고기처럼 변했고 그녀는 해저에서 바다의 여신이 되었다. 그녀는 돌과 고래의 뼈로 바닷속에 집을 만들었다. 그녀와 함께 바다로 가라앉은 그녀의 남편인 개는 그녀가 사는 집의 문지기가 되었다. 


세드나의 아버지는 그 후, 파도에 휩쓸려 역시 바다에 가라앉았는데 세드나는 아버지를 자신의 집에서 반갑게 맞아들인다. 일설에는 세드나가 아버지를 집에 가두고 두 번 다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도 하는데, 아버지가 스스로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겨 세드나에게 사죄했기 때문에 사이좋게 지냈다고도 한다.


세드나를 소재로 한 그림들



○ 에필로그


세드나 신화는 이누이트 부족에 따라 약간씩 주인공과 이야기 구조가 달라진다. 거대한 천둥새(알바트로스)가 세드나를 유혹하는 버전도 있고, 세드나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져 그대로 지하세계의 신이 된 버전, 세드나를 인어로 묘사한 버전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세드나의 손가락이 가지각색의 해양 포유류를 잉태하고, 결국 세드나가 죽은 자들이 사는 지하세계 아디번(Adivun)으로 내려가 그곳을 통치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아디번은 이누이트들이 사는 지상과 또 다른 세계로 인식되는데, 동부 시베리아의 이누이트들은 가끔씩 발견되는 맘모스가 아디번에서 튀어나온 쥐들이 추위에 언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주택가에 세워진 세드나를 소재로한 동상



누크 시내 중심가와 박물관 근처


박물관 근처 언덕과 언덕 위에서 바라본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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