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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2. 2016

그린란드의 긴머리 사나이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4


긴 머리 사나이


누크 시내에는 한국 어디서나 볼수 있는 허름한 재건축 예정 아파트처럼 생긴 건물들을 쉽게 볼수 있다. 이 아파트에 이누이트들이 모여 산다. 덴마크인들은 아파트가 아니라 대부분 단독주택에 거주한다.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차이는 엄청나다. 바로 인간성 보호라는 측면에서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단독주택과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그것이 지배국가와 피지배국가인 식민지 국민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덴마크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이누이트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환경 개선을 위해 과감히 환경미화를 실시한다. 모든 무채색의 건물들을 유채색으로, 그것도 과감하게 온통 원색으로 채색을 한다. 

그리고 우리네 아파트에서도 흔히 볼수 있듯이 비어있는 건물 벽면들을 그림들로 채운다. 이 모든 일은 덴마크 정부가 식민지 환경개선을 위한 사업으로 실시한 것이다. 누크 시를 아름답게 가꾸려는 시도에서 아파트에 원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총감독으로 호주의 예술가 귀도 반 헬텐(Guido van Helten)을 누크로 불러들여 작업을 맡긴다. 


귀도 반 헬텐이 그린란드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아파트 벽면에 그려 넣을 대상을 찾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누크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1906년 7월에 윌리암 탈 비쳐(William Thalbitzer)라는 사람이 촬영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찾아낸다.


누크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인 사진


사진 속에 담긴 것은 이누이트들이었다. 두 사람의 이누이트가 다정하게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인데, 왼쪽이 누숙칼리바크(Nusukkalivaq), 오른쪽이 풍그요르테크(Pungjorteq)라는 이름의 사내였다. 그들은 모두 긴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중 누숙칼리바크는 머리를 묶기 위해 진주로 만든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긴 머리는 아직 기독교로 개종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사진을 촬영하기 전인 1905년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풍그요르테크는 그린란드 동쪽 지역에 있는 타시일라크지역의 쿠움미우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부인 에르니케(Ernikaeq)와 딸 우야르네크(Ujarneq)와 긴 아파트처럼 생긴 집에서 24명이나 되는 여러 가족들이 작은 촌락을 이루고 함께 살았다. 이누이트들은 어업활동을 위해 대부분 대가족제도를 유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을 한다. 풍그요르테크는 사냥꾼이었는데 카약과 장총, 썰매개와 텐트 등 사냥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또한 사진 속 왼편의 누숙칼리바크는 풍그요르테크가 살던 곳에서 좀 더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부인 잇투만기우크(Ittumanngiiuk)와 두 명의 딸과 함께 그 역시 긴 아파트처럼 생긴 주택에서 23명의 다른 여러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긴 머리 사나이’를 그린 아파트들 


곰과 함께 있는 의인화한 세드나 그림


그런데 누숙크칼리바크는 부인 잇투만기우크와 1908년 11월 1일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는 결혼을 하면서 결국 기독교로 개종을 한다. 결혼식을 마친 후 그는 긴 머리를 자르고 진주가 박힌 머리띠를 벗어야만 했다. 그러나 풍그요르테크는 여전히 긴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귀도 반 헬텐, 그는 누크 시내의 아파트 벽면에 그가 찾은 사진 속 인물인 긴 머리를 한 이누이트를 그렸다. 그리고 이누이트들의 신화 속 신데렐라인 세드나도 그려 넣었다. 아파트 벽면에 이누이트의 신화와 역사가 모두 담기게 된 것이다. 


누크 시내의 아파트에 그려진 긴 머리를 한 풍그요르테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분명 예전 일제강점기 때 단발령을 거부한 긴 머리의 소유자가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문득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 벽면에 긴 머리를 한 선조들의 모습을 그려 넣고 싶어 졌다.


덴마크인 거주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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