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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2. 2016

누크의 코리안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5



누크의 코리안



그린란드에 도착한 날 누크 공항에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나를 닮은(?) 택시운전수는 이누이트였다. 그는 더듬더듬 영어로 나를 환영한다고 했다. 그러다 내가 한국서 왔다고 인사를 하니 눈이 빛난다. 


조수석에 앉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자기 부인이 한국인이라 했고 코펜하겐에서 살다 이곳으로 와 일을 하다 자기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묵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며칠 후 그는 부인과 함께 나타났다.


한국의 여느 부인들처럼 생긴 그녀는 불혹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코펜하겐 대학에 다니는 장성한 아들도 하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두 살 때 사회복지 기관을 통해 덴마크로 입양을 왔는데 입양 후 그녀의 삶은 그런대로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 나이 12살 되던 해 양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녀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야 했단다. 


오른쪽 건물은 누크 시내에서 가장 큰 호텔, 이 건물이 위치한 주변이 누크 시내 중심가, 호텔 맞은편에 주요 문화시설과 관공서 등이 몰려 있고 그 앞 공터에 이누이트들이 차려 놓은 상설 벼룩시장도 있다.


남자의 직업은 택시운전수다. 그런데 사실 이 남자의 진짜 직업은 어부이다. 이누이트 출신의 그린란드 남자들은 대부분 물개나 고래 잡는 어부일을 어려서부터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겨울이 길다 보니 고래나 물개잡이가 쉽지 않아 택시를 몰기 시작했다고 한다. 택시운전이라고 해봐야 주민들 숫자도 얼마 안 되고 시내가 작다 보니 손님이 있을 턱이 없어 수입은 별로라고 한다. 


그린란드 도시들 대부분은 지형적으로 암석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나마도 빙하로 뒤덮여 있어 도로가 거의 없다. 더욱이 지역 간 도로가 이어져있는 경우는 전무하다. 대부분 도시 내에서만 자동차가 운행된다. 지역 간 이동을 하려면 항공기나 배, 그리고 썰매를 이용해야만 가능하다. 이런 사정이니 자동차, 특히 택시를 직업으로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게다. 물론 누크는 그린란드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제법 버스 노선도 3개나 있어 수도로서의 체면을 지니고 있으니 그나마 낫다고 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린란드의 전체 인구가 56,700명 정도, 그중 16,000명 정도가 수도인 누크에 산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주택이 생각보다 적지 않은 듯 보인다. 주택단지도 여기저기 호사스러운 집들이 꽤나 많이 눈에 띈다. 알고 보니 그 집들 대부분이 덴마크인들 소유라고 한다. 그린란드 사람들은 덴마크 정부가 강제로 집단 이주를 시켜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도 남편과 함께 아파트에서 산다. 그 아파트는 덴마크 정부가 1953년도에 이누이트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지은 것이라 했다. 


누크 시의 아파트들


그녀는 사무직으로 일을 하는데 주 업무는 이누이트들의 생계지원과 보호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을 맡아한다고 했다. 남편을 만나게 된 것도 그 일을 하면서 지금 남편과 상담을 하다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그린란드에 오기 전 코펜하겐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말처럼 기억하기 싫은 그런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양부모가 교통사고로 숨진 이후 어쩔수 없이 그녀는 코펜하겐의 보육시설에서 자라야 했는데 그때 그녀는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의 욕망과 기억, 그녀의 관심과 기억들은 언제나 그녀에게 걸림돌처럼 장애로만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녀가 그리도 외롭다고 느끼던 시절 그녀가 지닌 가장 큰 고민은 그녀의 ‘정체성’이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어린 그녀를 ‘코펜하겐의 코리안’이 아니라 ‘코펜하겐의 이누이트’로 대했다. 그녀가 자란 보육시설은 그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린란드의 어린 이누이트들이었다. 그녀를 닮은 그린란드 출신의 이누이트들과 함께 있다 보니 어느새 그녀 역시 자연스레 그린란드 출신의 이누이트처럼 취급을 받게 되었다.


공공기관 건물들


언듯 보면 한국인과 이누이트는 외모가 거의 비슷하다. 우리 동네 철수나 영희, 순이와 영식이 같은 그런 느낌이다. 전혀 낯설지 않은 외모가 그래서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이 반갑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길 가다 마주친 그들은 가끔씩 내게 무언가 물어본다. 그린란드 말을 모르니 그저 웃으며 영어로 한국인임을 말하면 그제사 내가 이누이트가 아님을 눈치채고 웃는다. 참 정겨운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학교를 다니던 사춘기 시절 코펜하겐의 이누이트 대접은 그녀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누이트들과 학교를 다니면서 그녀는 어느덧 그린란드가 그녀의 고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린란드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 한국보다 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고 그녀에게 그린란드는 반드시 가야만 하는 그런 마음의 고향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그녀는 결국 그린란드로 들어와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코펜하겐의 이누이트’,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녀가 겪은 시간들은 참 외로웠겠다. 다행히 지금은 그린란드로 들어와 ‘코펜하겐의 이누이트’가 아니라 ‘누크의 코리안’으로 지내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피부색이 다르다는 걸 의식하는 순간 대개는 이방인이 된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더욱이 외국에 입양까지 되었던 사람이 그런 생각, 그런 느낌을 지니고 산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게다. 



문득 세드나 신화 중 한 대목이 떠오른다. “세드나는 아버지와 헤어져 작은 섬에 살면서 많은 자식을 낳았는데, 그중 일부는 개가 되고 일부는 인간이 되었다. 개의 자식들은 바다를 건너가 유럽인의 선조가 되고, 인간의 아이들은 육지로 흩어져서 에스키모의 선조가 된다.” 결국 그린란드 인들의 입장에서는 유럽인들이 개의 자손...! 이 이야기는 어쩌면 그녀 같은 처지의 또 다른 세드나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페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우리를 엿듣고 있는 까마귀 한 마리. 혹시 저 까마귀가 세드나를 꼬셔서 데려갔던 알바트로스가 아닐까? 세드나같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코펜하겐의 이누이트’, 그녀는 이제 누가 뭐래도 ‘코펜하겐의 코리안’도, ‘코펜하겐의 이누이트’도 아닌 ‘누크의 코리안’이다. 


'알바트로스'와 시내에 있는 까페, 입구 지붕에 쌓인 눈이 작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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