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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Dec 24. 2016

크리스마스 선물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네덜란드  7


킨더다이크 이야기


네덜란드 최대의 풍차마을 킨더다이크(Kinderdijk), 이곳은 네덜란드의 서남쪽 항구도시 로테르담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지명은 영어로 <Children dik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어느 날 폭풍우가 휘몰아치며 홍수가 나는 바람에 마을이 온통 물에 잠기고 아이를 실은 요람이 물에 떠내려 간다. 어떤 사내가 제방을 살피러 나갔다가 떠내려 오는 요람을 발견하고 구해준다. 그 후 이곳의 이름은 킨더다이크, 즉 Kinder(어린아이)와 dijk(제방)란 말이 합쳐져 킨더다이크(어린아이의 제방)가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에 전설로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이야기인지 그 이야기를 찾아가 보자.


여기 소개하는 이야기는 "The Cat and the Cradle"이라는 책에 실린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고쳐 쓴 것이다.(* Griffis, William Elliot. The Cat and the Cradle in Dutch Fairy Tales For Young Folks. New York: Thomas Y. Crowell Co., 1918.)




아주 먼 옛날, 조상들이 아직 날 음식을 먹으며 동굴에서 살던 시절 선조들은 개와 함께 지냈다. 험한 자연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개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사람들은 개와 더 친하게 지냈을 것이다. 고양이는 그 후에 개와 함께 사람들 곁에서 지내게 된다.


아무튼 사람들은 그때 이미 벌꿀의 존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간혹 사람들은 벌꿀 술도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은 그때 설탕이 없었기 때문에 꿀을 무엇보다 좋아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다른 어떤 것 보다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모 몰래 꿀을 찾아 먹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또 소도 길렀을 것이다. 벌판은 다행히 풀이 자라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들은 마음껏 풀을 뜯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소가 잘 자라게 되자 사람들은 소 젖을 짜 우유를 마실수 있었고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점차 사람들은 숲을 개간하기 시작했고 소들은 쟁기를 끌며 땅을 갈아엎었다. 씨를 뿌리자 곡식이 자랐다. 숲을 개간해 집을 짓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간혹 홍수가 나서 집들이 물에 잠기고 심지어 힘들게 가꾼 농토까지 물에 잠기는 일이 자주 발생을 했다. 그러다 보니 곡식을 구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더라도 오랫동안 생존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런데 여자아이들이 태어나게 되면 생존 가능성은 더 낮았다. 남자아이들은 그나마 전쟁을 위해 전사로 키워야 했기 때문에 같은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남아들 생존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중세 이전의 기독교 국가였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당시에 남아선호 사상이 일반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래서 심지어 여아가 태어나면 합법적으로 살해하는 의식을 치르는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어떤 가정에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이 아이를 키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가족회의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이 땅에 선교사들이 프리스란드(Friesland: 네덜란드 가장 북부지방)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신자가 된 알트프리드(Altfrid)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의 부인도 기독교 신자가 되었는데 부부는 이 마을에 아직 예배를 볼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교회를 지어야 하는 일을 두 사람이 도맡아 했다.


그 후 알트프리드 가족은 아이를 낳게 되었고, 그 아이는 다행히 잘 자랐다. 부모들은 이 아이가 하느님이 보내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얼마 후 알트프리드 부부는 두 번째 아이를 낳는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남아가 아니라 여아였다. 이를 알게 된 할머니는 남자아이가 아니라고 화를 내고 말았다. 할머니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기에 전통 방식대로 이 아이를 즉시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 사실을 눈치챈 며느리는 몰래 아이를 받은 산파에게 맡기고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찾을 수 없게 했다.


당시에는 모든 결정권을 집안의 가장인 할머니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지 않고 늑대에게 주어버려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아이를 맡은 산파는 다행히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었다. 아이를 잘 돌볼 뿐 아니라 아이가 없어져 화가 난 할머니를 달래며 눈치채지 않게 아이를 찾지 않도록 설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머니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산파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매일 맛있는 우유와 꿀을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아이의 부모들도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몰래 지켜보면서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위해 요람을 하나 만들어 아이를 돌보는 산파에게 전해 주었다.


아이는 아빠가 만들어준 요람에서 건강하게 잘 지냈다. 아이의 엄마는 가끔 산파의 집으로 몰래 가 아이가 요람에서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사람들은 요람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꿀같이 달콤하다는 의미에서 ’Honig-je‘, 또는 ‘꿀방울처럼 생겼다는 의미로 ’Little Honey‘라고 불렀다.




산파의 집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매일같이 외양간에서 소들과 함께 지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이 집에 들어온 후로는 제법 아이를 돌보려는지 아이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곁을 지키고 있었다. 대개 고양이들은 자신의 새끼보다 어린아이들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두 마리나 되는 새끼들을 낳은 지 얼마 안 된 이 어미 고양이도 자신의 새끼들을 제쳐놓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어린 소녀 곁에서 함께 지냈다.


아이와 고양이는 어느새 친해졌고 이제 둘은 떨어지지 않고 거의 언제나 붙어있다시피 지냈다. 사람들은 이 고양이를 ‘Little Double’을 의미하는 ‘Dub-belt-je’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이 고양이가 마치 자신의 새끼를 돌보듯이 아이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고양이는 아이가 아무것도 덮지 않고 있을 때는 아이가 춥지 않도록 구석에 있는 가죽 털을 입으로 끌어와 덮어주기 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건 이 아이의 아버지가 사냥을 떠나간 사이에 아이의 엄마까지 숲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갔던 사이에 벌어졌다.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람에 온 동네가 홍수가 나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물에 떠내려가고 집마저 쓰러져 더 이상 아이를 돌보기 힘든 상황이 되고 말았다.


급작스런 일에 놀란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들이 다 떠내려간 후였다.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있던 집은 물론 아이를 담아두었던 요람마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난감해진 부모는 그저 망연자실 하늘만 바라보며 원망을 할 뿐이었다.


홍수가 나자 물에 잠기기 시작한 집안에서 어린아이는 놀라서 잠에서 깨어나 울기 시작했다. 이때 아이를 지키고 있던 고양이가 자신의 새끼들은 내 팽개치고 아이에게 돌아와 요람 속으로 들어가 아이 곁을 지켰다. 하지만 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요람 속 아이는 고양이와 함께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요람 위로 올라가 요람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용을 쓰고 있었다.




어느새 빠른 물살을 헤치며 요람은 멀리멀리 떠내려갔다. 주위를 둘러봐도 물살만 거세게 이는 강물에는 어린아이가 있는 요람과 고양이뿐이었다. 그 순간 저 멀리 나막신이 하나 떠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노랑칠을 한 예쁜 나막신이었는데 그 안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병아리 한 마리가 타고 있었다. 병아리는 물 바같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작은 신발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듯이 보였다. 아마 이 병아리는 엄마 닭이 횃대에서 잠이 든 사이 홍수가 나는 바람에 나막신에서 잠이 들었다 그대로 떠내려온 듯했다.


어두운 밤이 되자 물살은 더욱 거세졌다. 어디까지 떠내려 온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강폭은 바다처럼 점점 더 넓어졌다. 격렬한 물살은 계속해서 바람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소리까지 내면서 어린 아기와 고양이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이와 고양이가 타고 있는 요람은 별다른 문제없이 물에 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요람은 어느 마을이 보이는 강어귀를 지나고 있었다.


어둠이 찾아들었지만 고양이는 낮보다 밤에 사물을 더 잘 보기 때문에 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에 떠내려가면서도 고양이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연신 무엇인가 찾는 듯했다. 고양이의 눈은 밤이 깊어질수록 눈동자를 크게 뜨기 때문에 고양이의 눈을 보게 되면 밤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고양이의 눈을 보는 일이 예전에는 사람들이 시계를 대신해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간혹 고양이를 ‘시계의 눈(Clock Eye: 화란어로 Klok’-oog)’, 또는 ‘종의 눈(Bell Eye)’이라고 불렀다. 당시의 홀란드 시계들 대부분은 자명종을 가지고 있었고 이 자명종 시계들은 반 시간, 또는 한 시간마다 울리도록 설정이 되어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물살을 따라 흘러가면서도 어둠 속에서 고양이는 멀리 있는 교회의 첨탑을 보게 되었다. 고양이는 마치 어둠 속에서 사람을 찾으려는 듯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군가 고양이의 소리를 듣고 구해주기를 바라면서 소리를 질러대지만 오히려 바람소리와 거센 파도소리에 묻혀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멀리 가지도 못했다.


있는 힘껏 울부짖던 고양이가 어느새 초주검이 될 정도로 지쳐갈 즈음 멀리 보이는 강가에 있는 어느 집 창문에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방안에 누군가 움직이고 있는 것도 보였다. 고양이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제발 자신들을 구해주기를 고대했다. 고양이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야오옹 야오옹! 마을의 고양이들이 이 소리를 들었는지 화답을 하는 듯 같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마을은 온통 고양이 소리로 시끄러울 정도였다.


불빛이 켜진 집안에는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이 소년은 오래전 마을에 교회를 세웠던 성자 테오도릭스(Theodoric)의 이름을 따서 디크(Dirck)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었다. 마을의 고양이들이 강물에 떠내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함께 울부짖으며 소리를 내자 이 소리를 들은 소년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왔다.


소년은 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내려 강가로 향했다. 잠시 후 소년이 들고 있던 촛불은 바람에 꺼져버리고 칠흑 같은 어둠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용기를 내 고양이의 울부짖는 소리를 찾아서 강가로 갔다. 강가에는 나무의자가 놓여있었는데 소년은 그곳에 신고 있던 나막신을 벗어놓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요람이 있는 곳까지 헤엄쳐 간 소년은 요람을 끌고 강가로 나와 집으로 가져갔다.




집에 도착한 소년은 잠들어 있는 어머니를 깨워 요람 속 아이와 고양이를 보여주었다. 거짓말처럼 아기는 귀여운 얼굴로 방긋방긋 미소를 짓더니 금방 배가 고픈지 칭얼대며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부엌에 들어가 우유를 따듯하게 데워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우유병을 힘차게 빨더니 어느새 한 병을 거의 다 먹었다. 발끝으로 요람을 걷어차며 기분이 좋은지 옹알이까지 한다. 아이를 춥지 않게 난로 근처로 요람을 옮겨 놓고 요람을 흔들어대니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고 조용해졌다. 그 곁에서 고양이도 피곤했는지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고양이 덕분에 아기는 무사할 수 있었다. 아이를 구할 수 있게 울부짖으며 소리를 낸 고양이가 그야말로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다. 고양이가 인간을 구했으니 진정한 생명의 은인, 아니 은혜로운 고양이인 셈이다. 그 소년은 그 후에도 계속 아기를 잘 보살펴주었다. 집안에 사내아이만 있었던 터라 이 소녀가 온 후로 이 집 식구들은 모두 이 소녀를 좋아했다. 소녀는 다행히 이 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잘 지낼 수 있었다.


그 후 이 소녀가 어느새 자라 어른이 될 만큼 성장을 하자 소녀는 자기를 보살펴준 소년과 결혼을 한다. 그녀는 이제 아름다운 공주처럼 당당했다. 소녀는 이제 한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다. 그녀를 구한 디크도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어 무척 기뻤다.


두 사람은 부부로서 행복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그들의 아이를 낳는다. 이 집의 할머니는 이 아이의 이름을 루이드이게르(Luid-i-ger)라고 지었다. 이 아이는 자라서 선교사가 된다. 그의 이름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잊지 않고 있다.




그는 그때까지 전해오던 민속신앙의 잔인한 계율들, 예를 들면 당시의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한 공개적인 영아 살해 같은 일들을 몰아내는데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홍수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가축과 인간들은 계속해서 침수되고 모든 재산을 바다로 떠내려 보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 선교사는 사람들에게 제방을 쌓고 홍수를 피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재앙을 입지 않도록 강을 보존하는 방법도 가르친다. 그 덕분에 홍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선교사를 기억하며 산타 클라우스(Santa Klaas)가 나타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것이라고 칭송을 한다.


선교사의 노력으로 많은 잘못된 사회적 관행들이 점차 사회가 변해가면서 사람들을 본래의 친절한 마음씨와 고귀한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전통의 이름으로 불합리한 일들을 마치 합리적인 일인 양 당연시한다. 심지어 그것이 잘못된 일인데도 권력과 개인적인 이기심에서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남아선호 사상 같은 사회적 규범이 그랬다. 어쩌면 그렇게 잘못된 문화가 사람들을 최면술에 더 잘 걸리게 하는 독소가 더 강한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최면을 벗어나는 일, 그게 바로 사회변화를 이르는 첩경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좋겠다.


어느새 1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 어린 소녀였던 ‘Honig-je’는 산타 클라우스처럼 나타나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선물을 전해주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그 소녀를 구해준 고양이는 그 사이에 9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또다시 그 새끼들이 또 새끼를 낳아 엄청난 새끼들을 번식한다. 어린 소녀를 구해준 고양이 ‘Dub-belt-je’도 그가 섬겼던 어린 소녀 ‘Honig-je’ 곁에 묻혔다.


그 소녀와 고양이는 마을에 있는 교회 바닥 아래에 묻혔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은 이곳에 묻힌 고양이와 소녀를 사랑했다. 그 후 사람들은 교회에 있는 무덤에 고양이 조각상을 만들어 놓고 고양이 목에 예쁜 구슬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뿐 아니라 산타 클라우스가 찾아온다는 12월 6일에는 반드시 고양이가 묻힌 곳을 찾아와 새 목걸이를 걸어주고 고양이 조각상의 훼손된 곳을 수리해 주면서 오래전 어린 소녀를 구해준 고양이를 칭송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고양이의 선행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었다.




전통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할머니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어린 소녀가 고양이와 함께 홍수에 떠내려갔지만 살아남고, 자신을 살려준 소년과 후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선교사가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장구한 시간 동안 그 이야기는 어느새 신화가 되고 전설로 자리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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