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연 Jun 26. 2021

내 인생에 1등은 없어

프롤로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연간 수많은 1등들이 존재한다. 차트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은 일정기간 동안 특정 노래를 다른 노래들보다 월등히 많이 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구, 야구, 축구 등과 같은 운동 경기에도 늘 1등은 존재하고 팀 경기일 때는 그중에서 가장 잘한 선수를 향해 mvp라는 수식어로 칭하기도 한다. 또 어떤 선수는 운동의 대가로 받는 연봉 액수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1등은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과 같은 형태로 텔레비전 속에서도 가려진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의 1등을 수없이 지켜보며 살아가고 있다. 


너무 먼 얘기 같으니 이번엔 내 경험을 예로 들어봐야겠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땐 이름 혹은 생일 순으로 반 번호가 배정됐었다. 내 이름은 ㄱ자로 시작하지도 않고 생일도 빠르지 않아서 늘 애매한 중간, 끝쯤에 번호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 나가 아침 조회를 할 때면 키 순서대로 줄을 섰는데 키가 작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는 꼭 나보다 더 작은 한두 명, 혹은 세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학창 시절 대표적인 1등 가르기, 성적은 또 어땠냐면 15년 내내 공부를 잘해본 적이 없어서 1등 근처에도 가지 못했고 그렇다고 뒤에서 1등을 해본 적도 없다.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돌아가 내 이름이 써진 100점짜리 시험지를 구경이나 해본 적이 있냐, 기억의 오류가 있지 않는 한 단호하게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밖에 뭐 글쓰기, 그림, 운동, 음악 등 그렇다 할 재주도 없어서 교내 대회 조차 나가 본 적이 별로 없었고 나간다 하더라도 돌아올 땐 늘 빈손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로 반에서 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반 아이들의 관심을 사야 하는 반장, 부반장 더 나아가 총무, 부서의 장 이런 건 내 이름 앞뒤에 붙기엔 너무 버거웠다. 대학교 때 성적 장학금을 받아 보긴 했지만 과탑은 아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서 딱 한 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목을 받을 뻔한 적이 있었다. 때는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고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운동장 조회를 실내에서 하는 것 같은 형식의 무언가를 했었다. 방송실이 무대였고 그걸 교실에 설치된 티비로 학생들이 지켜보는 거였다.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학생을 뽑아 발표하기도 하고(주로 웅변이나 글짓기 같은 것들) 상을 주거나 전체 전달사항 등을 전하는 그런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지막은 역시나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은 거였다. 물론 나는 그 뛰어난 학생에 속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때도 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글도 잘 썼고 경연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왔으며 발표까지 똑 부러지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에게 방송실에서 발표를 하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발표의 내용은 야영을 다녀온 뒤 쓴 소감문을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는 일이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한 아이였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내는 법을 모르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긴장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소심한 관종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내 소감문을 발표하는 일이라니. 떨렸지만 기대도 됐다. 양손에 종이를 꼭 붙잡고 혼자서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고 방송실 안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서 발표를 못할 것 같다고 하셨다. 정해진 방송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 내에 내가 발표를 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예상치 못한 시간을 조금 더 쓰게 된 것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이것도 생방송이라면 생방송이라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언가의 대표자가 될 뻔한 그날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다른 날처럼.


이렇듯 1등은 남들보다 많은 것을 해내거나 나서서 뭔가를 할 만큼의 위치에 있을 때 혹은 누군가의 엄청난 관심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처음으로 그 관심을 받은 건 어쩌면 몇 자 안 되는 수많은 자기소개들 중에 나에게 '이곳에 글을 써도 좋습니다' 하고 공간을 내어준 브런치 관계자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환영을 받고 막상 이곳에 들어오니 저 지하 끝에 있어서 누가 애써서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작은 모습으로 있게 되었다. 아주 찰나의 관심이 있었지만 이내 거기서 멀어져 버렸다.


3n년째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 어떤 순간에도 사람들의 관심이나 집중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초 치는 것 같지만)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도 1등이 되지 못할 거란 걸 잘 안다.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쉽게 따라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서, 나는 1등이 되고 싶어서 무던히 노력해 본 적도 없고 그걸 탐내거나 욕심내 본 적도 없다. 누구는 이런 나를 보며 열심히 살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라며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근데 그게 왜? 그게 어때서? 나는 1등보다 2등이 좋고 2등보다 99등이 더 좋다. 그 외에 사람들도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고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1등이 아닌 사람들과 뒤엉켜 사는 나는 잘 살아내고 있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