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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Dec 08. 2021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예의와 오버 사이에서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굳이 번거롭게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은데... 혹시 괜찮으세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과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어쩔 땐 좀 지나칠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 괜찮냐고 묻는다. 혹은 '... 할 것 같아서 굳이 말 안 했는데...' 등  좀 지나친 배려(?)를 할 때도 있다. 근데 이걸 단순한 배려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고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내 걱정에서 비롯된 말들인 것 같다. 물론 그 말속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도 있지만 혹시 내가 이런 태도, 행동, 말투를 보였을 때 '불편해하면 어쩌지?', '물론 괜찮은 거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라는 식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기에 늘 조심하려고 하는 편이다.


세상엔 어떤 것도 당연하거나 완전한 것이 없기에 항시 신경 쓰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예의'라는 틀 안에서 시작을 하려고 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사람을 좋아하며 나도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증상들은 아주 극초반보다는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됐을 경우에 더 크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정말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우리는 처음이니까 하는 식의 괜찮음을 물어보는 거고 내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나 뭔가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받으면 마음을 더 담게 된다. 지금 우리 사이가 야무지게 수다 떨고 까불 수 있는 그런 관계는 아니라서, 불편한 사이(부정적인 뜻이 아닌 정말 편하지 않은 그런)에서 나를 풍선에 바람 넣듯이 최대한 속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만들고 나를 잘 보이게 하려는 작전 같기도 하다. 어(색한)사(이)일 때 오히려 더 그런 마음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당신을 해칠 마음이 없으며 당신과 천천히 알아가며 잘 지내고 싶습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겠어요?라고 소심한 투쟁을 하는 듯해 보인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전한 들 받아들이는 쪽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내 마음을 전하고 상대에게 가는 동안 길을 잃지 않고 가주기만 한다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마음을 주고받는 일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마흔이 되면 좀 알 수 있을까. 이 얘기는 쓸 수만 있다면 나중에 따로 쓰고 싶다.  




제주도에 있는 19년 동안 나는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였고 내 주변에 있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나 스무 살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걸 나는 즐기고 그런 상황들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땐 조금 거침이 없었다. 훅 다가가고 빨리 친해지는데 중점을 맞추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쉽게, 빨리 친해진 만큼 내 곁에서 사라지는 속도도 빨랐다. 그때는 그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빠르게 돌아갔기 때문에 거기에 상처 받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괜찮으면 남들도 괜찮은 줄 알았다. 물론 흔한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상대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내 멋대로 이미 내린 결정에 맞춰 말을 한다거나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는 "괜찮아?"라는 말보다 "뭐 어때~?"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그때는 정말 내 시선에선 결코 불편하거나 불만을 가질 일이 아니었고, 알 수 없는 자신감까지 붙어 능동적인 태도에 취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단순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아마 말은 못 했지만 나 때문에 속 꽤나 썩이고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지금 내 옆에 없는 사람들은 결국 무의식 중에 내가 밀어내 버린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투, 태도가 나에게는 괜찮은 것일지 몰라도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랐고, 보고 들은 게 다르기 때문에 그걸 맞춰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옳다고 해서 상대방도 옳다고 생각하는 건 좀 맞지 않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코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내 기준이 곧 모든 사람의 기준이 되는 건 아니다. 물론 기본적인 틀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크게 보자면 사회는 그걸 법이라는 수단으로 묶어 놓기도 했다.


어느 때는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돼? 오히려 그렇게 집착하듯 물어보는 게 상대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아닌지, 그에게 나의 영역에 넘어오지 말라고 선을 그어 버리는 일은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으로 번질 때도 있다. 그런 마음에 더, 더, 더 상대의 의사를 묻고 내가 이렇게 하는 거에 대해서 괜찮은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내가 잘하려고 하는 노력에서 오는 것들이다. 괜히 말이 길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하고 상대의 상태를 살피며 확인하는 일, 그게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끔 하는 나의 표현 방식 같은 것이다. 그런데 또 어떨 때는 말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아.. 그게 아니라.. 저기... 음.." 같은 앞에 밑밥(?)을 잔뜩 깔아놓고 한껏 불쌍한 척을 한 뒤에 상대가 측은하게 여길 때쯤 "아니야. 괜찮아!"라는 답변을 받는 수법 아닌 수법이 몸에 배어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사이가 불편해지지 않고 오해가 쌓이지 않도록 하는 일은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천천히 알아가는 만큼 우리의 연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고 앞으로  지내기 위해  정도의 시간 투자, 노력 정도쯤은 기꺼이   있다. 마음 같아선  촉을 믿고  번에 다가가서 '우리 친구 할래?'라고 들이대고 싶을 때도 많지만 급하면 체한다고 그것 또한 상대에게 불편한 일이   있기에  마음만 가진  서서히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제안을 받는   좋아한다. 앞에서 주절주절 예민한 사람처럼 굴었지만 굉장히 열려있는 사람이라는 .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한해서.


시작에 이런 공을 들였다고 해서 끝이 망가지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서로 간의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다면 우린 분명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에 틀림없다!  




(번외)

어느 정도 관계가 지속되고 나면 다른 의미의 괜찮음을 연발한다.


대략 이런 것들이다.


"뭐 먹을까?"

"음.. 딱 생각나는 건 없긴 한데.. 넌 뭐 먹고 싶은데?"

"A나 B 중에 하나 먹자"

"난 둘 다 괜찮은데, 넌 뭐가 더 끌려?"

"A 먹을까?"

"좋아! 괜찮아."

"B 먹을까?"

"그것도 좋은데?"

"IC..."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는 일은 그냥 일상이다. 이런 나의 성향을 잘 아는 친구들도 매번 나에게 의견을 묻고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한숨으로 이어진다. 미안하다 친구들아. 그래도 가끔 객관식은 잘 고르잖아. 주관식은 너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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