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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Mar 20. 2022

나의 쓸모

01 원래 그런 사람


나의 10대는 부족함의 결정체였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고 더 잘나고 더 부족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시절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매년 희망하는 직업을 써서 낼 때는 왜인지 몰라도 '유치원 교사'라고 했다. 정말로 그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칸에는 그게 정답인 것처럼 쓰곤 했었다. 그리고 고2~고3 때쯤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생겼고 하고 싶은 일 즉,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일이 생겼다. 이렇게 나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면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뭘 잘하는지 흔히 특기란에 쓸 만한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몇 년 전 운이 좋게도 그토록 바라던 직업을 갖게 되었고(물론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 일을 준비하면서도, 하고 있을 때에도 내가 이걸 잘해서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들이밀었고 가면을 쓴 내 모습에 속아버린 많은 사람들이 나를 그 길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인생의 무한한 성장기를 거치고 있는 나는 과연 쓸모가 발현되던 시기가 있었을까 자주 생각한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인생의 95%는 없다에 가깝다고 느꼈다.  


초등학교 때는 마음이 너무 약해서 반에서 알아주는 울보였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이 사진 뒤에 짧은 편지를 써서 줬었는데 나에게는 '눈물이 많은 아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내가 우는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내 할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누가 나를 놀리거나 괴롭혀서, 내가 한 어떤 것에 대해서 지적을 당하거나 창피를 당할 때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별 거 아닌 것들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속상하고 눈물이 나던지. 정말 툭하면 우는 아이였다. (그 눈물은 지금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아...) 


이렇게 기본적으로 눈물을 뒤로 숨기 위한 무기처럼 장착하고 자신감도 없었다. 반에서 눈에 띄게 예쁘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인기가 많은 아이도 아니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누구나 한 번씩은 한다는 반장, 부반장, 총무 등 대표가 되어본 적도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그런 존재는 더더욱 아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였고 그냥 그저 그런 아이였다. 이런 나에게서 내 가치를 찾아볼 생각은 물론이고 내가 '뭐가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갑자기 뭐가 바뀔 수 있나? 당연히 아니다. 교복을 입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하교 시간이 더 늦어지고 배울 게 많아지는 머리 아픈 일만 늘어나는 그런 복잡한 격동의 시기를 거쳐야 할 뿐이었다. 이때부터는 특히 친구 관계라는 복잡 미묘한 것이 나를 휘젓고 가기 시작한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했냐고? 우유부단하고 줏대가 없던 나는 이리 끌려갔다 저리 끌려갔다 왔다 갔다 완전히 새가 됐다. 이때에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큰소리로 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마음속에 담아두는 게 대부분이었다. 내 생각은 틀린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은 상대의 기에 눌려 내 주장을 펼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보다 몸집은 더 커졌는데 마음은 더 작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진학. 나도 이제 언니가 됐다 이거야.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편하게 까불 뿐 내 성격에 변화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뭐가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에 눈에 들어오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낯가림 패치가 아주 두껍게 장착 중이어서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만한 강심장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친구를 향해 눈빛을 쏘는 일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자꾸 내가 째려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그렇지 뭐.


늘 그렇듯 애매한 존재감을 희미하게 뿜어낼 뿐이었다. 그래도 뭔가 변했다면 변한 것도 있었다. 취미도 생기고 좋아하는 것도 생기고 내 안의 긍정적인 변화가 조금씩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고3 때에는 이런 낯가림쟁이가 혼자서 제주도를 떠나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뭔가 해보자고 긍정력이 슬슬 올라오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럴 사람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10대. 정말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나 있는 대로의 모습을 인정해버렸던 것 같다. 이렇게 태어난 이상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다거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늘 이끌려 다녔고 목소리를 내는 법도 몰랐고 그냥 바보였다.



그때의 나의 쓸모는 뭐였을까. 그때도 찾지 못했던 걸 지금에 와서 찾으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그때의 내가 있어서 지금 이만큼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혹시 어쩌면 그때의 나를 떠올린 누군가는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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