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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Mar 27. 2023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그릇된 오해


문득 거울을 봤더니  눈에 힘이 없고 피부는 다 망가져 있었고 얼굴에 생기가 돌지 않아 우울함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의 마음이 누군가의 말을 올곧이 듣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밀어내고 삐뚤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그 말을 받아들일 때의 내가 온전하지 않으면 보통의 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주로 부정적으로), 찌르는 말은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고 어두컴컴한 어딘가로 나를 끌어내리면서 마음의 골짜기에서 허덕이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나의 친구들에게는 힘든 것은 떨쳐내고 좋은 것만 바라보라고 하면서,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을 걷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요즘이었다. 


-

친구와 평소처럼 카톡을 하던 나는 이상한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에 가시가 돋쳤던 어느 날, 내 판단이 정확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내가 제일 잘 알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친구가 '그럴 것'이라고 하는 추측의 말을 하찮게 여겼고, 반복되는 말에 짜증을 느끼기까지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내 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은 친구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꼈고, 다른 의견을 말하는 친구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틀리고 친구가 맞았을 수도 있다. 


정답이 뭐가 됐든 서로의 말만 하는 대화와 꽉 막혀버린 나의 마음,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나의 모습에 화가 났다. 평소였더라면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가 '평소'와 같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를 불편하게, 그리고 나 자신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나 혼자 품고 있었던 풀리지 않은 마음이 내 안에 있는 아주 작지만 예쁜 마음을 가둬두고 단단한 벽을 이루어 버렸다. '나 정말 별로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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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일주일에 한 번,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면 청소해 주시는 분들이 온다. 야근을 자주 하던 나는 그분들이 꽤 익숙했고 그분들 또한 나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혼자 회사를 지키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분들이 오셨고 평소처럼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왜 맨날 혼자만 야근하세요? 일이 많은 거예요, 능력이 부족한 거예요?"라고 물어왔다. 그때 나는 일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잠시 멍해졌고, 괜히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분의 의도는 정말 단순함에서 온 것이었겠지만 그 말은 하염없이 나를 찔러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록 그 물음은 내 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리고 한동안 나의 아픈 구석을 계속해서 꺼내게 되었다.


-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반가운 마음 가득 담은 상태였고, 그 마음을 그대로 꺼내어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기분 좋은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바랐던 나의 기대를 깨버린 대화가 있었다.


친구: 요즘 어때? 잘하고 있어?

나: 응. 그런데 내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비슷하지.

친구: 그때 00이도 그 상황에서 잘만 했잖아.

나: 그렇긴 한데 나는...


나는 그때도 지금도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제자리 혹은 도리어 뒷걸음칠 치는 것 같아 쓸모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까지 지나온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바보가 되어버린 듯했다.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과 셀 수도 없는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내 마음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오해하고 온전한 마음도 구겨버리는 때가 찾아온다. 나의 마음을 불온하게 바꿔버리는 어두컴컴한 그것이 마음 한 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다. 그것들은 무섭게도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것들이라서 나를 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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