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을 좋아하게 되는 것, 바꿔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이의 직업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내가 느끼지 못할 행복을 빼앗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르면 무한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지난 2월, 좋아하는 오지은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읽고 싶었지만 '잘' 읽고 싶어서 시간이 나기를 기다렸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대충 흘려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가수 오지은이 노래를 내거나 앨범을 낼 때에도 그랬다. 가능한 한 음반매장에 직접 가서 CD를 샀고, 주변 환경과 내 마음이 온전할 때 차분하게 순차재생을 했다.
배구장에 갈 때에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갈 때마다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경기를 재밌게 했으면 좋겠고 팀이 이겼으면 좋겠는 마음도 있지만, 그 뒤에는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코트 위에 서게 될지, 그의 노력이 드러나는 그 순간에 그의 마음을 전해받고 싶은 마음이 나를 떨리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다른 책들은 넣어두고 <당신께>를 읽고 감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오랜 시간 기다렸던 책이기도 했고, 답장이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남기고 싶었다. 이 글이 어디까지 닿을지 모를 일이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나의 감상으로 인해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1%의 기대감 같은 것도 있었다. 마치 내가 배구장에서 특정 선수의 유니폼을 흔드는 이유와도 같다.
책은 항상 깨끗하게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던 내가 어째서인지 밑줄을 긋고 싶어 졌고 포스트잇을 달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름의 비장한 마음과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글자 하나하나 꼭꼭 씹어 읽어나갔다.
내가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스탭 스크롤 보듯 책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쭉 훑어보았다. 사실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책 하나를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아부은 사람들, 또 여기에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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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짜리 프롤로그에 마음이 울컥하는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 덕분에 한 문단을 적어도 세 번은 읽고 나서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일찍 내려놓은 것도 있고
몰래 품고 있는 것도 있는 사람.
그런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사람일까요.
네. 너무나요. 그런 나를 위한 편지라면 기꺼이 나의 시간과 마음을 쏟을 준비가 되었다. 본편으로 넘어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었고 조금 오버해서 이 글을 포함해 총 4편의 감상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오지은이라는 사람이 만든 노래와 책을 가까이하면서 혼란했던 20대를 버틸 수 있었고 어쩌면 내 인생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