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시간의 편지들
'왜인지 당신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생긴 늦여름에 쓴 첫 번째 편지' 여기에 쓰인 모든 단어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기분 좋은 단어들을 안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드디어.
1)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이나, 대단하다고 느낀 사람이 내가 가진 부족함과 같은 류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끼면 미안하게도 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듯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길 바랐던 적도 있었다. 그로 인해 마음이 완전히 다독여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던 날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가진 좋은 마음을 의심할 때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의심하는 마음을 드러내 보이면 나는 더더욱 숨기고만 있었지만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오지은의 음악과 책을 읽으면서 감히 형체를 들여다보기도 힘든 작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그분의 노래와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미지근한 마음도 마음이라는 것. 차가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시간도 시간이라는 것. 흐린 눈에 보이는 뿌연 풍경도 풍경이라는 것. (18쪽)
못된 마음은 내가 가진 마음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좋은 마음만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악의는 허공에 날아가 어디로 흩어질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좋은 마음도 나의 것이었고, 그렇지 않은 마음도 내가 가진 마음 중에 하나였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100% 좋은 사람만 있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위에 담긴 말처럼 누구에게나 마음도 시간도 풍경도 무의미한 것은 없고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다 있을 뿐이다.
2)
얼마 전에 교토에 다녀왔다.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혼자 다닐 땐 관광지를 챙겨서 가는 편은 아니라 숙소 주변으로 도보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건 혼자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일단 숙소 가는 길 정도만 챙겼다. 물론 여행 가기 전 들뜬 마음은 가득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거였고, 이곳에서의 안 좋은 것들을 그곳에서 다 털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시시하게 여행하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나마 가서 맛있는 것을 챙겨 먹는 일, 그게 내 여행의 가장 큰 계획이라면 계획이고, 그 외에는 특별한 뭔가를 하진 않는다. 걸어 다니고 커피를 마시고 사람 구경하는 일이 최고의 재미다.
이번 교토도 그랬고, 이전에 다녀왔던 여행들에서도 나는 대단한 황홀함을 느끼거나 최고의 여행이었다고 자부하진 않는다. 그냥 공항에서 도시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는 일, 예상했던 날씨보다 더 극한의 날씨를 맞았을 때의 당황함, 찾아둔 맛집을 가기 위해 지도를 보고 거기서 느낀 뜻밖의 친절 등 흘러가는 일들을 오래 기억하는 편이다. 특이하게도 그것은 사진에 남거나 내가 애써 기억하려는 것이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기억되는 일 중 하나다.
무엇보다 특별한 시간과 특별하지 않은 시간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시간은 정말 특별하지 않은 걸까요. (24쪽)
(그 기준을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특별하지 않은 시간들 속에도 보통과 다른 무엇이 있었기에 우리는 여행을 하고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분명 남는 것이 있는 그 보통의 시간이 곧 특별함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보통이 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3)
잘 정돈된 정원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런 것은 죽기 전까지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정원은 비록 이렇게 엉망이지만 너그러운 당신은 풀잎과 꽃을 발견해주실 건가요. (33쪽)
가수 오지은이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공연 좋았어요', '노래 너무 좋아요' 등의 좋은 말들을 가득 안겨주었다. 물론 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을지는 매우 의문이지만(마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 말해주세요), 적어도 내 마음을 밀어내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공연 하나에, 글 하나에 온 힘을 쏟고 그 힘을 쏟아내기까지도 너무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 결과가 '잘'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사자는 아쉬울 때가 많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내 마음이니까. 그리고 그 마음을 가둬두지 않고 말함으로써 그날의 공연이,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잘 닿았구나 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발견한 꽃은 빨간색인데 누군가는 파랗게, 노랗게 보일 수 있다. 그렇게 그녀의 정원은 다채로운 색을 발했을 것이고, 햇빛과 물을 잘 받은 탓에 더 크게 자라날 것이다. 이 정원이 본인의 눈에는 고꾸라진 잎사귀만 보이겠지만, 고개를 들면 찬란한 색을 입은 것들이 한가득 일거라 말해주고 싶다.
4)
어지러운 집을 볼 때마다 한심함의 증거를 선명하게 보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제 일을 할 때 크게 보이는 흠과 아무리 메우려고 해도 메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는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혹시 제 마음속에 들어와 보셨는지.
일상은 작고 흔하고 슬픈 비극의 연속. 그러다 갑자기 굉장한 행운을 만날 때도 있는데요, (53쪽)
그리고 앞 단락에는 이 같은 문장이 있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우리는 좋은 것들을 더 크게 부풀리기 위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 어리석은 혹은 바보 같은 마음을 좋은 마음으로 덮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굉장한 행운'이라는 것이 기다리기만 해서 오는 행운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라서, 대신에 그렇게 찾아온 행운은 생각했던 것보다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같다.
5)
언젠가 '지은닷컴에' 내 이야기를 썼던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 마지막은 "전 플러스가 되는 걸 바라지도 않아요. 제 인생은 마이너스거든요. 0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거예요"라는 식의 말이었다.
흑과 백의 세계를 지나 각자의 입장, 상황, 복잡함 속에서 조개처럼 입을 다물게 되는 사람이 어른 같습니다. (...) 회색 지대에 가기도 합니다. 어차피 세상살이 다 똑같아. 그 또한 묘하게 즐겁습니다. (65쪽)
이 말에 따르면 나는 그때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6)
예전에 우리의 관계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 있다. 누가 강요해서 시작한 일도 아닌데 모르는 사이에 진심 가득한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걸 진심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 힘 덕분에 근근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인생의 일부는 차지하고 있으며,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저의 섬에 있고, 당신은 당신의 섬에 있고, 우리는 멀리 있고, 서로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유리병을 보낼 수 있는 것이겠지요. (80쪽)
멀리 있어 더 희미할 것만 같던 그 마음이 어느 순간 내 마음 한쪽 구석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변해 있었다. 다행이다.
7)
'다들 하니까' '원래 이런 거니까'라는 말은 엉성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땅에서는 강력한 법칙입니다. (82쪽)
얼마 전 브런치에 '원래 그래'라는 말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그 강력한 법칙에 짓눌리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2016년에 쓴 글이었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것은 없었다. 사람을 가장 허무하게 만드는 단어 '원래'라는 이 두 글자는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단어이기도 하다.
지금은 나도 "왜?"라는 더 단순한 말로 떠내려가지 않게 힘을 주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무함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순간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덮칠 때도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8)
순간 작은 실망감이 제 안에 피어올랐습니다. 나의 동생이 호주에 가버렸다는 것을 처음으로 강하게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그녀의 아이라인이 살짝 떠 있는 것을 보고, 저렇게 그릴 거면 꼬리를 떠 빼지, 하며 저도 모르게 흠을 잡고 있던 스스로에게요. (106~107쪽)
브런치 글 중에 비슷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상대는 그대로였고 나의 오만한 착각과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부끄러움이었다. 그때의 나는 상대가 나의 이런 모습을 알아채지 않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알아도 끝까지 모른 척해주길 바랐다.
9)
모르겠다는 말은 어쩌면 스스로의 작음을 인정하는 말이고, 스스로가 작게 보인다는 것은 세상을 크게 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요. (120쪽)
좋고 나쁨이 뭔지,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게 된 지 꽤 됐다.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 애썼고 모든 걸 그렇게 바라보기 위해 마음을 쏟았더니 세상에는 틀린 것보다 다른 것 천지였다. 그래서 이게 맞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그것도 괜찮아" 정도의 말은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음이 옳다고 믿었고, 특별한 생각이라고 느끼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나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반대의 것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지도가 나에게도 생겼다.
10)
당신은 어떤가요.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솔직하고 투명하게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126쪽)
'예전에는 그랬고, 지금은 아닙니다'라고 답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그걸 드러내는 일이 어려워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혼자만 갖고 있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 내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되니 상관은 없지만 그걸 누군가와 나눈다거나 그 대상을 향해 이걸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는 오랜 고민의 시간이 드는 것 같다. 좋은 것에 나의 어두운 마음이 뒤덮어버릴 것 같은 마음이 자꾸 새어 나와 방해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떨 때에는 그 마음을 드러냈을 때, 고민의 시간까지 보태서 더 기쁘게 다가올 때도 있다. 모든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걱정하는 마음은 곧 더 좋은 마음을 담고 싶은 마음이니까, 걱정을 덜어내고 나면 좋은 것은 있는 그대로 나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